보고는 미리미리! 수정 사항은 나중에?
한국에서 서열은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한국에서 이십 년 넘게 살아오면서 서열에 따른 계급이 익숙해졌다. 군대는 가지 않았지만, 계급에 따른 '상명하복'은 이해할 수 있었고, 연애할 때도 '갑을 관계'는 몸소 느껴봤다.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되기도 했고 몸과 마음이 더 여유로운 쪽이 갑이 되기도 했다.
때론 어딜 가나 "몇 살이세요?"를 물어보며 알게 모르게 연장자 순으로 서열을 매겼다. '라테 문화' 나 '꼰대 문화'는 개그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현실을 반영한 트렌드가 되기도 했다.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스갯소리로 '꼰대'라 칭하는 것도 약간의 희열을 느끼게 했다.
사람들은 기존의 질서에서 역전된 상황에서 리얼리티를 넘어선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한다.
회사에서는 당연하게 직급에 따른 서열로 일을 진행한다. 더 먼저 일을 시작했고 더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기에 따를 필요는 있지만, 무조건적인 복종과 일에 대한 맹목적인 희생은 지양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그 실수를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올라간 직급만큼 일에 대한 숙련도, 전문성, 위기 대처 능력들이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영상 자막 제작 일을 하면서 서열에 따라 작업 안내 시간은 참 달랐다. 높은 직급일수록 보고는 미리미리 받길 바랐고 수정 안내 사항은 나중으로 미뤄져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추가로 일은 빨리빨리 하길 원했다. 새내기 직장 사원들은 하는 일마다 빛의 속도로 일을 처리해 바로 보고해야 했다. 반면 편집 수정 사항은 일이 다 끝난 후에야 보고 받았다.
작업 완료를 미리미리 보고 했다면 수정사항도 미리미리 보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업무가 끝난 후에 수정사항을 안내받고 나서 다시 또 재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간 보고가 한 시라도 이뤄지지 않으면 팀장부터 팀원들까지 모두 속한 단톡 방, 과장님의 개인 카톡, 팀장님의 전화가 온다. 작업을 완료한 후 작업 파일 업로드, 일일 작업 대장 기록, 주간 작업 계획 및 결과표, 주간 업무 보고 기록서까지 꼼꼼하게 작성해야 그 주 일이 끝난다. 이 모든 보고는 한날 한 시에 이뤄져야 한다.
만약 수정 사항이 있다면? 전부 싹 다 처음부터 다시다. 업무 시간 추가.
진작 알려줬더라면 내 수고로움이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말단 사원이자 막내인데 어쩌겠나.
'알겠습니다' 하고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몇 분 몇 초 틀린 부분 다시 수정해달라 하면 내 에너지가 덜 쓰여 다른 데 더 열중할 수 있겠지만, 현재 작업량을 포함한 앞으로 있을 업무량이 쌓여 있는 상황에선 수정 사항마저 버겁다.
이번 주 작업량은 그 전 주 계획과 함께 영상, 자막 파일을 다운로드한다. 그래야 해당 주 작업량에서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전히 영상 자막을 제작하는 일에만 쏟을 수 있다. 영상 자막을 제작하는 일에만 하루 온종일을 써야 하기 때문에 파일 다운로드하는 몇 시간조차 아끼기 위해서다.
일일 작업 대장 기록표에는 각각 분배받은 작업 파일 이름이 적혀있다. 매주 작업 시간에 맞춰 제작하면 된다. 보통 몇십 개의 파일을 미리 배정해 놓고 대부분 바뀌지 않는다. 물론 수정될 수도 있지만 그런 사소한 수정조차 해당 작업자에게 미리 보고를 해주셨다면 업무를 할 때 혼선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사원을 관리하는 해당 부서 관리자께선 이번 주 내 작업 부분과 겹치도록 수정하셨다. 작업 완료 후 나도 모르게 바뀌어 있는 표에 당황해 연락을 드렸더니 사정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는 부분이라 하신다.
물론 수정이야 언제든 될 수 있지만 수정이 되었다면 내게 안내를 준다거나 수정을 하더라도 이번 주 내 작업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수정하셨다면 이런 갈등을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리 작업 대장을 확인하고 업무를 하지 않았던 내 실수도 있겠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이미 예정된 해당 부분과 작업자 이름이 왜 갑자기 말도 없이 바뀌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은 소통의 문제였다. 해당 작업 파일 배분을 겹치지 않게 수정했더라면, 미리 수정된 부분을 알려줬더라면, 덜 혼란했을 것이고 덜 상처 받았을 것이다.
해당 구글 시트에서 파일 명과 이름을 '제대로 확인한 것이 맞느냐'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이렇게 억울하지도 않았다. 확실한 잘잘못을 가리지 못해 같은 얘기만 오고 갔다.
작업 대장 구글 시트에 수백, 수천 개의 파일과 담당자 이름이 적혀 있어 신중히 보지 않으면 헷갈릴 때도 있지만 몇 번을 손으로 찾아가며 확인한 것들이 틀린 일이 없었으며 나보다 직급이 높은 분께 착오를 전달하는 일이 쉬웠을까.
확실한 잘못을 가릴 수 없을 때는 대부분 소통의 문제로 치환하곤 한다. 소통의 문제만큼 애매하지만 왠지 알 것 같은 문제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열뿐 아니라 어디서나 소통은 참 어려운 문제다. 무엇이 옳은 소통의 방법인지 잘 모르고 소통의 정답 또한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는 보고만 잘한다고 해서 소통이 원활한 것도 아니고 일이 잘 처리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문제가 생길 때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소통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길 때 어떻게 대처할지 보완하고 보고나 수정을 해야 할 땐 그 변동 사항을 미리미리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누구는 미리 보고하고 또 누구는 나중에 안내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괜히 억울한 일을 만들지 않고 서로에게 덜 상처 받고 소통의 문제없이 일을 해결하는 일인 것 같다.
'슈퍼 을'로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