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아니고 '노동'입니다.

by 미래



일과 노동은 일맥상통하면서도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가 천지차이다.

얼마 전 엄마는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과일맛 젤리를 주문했다. 간식으로 즐겨 사 먹기도 해 많은 양을 사두면 더 저렴했기에 인터넷 쇼핑을 애용했다. 젤리가 집에 도착하기를 기다렸지만 며칠을 기다려도 배송 조회 시스템에서 조차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평소 같았으면 최소 3일 내로 왔을 텐데, 젤리 하나로 이렇게 목 빠지게 기다린 적도 처음이었다.


뉴스를 찾아보니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로 숨졌던 것이다. 산업 재해 수준이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는 이전부터 꾸준히 문제제기되었지만, 코로나 여파로 물류는 점점 증가하는 데 비해 택배 업계의 노동강도와 업무환경이 개선되고 있지 않았다. 하루 노동시간 약 16 시간은 택배기사 업무 강도는 물량이 많아질수록 온전히 기사들이 떠안아야만 했다. 물량 분류와 배달 업무는 택배 기사들의 주 업무 이자 일이지만 노동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일과 노동 모두 경제적인 의미에서 적절한 보수를 받기 위해 하는 정당한 행위를 말한다.



노동(勞動)

1. 몸을 움직여 일을 함.

2. 경제)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


나도 지금 일을 하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일인지 노동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정당하게 계약서를 쓰고 그에 맞는 보수를 받으며 주어진 업무를 하고 있지만 정작 일의 내용들이 머리를 쓰는 일보단 몸을 쓰는 일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일이든 노동이든 몸을 써야 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네이버 국어사전에 나온 개념처럼 육체와 정신의 노력을 얼마나 들이는 데 있었다. 노동은 주로 머리보단 몸을 많이 써야 하고 일은 몸과 머리를 같이 써야 했다.


내가 생각하는 일과 노동의 차이는 내 선택권이 미치는 범위에 있었다. 노동은 내 선택권의 영역이 없다. 그저 주어진 일을 주어진 계약 내용에 맞춰,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마치 수많은 물건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기능과 특징에 맞춰 분류해내거나 기계의 오차의 범위를 줄이기 위해 틀린 부분을 골라내야 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선택권은 없고 생각조차 할 필요 없다. 그저 몸만 움직이면 된다.

더 효율적으로 작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몸이 더 편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일은 조금 다르다. 적어도 내가 내 머리로 생각하고 몸을 움직일 수 있다. 기획안을 작성하는 일이나 제출할 문서를 만드는 일만 해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전달할지 생각할 시간이 있다. 프레젠테이션 ppt문서를 만들 때도 어떤 이미지를 사용하고 어떤 내용 순서로 전달하지 사소한 거 하나하나 모두 생각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다. 생각을 바탕으로 한 움직임들은 상대적으로 덜 고통스럽고 덜 피로하다.

생각이 필요하지 않는 일들은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들로 볼 때 지금 내가 하는 업무는 일이라기보다 노동에 가깝다. 내 생각은 전혀 필요 없고 회사가 요구하는 규격에 따라 자막을 입히면 된다.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손가락만 움직이는 일은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일을 통해 적당한 보람과 정신적 평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고 내세울 만한 경력도 없어 일을 하고는 있지만, 일을 함으로써 돈 이상의 가치를 얻을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매일 같이 일을 하면서 매번 그 일에 보람을 느끼는 것은 과한 일 일수도 있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업무 시간에 쏟는 만큼 내가 보고한 메일들이 부담스럽지 않고 명확하게 잘 전달되었는지, 내가 던진 아이디어가 꽤 의미 있는 말이었다든지, 내 ppt내용들이 깔끔하게 잘 작성되었는지 등 사소한 것들로부터 일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보람이 없다면 돈을 버는 의미도, 돈을 쓰는 의미도 소중하게 다가올 것 같지 않다.


또 매일 돈만을 위해 쓰는 시간들은 너무 불행하지 않나. 회사에 가는 날이, 일을 하는 시간들이 매번 기다려지지는 않아도, 적어도 일을 하면서 일의 진행과정이나 다음 업무 내용들이 기대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정당하게 보수를 받고 '일'하는,

생(生)과 사(死)를 오갈 정도로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지지 않는 일인 것 같다.


일과 노동 모두 적절한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들이라면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지지 않는 업무 강도와 업무 시간에 맞는 보수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택배 기사님들의 업무 환경이 하루빨리 개선되고, 빠른 시일 내로 대책이 강구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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