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가슴에 품고 있던 사직서를 제출했고, 짧디 짧은 회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회사라 하기엔 일 하는 동안 대부분을 집에서 근무를 했기에 회사 생활을 실감하기도 어려웠다.
어쨌든 일을 시작했지만, 결국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함께할 수 없었다.
짧은 몇 개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수험생활 때도 하지 않았던, 새벽까지 눈 떠 있는 시간도 너무 많았다. 사실 워낙 올빼미 형 인간이라 밤새 일하는 건 괜찮았지만, 거의 한 달 가까이 새벽 네시 반이 되어서야 잠에 들고 오후가 되어서야 눈을 뜨는 생활을 반복하니 생체리듬도 엉망이었고, 피부도 더 안 좋아졌다.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느라 평소 안 좋았던 목, 허리도 더 아팠고 눈도 뻑뻑했다. 그래서 일 뿐만 아니라 평소에 하던 공부마저도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이 두 가지를 균형 잡기 어려웠고 더더욱 일과 삶의 경계가 틀어졌기 때문에 일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공고와 면접을 보는 동안에도 이런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을 계속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사람을 기계로 부리는, 직원이 아닌 단순노동자로 여기는 곳에서는 일을 통해 얻을 게 없겠다고 판단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고 철없는 변명거리에 불과하겠지만, 기계가 아닌 주체적으로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차피 계약직 직원으로 입사해 조만간 떠나야 할 사람인데 더 빨리 내게 필요한 것들을 채우는 게 맞다 생각했다.
더구나 계약직 직원은 회사가 지켜주지 않기 때문에.
지금 당장 나한테 필요한 건 경력사항에 쓸 한 줄이 아니라 남들과 비슷한 수준의 정량 스펙인 '숫자 채우기', 원하는 직무에 매번 떨어져 가슴 쓰린 지원동기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돈보다 중요한 건 지원 직무 자기소개서 한 줄 한 줄에 깊이 고민한 흔적이 보이도록 하는 거였다.
재택근무 노동자는 사직서도 카카오톡으로 넘겼다. 퇴직 의사를 밝히고 인사팀 담당자에게 연락이 와 필요한 서류를 전달했다. 입사 계약서를 쓸 때는 대면으로 마주 봤지만 마지막엔 굳이 볼 필요도, 볼 이유도 없었다.
입사할 때도 남의 회사였지만 퇴사할 때는 더 남이었다.
회사는 들어오기는 참 어려운 곳인데 나갈 때는 참 쉽다.
퇴사 의사를 밝히기까지가 오래 걸리지, 막상 서류 한 장으로 끝낸다.
저 퇴사하고 싶습니다.
여러 경우의 수를 들어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스스로 결론을 내어 어렵게 꺼낸 말이었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당황하는 듯 보였어도 끝내 내 의사를 존중한다는 말에서 퇴사는 참 쉬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을 구할 때까지 일주일만 더 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서도, 앉은자리에서 십 분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일자리는 충분히 내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거대한 공장을 돌리기 위해 쉽게 갈아 끼우는 부품 한 개에 불과했으니까.
카톡으로 사직서를 제출해서인지 집에서 시작하고 집에서 끝내는 일 때문인지 퇴사가 와 닿지 않았다. 처음 몇 번 얼굴 보고, 팀원들끼리 점심시간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여서 친해지지도 못했다. 업무량이 쏟아져 고통스러워 죽기 직전 서로 상황을 살피기 전까지는 연락할 일도 없었다.
이래저래 팀장님과 고운 정 미운 정마저 들어버려 꽤 인연이 깊어졌다. 사회 선배로서 중간에 그만두는 게 커리어에 좋은 일은 아니라고 심사숙고해보라 하셨지만, 너무 심사숙고한 결과라 내 뜻은 변함없었다. 솔직히 조금 흔들리기도 했지만, 학업보다 일에, 내 삶보다 불안정한 일에 깊이 매달릴 수 없었다.
퇴사일이 다다르자 팀장님은 인생 선배로서 힘든 일 있음 연락하라고, 밥 한 끼 사주겠다고, 나의 앞날을 응원하는 연락을 받고 나자 퇴사를 실감하게 됐다. 팀장님의 말 한마디 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고운 정 미운 정마저 들어서 인지 괜스레 퇴사가 죄송스럽기도, 괜히 아쉽기도 했지만.
퇴사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더 나은 곳에서 더 나은 일을 하고 싶은 열망도 있었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욕심을 지금 부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미 퇴사는 했고 이제 내게 더 집중할 때다.
매달 꽂히던 월급 말고는 달라진 게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