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으로 편견을 깨기 위해 <야구소녀>

by 미래

편견은 때론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 사람이 가진 혹은 내면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선 편견의 겹을 벗겨내야 한다. 작은 공을 거대한 현실의 벽을 무너뜨리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다. 계란으로 바위를 칠 순 없어도 바위를 더럽힐 수 있듯, 작은 공으로도 충분히 현실의 벽을 깨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야구소녀>는 천재 야구 소녀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프로팀 입단이 꿈인 주수인에 대한 이야기다. 주수인은 프로팀에 입단하는 게 꿈이지만 여자 선수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하고 기회도 쉽게 얻지 못한다. '여자가 무슨 야구를 하냐'는 편견 속에서도 수인은 '야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며 당차게 반박한다.

시속 130km를 던지는 투수는 여자선수로서 인정받을 수 있지만, 프로팀을 입단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 현실의 벽을 마주할 때마다 수인은 손톱 밑에 피가 나도록 공을 던지고 연습한다. 야구소녀는 야구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지만, 스포츠 영화가 아니라 '편견을 깨는' 영화다. 수인은 그 작은 야구공으로 두꺼운 현실의 벽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려 한다. 우리는 그런 수인을 응원하게 되고, 우리가 가진 편견 역시 허물어 준다.


누구에게나 편견은 있다. 뉴스 기사로도 자주 언급되듯 택배나 배달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 장애인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편견, 여자라서 운동을 못 할 거라는 편견들은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편견을 깨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에 타자인 '그들'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로 봐야 한다. 그래야 편견을 벗고 세상이 변한다.


안 되면 포기해. 그거 부끄러운 거 아니야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거라고 배워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는 게 지는 거라고 생각해 온 우리는 포기라는 단어가 굉장히 낯설다. 수인의 엄마는 수인이 안 되는 일을 너무 붙잡고 있을까 봐, 또 그런 수인이 힘들어하고 다칠까 봐 수인이 계속 야구를 하는 것을 걱정하고 반대한다. 엄마가 다니는 회사에 부탁해 어렵게 공장일을 시키며 무모한 일이 아니라 현실 가능한 일, 돈을 벌고 살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한다. 그래도 수인에게 포기란 없다. 안 될 일에 포기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게 부끄러운 거라 생각한다. 살면서 현실과 꿈 사이에서 타협해야 할 것들이 많다. 꿈만 좇다 가랑이만 찢어질 거 같아 가슴속에만 꿈을 묻고 살거나,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에 가고 싶지만 스스로와 적절히 타협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현실과 타협하기 전에 자신이 잘하는 것을 먼저 찾아보라 말한다.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은 단점을 극복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장점을 부각하는 거라며 수인이 가진 장점으로 우직하게 끌고 가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정호가 고등학교 와서도 야구하는 애들은 우리 둘 뿐이라는 것을 보면서 꾸준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는 게 중요함을 깨닫는다. 대단한 사람이 대단한 게 아니라 오랫동안 꾸준한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하는 애들 중에 프로 야구 선수로 계속하는 애들은 4%가 채 되지 않고, 그중에서 여자는 없다는 고교팀 야구 감독의 말처럼 프로팀 입단 선수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여자라서 어려운 게 아니다. 여자든 남자든 모두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사실을 아는 수인은 더 당당하게 외친다.


난 해보지도 않고 포기 안 해요.


빨리 던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타석에 서 있는 타자가 공을 못 치게 만드는 게 중요한 거다. 투수가 할 일은 속도가 빠른 공을 던지는 게 아니라 안타를 내어 주지 않는 거, 공을 칠 수 없게 하는 게 더 중요한 거다. 그래서 결국 느리게 던져도 이길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인생에서 중요하는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것. 빨리 던지는 게 정답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어떤 방향이 옳은 길인지는 알 수 없다. 수인에게 옳은 길은 정당하게 실력으로 평가받는 것, 어떤 방법으로든 타자가 칠 수 없는 공을 던지는 것이다.


투수와 타자의 심리 싸움에서 이기려면 자신의 장점부터 알아야 한다. 내 장점을 알고 장점을 살린 경기를 한다면 어느 경기에서건 이길 수 있다. 부상당한 선수나 던지는 '너클볼'을 던진다고 비웃을 게 아니라 굳이 여자가 던지는 공을 못 친다고 빈정댈 필요 없다. 회전수가 많은 변화구를 잘 던지는 수인의 장점만 보여주면 된다.

영화에서는 너클볼이 무엇인지, 얼마나 회전수가 많아야 유리한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런 야구 지식들이 없어도 수인이 무엇을 위해 악착같이 공을 던지고, 수인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야구소녀는 그런 점을 잘 살렸다.


물론 영화 자체로서 보면 아쉬운 점도 많다. 수인을 믿어 주는 존재인 아버지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점, 극 초반에 아버지의 사건이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점, 그리고 부녀 관계 형성에서 아버지의 캐릭터가 모호한 것도 영화 전체 전개를 볼 때 몰입도가 약했다. 그리고 오히려 수인의 감정에만 집중하느라 주변 인물에 감정이 쌓이지 못했다. 부차적인 이미지로만 활용한 듯 보였다. 그래서 전개가 오히려 느슨했다. 하지만 흔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라서 좋았다. 박진감 넘치는 장면은 없지만 수인으로 인해 주변이 변화한다는 점도 좋았다. 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냐는 수인의 말에 코치가 수인의 조력자가 되었고, 또 여자라서 야구하기 힘들다는 구단 직원들이 수인이 던지는 공에 수인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결국 편견을 깨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세상을 바꾸는 데 수인의 우직함이 빛을 발했다. 이제는 우리가 뒤에서 응원할 게 아니라 같이 뛰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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