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미술시간이 제일 싫었다. 체육시간에는 다 같이 즐기는 시간이라 마냥 즐거웠고, 운동 신경도 나쁜 편은 아니어서 곧잘 했다. 음악시간은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습관처럼 배우던 피아노도 배웠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고, 전교에서는 몰라도 반에서는 눈에 띄게 재능 있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수업시간에만 열심히 하면 따라 할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미술 시간은 달랐다. 어릴 때부터 미술을 배워 왔던 애, 미술은 배우지 않았어도 미술 감각이 있는 애, 그냥 그림 그리기 좋아해 그리다 보니 잘 그리는 애, 아예 미술에 소질에 없는 애까지 너무나 명확하게 보였다. 그중 난 미술에 소질 없는 편에 속했다. 좋아하지도 않았고 잘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잘하는지는 더더욱 몰랐다.
그런 내가 디자인학과에 갔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워낙 그림 그리기를 잘 못했던 터라 내심 걱정은 있었지만, 나와 같은 아이들이 많다는 것에 한 번 안심을 했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것과 옷을 잘 만드는 것에는 크게 상관관계가 없다는 교수님 말에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의상 디자인학과 드로잉 테크닉 첫 수업은 신기했다. 드로잉 수업이라 그림을 마냥 잘 그려야 할 것만 같은 수업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물론 배우다 보면 그림 실력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래도 이 수업은 그림 소질이 덜 중요한 것 같았다.
수업 시간에 배운 건 '무의식 드로잉'이다. 무의식 드로잉은 의식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을 말한다. 보통 우리는 사람 얼굴을 그린다 하면 눈은 어디쯤에 있고, 코는 어떻게, 머리나 얼굴 모양은 이렇게 하는 식의 의식된 표현 방식이 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무의식 드로잉은 다르다. 어떤 사물에서 눈을 떼지 않고 시선이 가는 그대로를 캔버스에 그리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의식 드로잉을 할 때 캔버스를 절대 보지 않는 것이다. 한 대상을 보고 그리면서 캔버스를 보는 것은 우리를 의식 속에서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것은 무의식 드로잉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
무의식 드로잉을 통한 그림을 잘 그린 그림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저 투박한 손 그림을 보고 그림을 잘 그린다 말하기도 어렵다. 사실 무의식 드로잉을 그려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으며, 수업시간에 본 그림도 대부분 괴생명체 비슷한 그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시간 짜리나 되는 교과목 수업이 있고, 교수님도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신다. 디자인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무의식 드로잉을 하는 이유는 어떤 대상을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기 위해서다. 그림을 그리는 5분여 동안 무언가를 시선을 떼지 않고 오래 관찰할 일이 드물다. 자세하게 관찰하며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면서 내 무의식이 그 대상을 어떻게 느꼈는지를 알 수 있다.
신기하게도 그리는 사람마다 연필의 진하기와 세기, 질감과 표현 정도가 다르다. 무의식 드로잉을 하는 5분간 동안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어떤 작은 생각도 없이 한 대상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꾸만 캔버스를 보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고 캔버스를 보다 보면 보고 그린 것도 아닌데 무엇을 그렸는지가 보인다.
살면서 어떤 물체를 오목조목 따져가며 본 적은 그리 많지 않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그 대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대상만의 특징이 보인다. 단순한 선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면 면으로 이뤄져 있다거나, 그 선과 면의 모양도 제각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릴 적 미술 시간을 싫어했던 이유는 정답이 있는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미술시간에는 정물화를 그리게 했다. 보통 사과나 그 비슷한 야채나 과일들을 두고 똑같이 따라 그려야 했다.
공간지각력이 부족한 나는 3D 입체 물체를 2D 캔버스 위에 3D로 그려내지 못했다. 아무리 원근법을 강조해 그림을 그리라고 해도 내 노력으로는 정물화를 묘사하지 못했다. 똑같이 따라 그려야 잘 그렸다고 평가받는 미술시간은 나와 맞지 않았다.
반면 무의식 드로잉은 정답이 없다. 수업 시간 내내 교수님께서 강조하셨던 것은 정답이 없으니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 없이 잘 관찰하고,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었다. 피드백을 주신 것도 '못 그렸다'가 아니라 이 대상에서는 이런 것도 보이니까 이런 것들을 놓치지 말라는 조언뿐이었다. 심지어 저런 거친 그림을 보고서도 '표현이 좋다'는 식의 칭찬은 자신감을 불어넣기 충분했다. 게다가 물체를 보고 그리며 시선을 따라가다 놓칠 수 있는 작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보는 법도 가르쳐주셨다.
무엇보다 잘 그린 그림은 똑같이 그린 그림이 아니다. 무엇이 실제인지 모르도록 똑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야 할 것이다. 사진과 그림은 다르다.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는 사진과 달리 그림은 보이는 것을 그리거나 혹은 상상한 것은 그려내는 것이다.
드로잉의 기본은 관찰에서부터 시작했다. 드로잉뿐만 아니라 어떤 대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 먼저였다. 보다 보면 어떤 게 문제이고, 무엇이 특별한지 알아차리기 쉬웠다. 면접에서 차별적인 발언은 없었는지, 서민들을 위한 주택 정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국회가 어떤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지 등 소란스럽게 떠드는 뉴스도 결코 우리의 삶과 동 떨어진 이야기들은 아니기에 자세히 들여야 봐야 하지 않을까. 보고 싶고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도 많지만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결코 그 핵심을 알아낼 수 없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가도록 내버려 둬도 되지 않을까.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무엇이 정답이라고 결정짓지 않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머리가 이끌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무의식에 이끌려 그린 그림들이 기괴하고 낯설어 보여도, 가끔은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망망대해에 있어도 방향키와 닻이 있다면 우리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