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인형이 있다. 남들에겐 쓸모없어 보여도 나에겐 쓸모 있는 침대 위 작은 토끼 인형은 내 애착 인형이다. 평소에는 잘 들여다보지도 않지만 잘 때만큼은 늘 내 옆에 있다.
사실 그 애착 인형은 내가 산 인형이 아니다. 동생이 인형 뽑기로 뽑힌 인형을 선물을 받아온 후 언제부터인가 내 애착 인형이 되었다. 얼마쯤 되었을까. 사실 짐작되진 않지만 이젠 없으면 허전하다.
내 옆에서 존재감을 뽐내는 이 인형이 어떻게 내 옆으로 오게 되었을까. 갑갑하고 좁은 인형 뽑기 기계 안에서 몇 날 며칠을 기다리다 누군가에 뽑혀 세상 밖으로 나왔겠지. 이 인형이 내 애착 인형이 된 이유는 꼭 나와 닮아서다. 생김새가 닮았다기보단 그가 내 곁에 오기까지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와 닮아있는 것 같아서다.
일을 하고 싶다. 학생 신분은 좋으면서도 씁쓸하다. 여전히 학생이기에 보호받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학생이라서 소외될 때도 있어서다. 일을 할 때면 학생이 되고 싶다가도, 학생일 땐 일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유감스러운 답장만 받을 때면 나의 쓸모에 대해 물음표를 던질 뿐이었다.
학생이었다, 취준생이었다, 직장인이 되는 자연스러운 길은 당연하게도 쉬울 줄 알았다. 겪다 보니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었다. 나의 쓸모에 대한 해답을 찾는 길은 망망대해 속에서 헤엄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내 인형이 쓸모없다고 말한다. 비염과 알레르기가 있는 내게 먼지가 쌓여 피부염과 알레르기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내 품에 꼭 안기는, 내 몸의 1/10쯤 되는 작은 소중한 인형은 쓸모 있는 존재다. 안고 있으면 힘이 나고, 안정감 속에서 나를 잠들게 하기 때문이다. 작은 인형이지만 내게 주는 힘은 크기 이상의 힘이 있다.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형도 꽤 오랜 시간 투명 기계에 갇혀있었을 것이다.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뽑아주는 이가 없어 한참을 절망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각양각색 인형들이 섞여 있는 곳에서도 눈에 띄는 곳에 있으려 발버둥 쳤기에, 결국 내 곁에 오게 됐다.
내 애착 인형이 나와 닮았다면, 언젠가는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기계 속에 갇혀 있어도, 쓸모없다고 손가락질받아도 말이다. 쓸모 있음과 없음에 대한 기준은 내가 정한다. 단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도 이름을 불러줌과 동시에 꽃이 되는 것처럼 예쁜 쓰레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도 내 애착 인형에 이름을 붙여주면 그것은 희망이 되었고 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