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카트는 이모님 방에 놔주세요."
"이모님 방이요?" 내가 물었다.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손가락을 뻗으며 말했다. "저 쪽으로 가서 안쪽에 보면 있어요."
이모님 방이라길래 난 또 귀엽고 깜찍한 방이 있는 줄 알았다.
문 앞에 들어서자마자 크고 굵은 글씨체로 쓰여 있는 글이 먼저 보였다. 'STAFF ROOM'
영어로 된 그 글을 보자마자 왠지 힘이 쭉 빠졌다. '그럼 그렇지.'
영어로 쓰여 있으니까 왠지 그럴듯해 보였지만 들여다보니 아니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다.
그 방에는 분리수거를 할 수 있는 쓰레기 통과 방역에 필요한 소독약, 청소에 필요한 건 다 있을법한 다이소 같았다. 그 옆엔 라커와 간이침대가 놓여있었다. 모로 누워도 자칫하면 떨어질 것 같았고, 키 좀 큰 사람이 천장을 보고 누워도 다리가 삐죽 나올 것 같았다.
말은 친근하지만 그렇지 못한 방이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얼마나 편안하게 영화를 보고,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는지 알지 못했다. 깨끗하게 치워져 있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고선 깨끗한 건 없었다. 우리 집 화장실 변기가 찌든 때 없이 깨끗한 것도, 바닥 타일에 물 때가 없던 것도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 닦아낸 결과였다. 집에서도 잘 안 하는 청소며 설거지를 아르바이트로 하고 나서야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일하시는 청소도우미들, 아니 이모님들을 보며 돌아가신 할머니 얼굴이 겹쳐 보였다. 할머니께서도 한 연수원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셨다. 어렸고 무지했던 10년 전의 나는, 할머니께서 자신의 연세에 일할 수 있음에 만족감을 느끼고, 매달 들어오는 돈에 흐뭇해하셨던 것만 기억난다. 얼마나 힘들게 일하셨는지는 10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그것도 직접 아르바이트를 하며 청소노동자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수많은 청소노동자들이 마땅한 휴게 공간이 없어 화장실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냉. 난방도 잘 되지 않는 곳에서 겨우 몸을 누인다. 그렇게 힘들게 벌었던 할머니의 노동이 나의 밥이고 간식이고 용돈이었다.
나는 이제 지난날의 나를 용서한다. 무지했고 무관심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용서를 구한다. 잘못을 잊어버리겠다는 망각이 아니며, 앞으로 그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다짐이다. 타인의 잘못을 벌하지 않고 덮어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용서를 빈 사람보다 용서를 해준 사람이 더 칭송받는다. 하지만 용서의 끝은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잘못하고 뉘우치며 후회하고 반성하기를 반복한다. 지난 10년은 반성하고 깨달았으니, 앞으로 살아갈 10년은 그 시절 할머니의 뿌듯함이 다른 노동자의 입가에도 미소가 띠는 날이 되도록 부채의식을 갖고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