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시간 할머니 사랑으로 자란 덕에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좋아했다. 명절 온 가족이 다 모여 식사를 할 때도 할머니 옆자리는 늘 나였다. 놀이터에 나가 모든 놀이기구를 한 번씩은 다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만만찮은 육아 난도를 가진 어린 나였어도, 할머니는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신 적 없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키워진 난 할머니와 함께한 모든 기억들이 소중하다.
할머니 생신 날이면 꼭 선물과 함께 손편지를 써 드렸다. 막 한글을 배워 흰 종이에 그림으로 절반 이상을 채우던 시절에서부터 작가가 되겠다며 글을 좋아하던 학생 때까진 사랑하는 마음 꾹꾹 눌러 담아 편지에 옮겨 적었다. 안타깝게도 성인이 된 이후엔 할머니와 함께 남겨진 것들로 할머니를 기억할 뿐이었다.
할머니 유품을 정리하던 날이었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교회에 가셨던 할머니는 유품에서도 성경책이 가장 눈에 띄었다. 난 지금 딱히 종교는 없지만, 어린 시절엔 할머니 따라 교회에 갔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할머니가 가장 아꼈고, 가방 속에 제일 먼저 챙겼던 성경책을 훑어봤다. 몇몇 구절마다 노란 형광펜이 칠해져 있었다. 할머니에게 울림을 줬던 문장들을 눈으로 훑으며 할머니 마음을 들여다봤고, 두 손 모아 기도 하는 할머니 모습을 떠올렸다.
성경책을 후루룩 넘기다 옆으로 미끄러져 삐죽 나온 책갈피가 보였다. 그 책갈피를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잃었다. 선물로 받은 듯한 근사한 책갈피는 아니었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직접 써서 만든 책갈피였다. 그때 할머니가 쓴 글씨를 처음 봤다. 글씨 크기도 제각각으로 다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울퉁불퉁 내려오는 글이 쓰여 있었다. "역경에 처했다고 상심하지 말고 성공했다고 하여 지나친 기쁨에 휩쓸리지 말라." 할머니의 글씨를 본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이런 글을 썼는지 다 알진 못하지만, 짐작하건대 할머니는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남긴 것 같았다. 혹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엉성하게 쓴 할머니 글들을 보며 편지는 주는 것이 아니라 남기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가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그리고 손으로 눌러쓴 편지들은 적는 이의 마음을 남기는 일이다. 사람은 떠났지만, 편지는 남았다. 남아있는 편지들을 보며 남겨진 사람들은 그리움, 후회, 아쉬움 등 남아 있는 마음들을 정리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면, 사람이 간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 모든 것을 흔적으로 남겨두는 것 같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편지는 나의 마음이 종이에 쓰여 상대의 마음에 가 닿는다. 하지만 글로 기록된 마음들은 결국 다시 내게 돌아온다.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교회에 가는 걸 좋아했던 할머니. 병원에 입원할 때도 가장 먼저 성경책을 챙기셨던 할머니. 본인이 직접 쓰신 책갈피를 보며 아마도 좀 더 많은 날들을 버티지 않으셨을까. 항암치료로 고생하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안 하실 정도로 누구보다 강인했던 할머니께서 어떤 마음으로 그 힘든 순간들을 버티셨을지 생각해 본다. 할머니의 책갈피가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처럼 느껴졌고, 책갈피를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났다. 투박하게 쓰인 글을 볼 때마다 할머니의 말처럼 내게 고난이 찾아와도 쉽게 쓰러지지 말고, 기쁘다고 게을러지지 말고 그렇게 평온하게 매일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