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해방을 찾아 한 발씩 <나의 해방 일지>

by 미래

진지하게 하나의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이 드라마, 애정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해방 일지>는 인간으로부터 상처받은 인간이, 다시 인간에게서 채워지고 해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물을 세밀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그 인물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친절하지 않다. 그런데 그 여백이 많아서 생각할 거리가 많고, 모든 걸 보여주지 않아서 내 감정이 들어갈 공간이 있다. 이렇게 드라마를 보며 애절하고 생각을 많이 한 적 있었나 싶다. 각 인물들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들 가슴이 꼭꼭 새겨 놓고, 계속 돌려 보고 싶을 정도로 좋다.


견딜 수 없이 촌스런 삼 남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그들 각자의 모습에서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그렇게 살다 '이게 아닌데'하고 기정처럼 사랑한 번 제대로 하고 싶다가, 미정처럼 수더분한 것처럼 연기하며 살다가, 창희처럼 욕망을 숨기고 원치도 않은 길을 묵묵히 견뎌 내며 사는 모습들 모두 그들에게서 조금씩 나를 본다. 세 남매와 비슷한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지만, 각자 조금씩 부족하고 채워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건 아닐까. 그게 사랑이든 자신감이든. 추앙이든 뭐든.


그래서 촌스러운 그들이 밉지만 또 안쓰럽고, 솔직하게 모든 걸 쏟아내는 그들이 사랑스럽다. 경기도에서 출퇴근을 하는 것만으로 힘들고, 각자의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하는 삶도 너무 현실적으로 정말 꼭 어딘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들. 아니 우리들. <나의 해방 일지>가 주는 이야기가 잔잔하지만 묵직하게 울림이 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슴이 저릿하고 늘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을 정리하기 바쁘다.


미정의 삶은 구 씨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로 나뉜다고 한다. 구 씨를 만나기 전 미정은 사람들은 다 귀찮고 눈에 띄는 표정 변화도 없이 그렇게 무던하게 살아갔다. 어느샌가 매일 술에 취해 사는 이 남자를 본 뒤로는, 평범했던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어졌다. 미정이 만났던 모든 남자들은 다'개새끼'였지만, 날 완전히 망가지게 두지 않는 이 남자만큼은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미정을 보며 증오만큼 날 무겁게 하는 게 없구나, 나도 내가 온전히 추앙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넌 날 쫄게 해"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거 같지만 별로 말도 없고, 혼자 이 세상 짐은 다 지고 있는 거 같은 구 씨. 그가 가진 매력은 묵묵히 옆에 있어 준다는 거다. 어두운 밤길에 봉투에 담긴 소주병 부딪히는 소리로 자신을 알리고, 밭 일 하다 바람에 날아간 모자는 멀리 뛰기로 구해온다. "추앙? 그게 뭔데 나 몰라"라고 말하던 구 씨가 "추앙 어떻게 하는 건데?" 하며 늘 역 앞에서 미정을 기다린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했던 존재였다. 서로가 있었기에 그들은 변했다. 추앙. 낯선 이 단어가 사람을 변화시키는구나.


"사랑으론 안돼. 날 추앙해요"

살면서 한 번도 채워진 적 없었다는 미정, 한 번도 진짜로 사람을 좋아한 적 없었던 거 같다는 미정은 사랑만으로는 자신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이 대사를 보고 뒤통수 한 대 맞은 거처럼 잠시 멍했다. 작가가 왜 이 낯선 단어를 썼는지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야 이해했다. 사랑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사랑하는 애인이 자신의 자존감을 채워준다고 했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았다. 이별하고 꽤 오랜 시간 혼자 있어보니, 사랑이 내 자존감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누군가에 기대 내 자존감을 채우려는 순간, 그 사람이 떠나면 나는 다시 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쉽게 오고 쉽게 떠난다.


추앙은 다르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응원하는 추앙은 내 옆에서 그 사람이 없어도 내가 부족해 보이거나 못나 보이지 않다. 불안하긴 했지만 내 옆에 있어 주던 구 씨가 떠났을 때도 미정은 "날 떠난 모든 사람들이 불행하길 바랬지만, 그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으면, 숙취로 힘든 날이 없었으면. 심지어 좋은 일이 있으면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다"라고 빌어준다. 구 씨가 떠나고 울었고 그리웠지만, 미정은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달라졌다. 날 완전히 망가지게 두지 않는 사람, 날 잡아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우리는 달라진다. 다수가 아닌 1이라고 생각한 자신에게 2가 될 수 있게 해주는 사람. 추앙은 그렇게 채워주는 사람이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너무 많이 공감했고 속으로 너무 많이 울었다. 그들이 느끼는 모든 감정이 다 이해되어서 울었고, 그들이, 내가, 우리 모두 다 구겨진 것 없이 모두 다 행복하길 바라면서 울었다. "어렵게 어렵게 끌고 가는 인생에 단 몇 초만이라도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그게 살아갈 힘이 되었으면 하고."


청승 맞고 우울의 끝을 달리는 드라마가 아니라 진짜 삶의 모습, 진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있다면 <나의 해방 일지>가 아닐까. 그리고 결국 '그래서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데?'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 감히 올해의 드라마라고, 좋아하는 드라마가 뭐냐고 물으면 숨도 안 쉬고 말할 정도로 내가 진짜~ 좋아한다. "나의 해방 일지"


ps. 창희도 정말 매력적인 인물인데, 한 번 더 봐야지. 아껴 놓고 힘들 때마다 꺼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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