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삶 그 사이에서
오랜 목표였던 졸업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대회를 앞둔 발레 연습생 주영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내 삶을 되돌아 봤고 아름답지만 폐허로 가득한 현실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누구나 본능적으로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것이 부모가 되었든, 친구든, 남자에게든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불완전한 우리는 그 사랑에 대한 욕구 때문에 우리가 망가져 가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그 사랑의 형태가 변해갈 때도 여전히 그것이 사랑의 다른 방식이라고 믿으며, 그가 아직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늘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야 과거의 그 사랑이 잘못된 형태로 이어져 온 것임을 알게 된다.
내가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건 벼랑 끝에 선 사랑이다. 자신의 꿈만큼이나 사랑했던 남자도 위태롭고 불안한 사랑으로 전락될 수 있음이다. 나를 절벽 앞으로 밀어낸 그가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때도 실은 그 사람은 한 때 내가 좋아했고, 사랑을 나눴던 사람이다. 우리의 실수가 그 한순간의 임신이, 사랑했던 우리의 모습을 몰아낸다. 절벽 앞에 선 우리의 선택과 그 선택 앞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 현실에 대한 벽과 이미 변해버린 사랑 앞에서 그 중력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좋았던 사랑의 형태가 무엇 때문에 변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했다. 서로가 자석처럼 이끌리 듯, 지구에서 작용하는 가장 큰 힘인 중력처럼 서로에게 벗어날 수 없었지만 그 중력을 거스르는 방법은 오로기 자신의 힘으로 버티는 것, 자신의 힘으로 뛰어오를 일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 나를 사랑으로 대해줬던 사람과 이별을 하고 그 당시의 나는 누구보다 가장 우울하고 불안한 침전의 상태였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핸드폰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 속에서든 나보다 행복한 상태의 사람들로 가득한 것처럼 보여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절벽 앞으로 밀어낸 그 사람이 싫었고, 너무 미웠고, 그 사람이 인생이 망가졌길 바라는 저주를 매일같이 하고 살았다. 절벽 앞에 서 본 사람이야말로 그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낄 수 있다. 한 발짝만 앞으로만 가면 인생이 끝날 것만 같고, 뒤로 돌아가자니 다시 이전의 기억들로 힘들게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삶을 살았든 지난 우리 인생은 꽤 가치 있다.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일 테지만, 결과야 어쨌든 그 과정 속에서 성장했으니 그걸로 만족이다.
절벽 앞에 선 인생도 어차피 내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