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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량한 Jul 08. 2019

없어서 창의적이다

없어도 너무 없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창의성은 더 극대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

환경이 변할 때마다 우리는 그 상황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출 수 없다. 이럴 때 적응하여 살아남으려면 ‘있는 것’을 가지고 ‘필요’에 맞게 바꿔 쓸 줄 알아야 한다. 쓰임이 정해진 물건이라고 해도 필요에 따라 그 쓰임을 다르게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 대처 능력이야말로 ‘생존력’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p. 148


익숙하긴 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기에 특별히 반기를 들고 싶지는 않다.

듣기 좋은 말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니!
모든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리 아닌가.

하지만 읽다 보면 그런 반가운 마음은 금방 다른 나라 이야기가 된다.

일단 이 책은 일반인 모두를 대상으로 썼다기보다는 창업자들, 그중에서도 젊고 가진 것 없는 창업자들을 상대로 하는 것 같다.

얼핏 보편적인 방법론인 것 같지만 계속해서 세계적 벤처신화들이 나열되고 창업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젊은 창업자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느껴진다.

거기다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저자의 모토는 ‘헝그리 정신’으로 기우는가 싶더니만,
끝내는 ‘노오력’의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세계적 벤처신화를 예시로 들던 책은 기어코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설탕 신화를 논한다.

익숙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청년들 보고 중동으로 가라던 한때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없을수록 창의력이 강력해진다’는 말과 ‘아무것도 없어도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엄연히 다르다. 이 책은 시종일관 그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든다.
멘토와 꼰대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아니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없을수록 창의력이 생긴다는 말은 분명 사실이지만,
아예 아무것도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두 가지는 확보가 되어야 한다. 숨통을 트게 할 정도의 두 가지.
하지만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두 가지.

먼저 시간이 없으면 창의력은 무의미하다.
책 속에서 예시로 든 국내 발명가들은 대부분 농촌에 거주하거나, 농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농사를 짓는다고 한가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하루 열 시간씩 일하고 집에 돌아온 사람이 반짝이는 창의력을 발휘할 수는 없을 거라는 말이다. 열 시간 이상 공부하고 집에 돌아오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농사로 집약적인 소득을 올리는 농부가 아니라면 잉여시간은 도시 직장인들보다는 많을 수밖에 없다. 그 ‘잉여’라는 것이 창의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이 공간이라는 점도 마찬가지 이야기다.
스티브 잡스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애플을 창업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하지만 그 첫 사무실 겸 작업실이 차고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는 잉여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뭔가 작당을 모의할 만한 잉여 공간.
그 공간만큼은 자기 맘대로 해볼 수 있는 장소.

에디슨도 빈 열차 칸 안에서 연구를 한 사례가 나온다.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에게 그런 공간이 허용될까. 잉여는커녕 한 몸 뉠 방 한 칸 갖기도 힘든 형편이다. 이건 다시금 농촌의 경우가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기도 하다.

그렇다면 잉여의 공간과 시간을 가진 사람에게 ‘없어서 창의적이다’라는 말이 해당된다는 말인데, 그런 사람이 과연 ‘없는’ 사람일까. 오히려 그런 사람은 이 사회에서 상당히 많이 가진 사람 아닐까.

저자의 주장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세계적인 학자들은 모두들 한목소리로 열악함이 창조성을 증폭시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외국이나 국내의 특수한 경우를 들어 마치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인 것처럼 굴어서야 되겠나.


저자는 우선 흥분을 가라앉히고, 지금 자신이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적용 가능한지를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먼저 최소한의 환경을 마련해준 다음에야 창의력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난 다음에 다시 책이 나온다면 훨씬 좋은 내용을 많이 담고 있을 것 같다. 지금 상태라면, 젊은 창업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는커녕 죄책감과 좌절감만 더해줄 것 같다.


알량한 블로그

(http://blog.naver.com/alrya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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