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불러온 진짜 위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로 유명한 로버트 기요사키의 신작.
저자의 생각이 총집결된 책이기 때문에 이전 시리즈를 안 읽었다고 해도 읽는데 무리는 없다.
정규 교육 시스템을 거부하는 저자답게 아주 쉽고, 반복적으로 설명한다.
간단한 그래프나 도표로 설명하는 방식도 친절하고, 어려운 글들을 저자 나름대로 핵심만 짚어서 해설해 주는 것도 좋았다.
첫 번째 챕터인 ‘가짜 돈’이 이 책의 핵심이다.
전체 내용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나머지 두 챕터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반복한다. 첫 번째 챕터를 읽지 않으면 나머지 두 챕터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첫 번째 챕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가짜 돈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돈이 가짜 돈이다.
미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던 1971년부터 화폐는 가짜 돈이 되었다는 것.
이후로 세계의 중앙은행들은 필요할 때마다 돈을 찍어내고,
그나마 그 가짜 돈도 대출의 마법을 통해 엄청나게 불어난다.
그것이 반복돼 오면서 이미 돈의 가치는 위태로울 정도로 추락했다.
때문에 가짜 돈을 포기하고 진짜 돈에 집중해야 한다.
안 그러면 부자들의 배만 채워주는 꼴이 된다.
아주 재밌는 이야기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때론 충격적일 정도.
하지만 최상위 부자들과 정부는 이런 사실들을 알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가 교육, 그중에서도 금융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다.
가짜 교육과 가짜 선생을 다루는 두 번째 챕터는 때문에 저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부분이지만, 의외로 이 책의 가장 부실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미 첫 번째 챕터에서 다룬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기도 하고,
저자 자신만의 영적 생활(명상으로 대표되는)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기 때문에 약간 딴 길로 새는 느낌이다. 금융 교육과 더불어 영성 교육에 힘써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럼 진짜 돈은 무엇인가? 금과 은이다. 좀 더 넓게는 금, 은, 부동산.
그것은 인류가 생겨나기 전부터 있었고, 인류가 사라진 뒤에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돈이다. 실제로 주요 화폐 가치에 대비해 금의 가치는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저자는 시종일관 금과 은을 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데, 재밌는 건 사 모으기만 하고 절대로 되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나는 금과 은의 실물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구입한다. 남들과 거래하거나 팔 계획도 없다. 워런 버핏이 계속 주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나도 금과 은을 계속 갖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돈을 쓰고 싶은데요.” “난 돈이 필요해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p. 79
그렇다면 이건 여윳돈이 있는 사람들의 투자 이야기다.
저자는 금이 비싸다면 은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쓸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사실 저자의 금 모으기(?)는 재테크가 아니라 위기 상황을 대비한 것이다.
위기 상황은 곧 몰려올 대재앙이다.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정도의 재앙이 아니라 훨씬 큰, 세계적 규모의 재앙이다.
그것은 시장의 붕괴, 계급혁명, 전체주의 정권의 등장, 그리고 어쩌면 전쟁까지도 동반할지 모른다.
시장이 붕괴하면-이는 필연적인 결과다.-가난한 사람들과 중산층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p. 435
역사적으로 볼 때, 최상위 부유층과 다른 계층과의 경제적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면 혁명이 발발한다. 내가 우려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러시아와 쿠바, 베네수엘라의 경우에도 부유층과 나머지의 빈부 격차가 극심해졌을 때 혁명이 발발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새로운 혁명을 앞두고 있는 게 아닐까? p. 136
이 거대한 눈사태가 전산 시스템을 강타하기라도 한다면 정부의 돈과 대중의 돈은 둘 다 끝장이다. ATM 작동이 중단되고, 월스트리트가 사라질 것이며, 월드와이드웹이 무너지면 대중의 돈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p. 505
저자는 얼마만큼의 현금을 따로 보관하고 있고, 금을 계속 사들여 해외의 사설 금고에 보관하고 있으며,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집을 사두기도 했다. 그는 위기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세 번째 챕터에서는 자산과 자산 늘리기에 대한 개념을 바꾸기를 촉구하는데, 의외로 영적인 각성을 요구한다.
책 전체에 걸쳐서 영적인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고, 종교적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성경 말씀을 돈 문제에 직접 적용시키기도 하는데, 사실 저자의 말은 종교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자신의 말을 뒷받침할 근거로서 종교의 일부분을 가져다 쓰는 정도다.
오히려 투자 전략 자체가, 시장 경제를 내다보는 혜안 자체가, 그리고 금과 은 자체가 저자의 종교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배금주의(拜金主義)처럼 보인다. (저자는 금을 ‘신의 돈’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냥 ‘금이 신’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엄청난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해 있다.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무엇을 믿어야 하나. 어디서 안전을 구할 것인가. 저자는 자신의 몸을 숨길 피난처를 마련한 것이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피난처. (저자의 방식에 의하면 적어도 돈에 있어서만큼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게 가능해 보인다)
결국 그가 믿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각자가 능력을 키워야 하고, 각자가 ‘진짜 돈’인 금본위제를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닭이 아니라 독수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갖추기 위해 평생에 걸쳐 ‘진짜 선생’을 찾아가 ‘진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과감히 배움을 실천했다. 투자에는 용기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이고, 그래서 그는 교육과 영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못난이처럼 징징거리고 우는소리하는 걸 금지한다.
“나는 그럴 형편이 못 돼요.”
“말도 안 돼.”
“난 돈에 관심이 없어요.”
“난 결코 부자가 되지 못할 거야.”
“난 저런 걸 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 않아.” p. 566
믿을 건 자신밖에 없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그는 자기만의 도를 깨우친 자기만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는 자신이 배우고 깨달은 것을 다시 나눠주는 진짜 선생이 되고자 한다.
그의 이런 의도들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겁이 났다.
그가 예측하는 끔찍한 위기가 실제로 벌어졌을 때, 나와 내 가족이 얼마나 무기력할지를 상상하면 소름이 끼친다. 그런 상황에서도 부자들은 살아남을 것을 생각하면 더 끔찍하다.
세기말도 훌쩍 지난 지금,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종말은 그야말로 ‘도적같이’ 우리 앞에 왔다.
저자는 ‘진짜 선생’이다. 그래서 그가 갖는 조바심과 걱정이 진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이 주는 가장 중요한 점은 그런 경각심이 아닐까 싶다.
진짜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당신은 피할 곳을 마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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