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아찔한 저글링
신의 능력이 인간의 손에 들어왔을 때. 아니, 어쩌면 신이 침범하지 않는 것까지 건드렸을 때(인간의 자유 의지를 ‘치료’할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기어코 실현시키니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모든 걸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인간은 한계를 드러낸다. (그것은 피터 파커 뿐 아니라 닥터 스트레이지도 마찬가지다) ‘큰 힘은 큰 책임을 불러온다’는 말은 ‘큰 힘은 큰 희생을 불러온다’는 말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누군가의 희생 없이 슈퍼히어로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는가)
영웅은 선한 신을, 악당은 악한 신을 꿈꾸고 결국 둘 다 실패한다. 신의 힘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인간에겐 그 힘을 컨트롤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신의 능력이란 그것을 완벽히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때로 신은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느껴진다. 그가 지켜야 할 그만의 규칙이 확고한 탓이다. 그야말로 그것은 ‘초인적’이다. 만약 그럴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신이 완벽한 이유다. 멀티버스를 열어재낀 마블의 창작자들은 그 골치 아픈 저글링을 무자비하게 해낸다. 그들은 신의 영역에 계속해서 도전 중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엔드게임>을 돌아본다. 그것은 시간과 죽음을 되돌리는 신의 영역을 다루는 위험한 게임이었다. 기적적으로 그것은 컨트롤 됐지만, 말 그대로 ‘기적적’으로 이뤄졌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그 기적을 가능하게 한 건 어벤져스가 아니었다. 그들도 그리 될 줄 정확히 몰랐으니까. (닥터 스트레인지마저도) 그렇다면 그 배후에 있던 전능자는 누구인가. 시나리오 작가? 케빈 파이기? 스탠 리? (혹은 마블의 팬들?) 어쨌거나 그들은 신의 영역에 계속해서 도전 중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신의 영역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에도 우리가 그것에 감정이입하면서 볼만한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것인가 하는 문제다. 신이 되고 나면 드라마가 나올 수 없다. 신도 인간을 통해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고로 슈퍼히어로의 능력은 이보전진 일보후퇴의 걸음걸이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신의 영역을 넘나들던 어벤져스의 황태자 피터 파커는 이제 그저 평범한(?) 친절한 이웃으로 돌아온다. 신의 영역을 벗어난 그는 ‘이웃’ 수준의 슈퍼히어로로 회귀한다. 한동안 그 위치에 만족하며 살겠지만 멀티버스가 한번 열린 이상 거기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벤져스는(그리고 그들의 창조주들은) 계속해서 신의 영역에 도전 중이다.
알량한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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