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만큼 사랑했음을 죽음으로 증명하기
남자의 '붕괴'가 비유에 불과했다면, 여자의 붕괴는 말 그대로의 붕괴였다. 남자의 붕괴(내면의 붕괴)는 정말 여자의 목숨과 맞바꿀 정도의 가치가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여자에 대한 (참회를 가장한) 응징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박찬욱의 또다른 복수 이야기인 게 아닐까.
죽음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었던 '죽을만큼 사랑했다'는 마음. 그것은 증명되기 전까지는 진심을 의심받는다. 그리고 증명한 이후에는 소용이 없어진다. 이미 죽어버렸으므로. 사랑을 확신하기까지(=죽을 때까지) 끝까지 의심하는 것. 박찬욱 감독에게 사랑은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사랑은 안개 속처럼 미궁일 뿐이다. '죽을만큼 사랑했다'는 그 말이 비유에 불과하다는 걸 왜 모를까.
복잡미묘한 이야기를 보고 있다보면, 칸 영화제의 화답과 국내 관객의 외면 모두 이해가 된다.
눈 오는 산 속에서 여자의 머리가 오로지 빛으로만 보이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공 들여 만든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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