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다리와 숏다리를 추억하며
'정량적定量的'
명사
1. 양을 헤아려 정하는 것. | 지진의 세기를 정량적으로 예측하는 기술이 소개되었다.
관형사
1. 양을 헤아려 정하는. | 기업 투자에는 정량적 평가도 중요하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한때(1990년대) '롱다리•숏다리'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기준이 형편없이 단순해서 단순히 키가 큰 사람(이휘재)과 작은 사람(이홍렬)으로 구분짓던 시대다. 그때만 해도 '비율'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다. 키가 크다고 모두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키가 작다고 모두 흉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비율이 완벽하다고 반드시 아름다우란 법도 없고 비율이 안 맞는다고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물론 아름다울 가능성은 좀 더 올라갈 수 있지만, 그때의 아름다움이란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는 걸 거다. 그렇다면 전형적인 것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예전에는 그랬을 수 있지만 지금은 반드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도 화장을 하고 여자도 탈코를 경험한 시대다.
플러스사이즈모델들이 활동하고 시니어 모델들이 활동하는 시대기도 하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그 다양성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름다움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건 그만큼 어려워진다. 요즘은 예전만큼 미인 선발 대회가 주목 받지 못한다. 취향이란 얼마나 다양한가. 전형적인 것은 그저 전형적일 뿐이다.
그와 동시에 여자의 가슴 크기를 알파벳으로 나열하여 그 크기를 평가하고, 남자의 키가 180센티미터를 넘는 지에 관심을 둔다.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몇 년 전 CD로 얼굴이 가려지는지, A4 용지로 허리가 가려지는지 인증하는 챌린지가 SNS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정량적인 방법으로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단지 길이와 크기와 무게만으로? 시대는 언제나 미의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은 항상 조금씩 바껴왔다. 그것은 이제 갈수록 정교해지고 다양화(개인화)되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도 굳이 아름다움을 정량화 하려는 시도는, 역설적이게도 그 기준이 점점 모호해지기 때문에 생겨난다. 아름다워지기 위해 특정 숫자를 달성하고 '나는 아름답다'고 안도하려는 불안감이다. 나는 50kg이 넘지 않으니 아름답다. 나는 식스팩을 가졌으니 아름답다. 나는 콧대 각도를 높였으니 아름답다. 나는 깔창을 깔면 180cm가 넘으니 아름답다. 나는 C컵으로 수술했으니 아름답다. 하지만 그 기준을 채웠다고 아름다워질까. 변화하는 기준을 우리는 모두 충족할 수 있을까.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는 인류 역사와 항상 함께 했고, SNS 시대를 맞아 더 증폭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세상이 제시한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일 것이고, 나만이 가진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것을 발견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그것이 나 자신일지라도) 우리는 모두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알량한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