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가능하다. 우정이란 감정은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성립되는 것이니까.
단지 문제는, 그 기간이 아주 짧다는 것이다.
친구 관계라는 것은 당연히도 두 사람이 서로를 친구로 여겨야 성립된다. 동성이나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사이라면 이것은 너무도 쉽다. 하지만 남녀 사이라면 그 균형을 깨뜨리는 쪽이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심지어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남녀 사이도 그럴 수 있다)
절대 그런 마음이 안 생길 거라 보장할 수 있는 남녀 사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잠깐은 가능하다. 또는 한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둘 모두가 계속해서 그럴 수는 없다. (이는 동성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연애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관계라면 무조건 그럴 것이다)
친구인 이성이 가능하다고 믿고, 지금 그런 친구를 둔 사람은 아마도 혼자서만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대의 마음은 진작에 달라졌을 수 있다. 오랜 친구라 주장하는 남녀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균형은 깨져있다. 그것도 이미 여러 번 깨졌다.
이것은 연애 상태와도 비슷하다. 연애 관계라는 것도 두 사람이 서로를 이성으로 사랑해야 성립된다. 동시에 같은 마음이어야 하고, 이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인연은 소중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마음은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이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한 사람 하고 만 애정 관계를 맺는 것은 드문 일일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불륜을 저지른다)
나와 전혀 다른 타인이 나와 생각이 같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것도 동시에 말이다. 하지만 기적처럼 그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기는 훨씬 어렵다. 이성인 친구를 곁에 오래 두려는 것은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지속시키려는 시도다.
왜 그런 짓을 하는가. 그것은 그 아슬아슬함이 주는 짜릿함 때문이다. 당사자인 둘 다 그것을 즐긴다면 그 상태는 좀 더 오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다. 사랑 뒤에 쫓아오는 건, 질투와 상처, 서운함. 혹은 그런 상대의 마음을 이용한 성취감, 그리고 일방적인 착취뿐이다. 균형은 반드시 깨지게 돼 있다.
친구 관계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보통 성취감과 착취를 얻어내는 쪽이다. 혹은 그런 사람에게 속아 친구라는 의미가 왜곡된 사람이거나.
지속되는 사랑은 변하는 마음을 붙들고 한 사람만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계속해서 그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찾고 나만 아는 예쁜 면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책임감이기도 하고 상대의 모든 것을 안고 가려는 결심이기도 하다.
썸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그런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래서 자꾸 친구라는 (상대적으로 더 가벼운) 관계라 애써 우긴다. 그러다가 실수로 친구랑 손도 잡고, 실수로 키스도 하고, 실수로 잠도 잔다.
그래도 여전히 친구라고 우긴다. 거기서 멈춰야만 하는 그 모습이 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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