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날을 위해 준비해야할 것들 A to Z
2020년 12월 3일 오후 5시 40분, 사상 초유의 코로나 수능이 끝났다. 시험이 끝난 시각, 아이를 데리러 온 수많은 학부모들과 그들의 차로 인해 고사장 앞은 아수라장이다. 시험이 끝난 후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순차적으로 한 반씩 아이들을 내보내는 탓에 추위 속에 30분 이상을 기다렸지만 하나도 춥지 않았다.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9시간가량 시험을 보았을 아이의 수고에 비하면 이 정도의 추위와 기다림이 대수일까.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를 기다리며 칼바람 부는 대한민국 교육전쟁 속에서 학생과 학부모로 살아온 지난 12년 동안 시간들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오늘 단 하루를 위해서 이토록 달려온 걸까. 아쉬움과 허탈함도 밀려온다. 핸드폰을 두고 갔기에 어둠 속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아이들 사이에서 딸아이를 찾느라 꽤나 애를 먹었다. 친구들과 함께 해맑게 웃으며 걸어 내려오는 아이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줌인된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멀리서 엄마를 발견한 딸아이가 달려온다. 내가 먼저 아이의 고생과 수고를 다독여줄 틈도 없이 하루종일 마음 졸였을 어리석고 약해빠진 엄마를 딸아이는 말없이 꼭 안아준다
고3이 있는 가정이라면 수능시험 1~2주일 전부터 수능 대비 비상체제가 가동되어야 한다. 아이는 공부를 마무리하고 오답노트, 당일 가져갈 자료들을 정리해야지만 엄마는 시험날 필요한 준비물을 미리미리 차근차근 챙겨놓아야 한다. 이 특별한 시기에 준비하고 실천해야 할 일들은 아래와 같다.
1. 최상의 컨디션 유지하기
수능시험 1~2주일 전부터 수능시간표대로 기상하고 공부하고 식사하고 잠드는 루틴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등교를 해야 하니 억지로라도 일찍 일어나서 학교를 갔지만 현 고3들은 대부분 온라인 수업 중이라 등교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공부하고 일찍 잠드는 루틴을 만드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코로나 시대이니만큼 최상의 컨디션 유지를 위하여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공부를 하도록 하며 외식은 물론 외부음식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과일, 비타민과 영양제를 잘 챙겨 먹고 시험 당일 평상시에 먹어보지 않은 약물, 예를 들어 신경안정제 등은 졸리거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여자 아이의 경우 의사 또는 약사와 상담을 통해 호르몬 약 등으로 생리주기를 미리 조절해두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2. 수능 도시락 준비
누가 뭐래도 수능시험날 가장 신경 쓰이는 준비물은 도시락이다. 요즘 엄마들은 소풍이나 운동회 등 특별한 날 말고는 아이들 도시락 쌀 일이 별로 없기에 신경이 쓰일뿐더러 아이에게 일생일대의 중요한 날이기에 수능 도시락은 다른 도시락보다 특별히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세심함의 포인트는 '최고'가 아닌 '절제'에 있다. 겨울철이기에 무겁고 부피가 크지 않은 보온밥통과 보온병도 준비해야 하고 식사 메뉴도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기름기 많은 육류나 질긴 해산물류(낙지, 어패류 등) 피해야 한다. 뇌에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소화가 잘 되는 탄수화물 위주의 음식이 바람직하고 채소반찬도 섬유질로 인해 장운동을 자극할 수 있기에 적당량만 싸야 한다. 또한, 두뇌활동이 활발한 만큼 중간중간 당과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초콜릿이나 쿠키 등 달달한 간식과 점심식사 후 양치를 할 수 없으므로 껌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원래는 한식을 좋아하는 딸아이를 위해 흰밥에 한두 가지의 채소반찬과 두부 또는 계란말이, 부드러운 고기반찬과 과일 등을 싸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수능을 열흘 정도 앞두고 신규 확진자가 폭증하기 시작하더니 시험에 임박해서는 연일 5~600명을 기록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마스크를 쓰고 무려 9시간 가까이 시험을 봐야 하고 점심시간엔 마스크를 벗고 식사까지 해야 하는데 어느 누가 무증상 감염자 일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라 심각한 걱정에 휩싸였다
수시를 위주로 준비했고 접수한 6개의 원서 중 1개의 전형에만 수능 최저 기준이 있었고 면접이 두 군데나 남은 상태라 감염에 대한 우려 때문에 아예 수능을 보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도 해보았다. 확진자나 자가 격리자는 면접이나 논술 등 대부분의 대학별 고사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차곡차곡 준비해온 시험을 치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도시락은 최대한 미니멀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밥과 여러 가지 반찬을 골고루 먹어야 하는 한식 백반형 도시락은 식사시간이 오래 걸려 마스크를 벗고 있는 시간이 길 것 같았고 김밥이나 주먹밥은 소화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최소의 반찬으로 최대한의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친숙한 메뉴를 선택했다. 각종 채소와 햄을 다져 넣은 볶음밥과 볶은 김치, 참치 샐러드, 과일, 따뜻한 보리차 등으로 단출하게 준비했다. 볶음밥용 밥은 잡곡밥보다는 소화가 잘되고 빠른 시간에 에너지를 공급해줄 수 있는 흰쌀밥이 좋다. 딸아이 말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재료가 거의 다져져 있기에 소화도 잘 되고 반찬도 최소한이라 먹기 편했다며 이 소박한 도시락 메뉴를 엄마의 브런치 구독자분들께 꼭 팁으로 알려드리란다.
3. 건강 및 위생용품
건강 위생용품으로는 여분의 마스크, 손소독제, 소독용 티슈, 일반 티슈, 소화제 등 개인상비약을 챙겼다. 마스크의 경우 본인의 얼굴에 잘 맞고 스트랩이 여유로워서 귀를 아프지 하지 않으며 호흡이 편한 특정상품(유증상자가 아니라면 비말차단마스크를 추천한다)으로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미리 실제 시험을 보는 것처럼 해당 마스크를 끼고 시험시간에 맞춰 문제를 풀어보는 연습을 해보았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4. 보온용품
보온용품으로 무릎담요와 핫팩, 수시로 먹을 수 있게 보온병에 따뜻한 보리차를 쌌고 환기와 예측 불가능한 실내온도를 대비해 얇은 옷을 여러 겹 입고 가는 것이 좋다.
5. 시험 관련 용품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 블루투스 이어폰 등 일체의 전자제품은 소지하면 안되기 때문에 가져가더라도 1교시 이전에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제출해야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딸아이는 아예 스마트폰 등 실격의 소지가 있는 어떤 물품도 가져가지 않았다. 다만, 교실에 시계가 없기 때문에 시침과 분침만 있는 개인용 아날로그시계를 준비해야했다. 부랴부랴 안차던 손목시계의 배터리도 교환해두고 정확한 시각을 맞추어 준비하였다. 필기도구의 경우 수능 샤프와 컴퓨터용 사인펜은 시험 당일 시험본부에서 제공하므로 규격 샤프심과 지우개, 수정테이프 등만 준비하면 된다. (벽시계나 개인 샤프 등이 부정행위에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비치하거나 소지하면 안 된다고 한다.)
대학별 고사가 남아있지만 그래도 수능을 치르고 나니 클라이맥스를 지나 9부 능선을 넘은 느낌이다. 매일 잠들기 전, 지쳐있는 아이에게 '이제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힘내자...' 라며 버릇처럼 씨알도 안먹힐 진부한 응원을 한다. 바위틈에 피어난 꽃처럼 미증유의 역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하나하나를 이루어내고 있는 딸아이가 내게는 영화 속 그 어느 히어로보다도 대단해 보인다.
왜 하필이면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원망과 좌절은 어느새 희망과 결실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코로나 전쟁 속 다치고 쓰러져도 다시 털고 일어나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는 모두 바위틈을 비집고 피어난 한 떨기 꽃처럼 놀라운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