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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um Mar 03. 2022

『드라이브 마이 카』 나의 심연으로 데려다줘

『드라이브 마이 카』 , 2021, 하마구치 류스케

• 본 리뷰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의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관람 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깊고 어둡고 서늘한 심연이다. 살아오면서 여러 번 그 심연 앞에서 주춤거렸다. 심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다."

 나를 혼잣말하는 고독한 사람으로 만드는 게 바로 그 심연이다. 심연에서, 거기서, 건너가지 못한 채, 그럼에도 뭔가 말할 때, 가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심연 저편의 당신의 향해 말을 걸 때, 내 소설이 시작됐다.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작가의 말' 중에서, 김연수


 우리의 삶은 이렇게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향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닌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발버둥 치다 결국은 실패하고 우리의 삶이 끝나버리고 마는 건 아닐까.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애초에 허무맹랑하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러한 노력을 할 때 세상을 조금씩 변해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는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진 삶 속에 길을 잃고 헤매는 주인공 가후쿠를 통해 가련한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인 주인공 가후쿠와 각본가인 오토 부부. 결혼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서로를 애틋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금슬 좋은 부부다. 하지만 그들은 오래전 사랑하는 어린 딸을 잃은 슬픔을 안고 살고 있으며 아내인 오토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과의 잠자리에서 이야기의 영감을 받는 특이한 집필 성향을 갖고 있어 여러 남성들과 외도를 저지른다. 가후쿠는 아내의 외도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도 현실을 부정하며 회피한다. 어느 날, 오토는 가후쿠에게 저녁에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하고 아내가 할 이야기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거리룰 헤매다 밤늦게 귀가한 가후쿠는 뇌출혈로 쓰러져 이미 사망한 아내를 발견한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연극제에 올릴 작품을 연출하기 위해 몇 달간 히로시마에 머무르게 되는데 거기서 자신의 자동차(자신의 분신이자 안식처와 같은 오래된 빨간색 SAAB 자동차)를 운전해줄 기사 미사키를 만나게 된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은 자동차라는 공간 안에서 점점 가까워지며 서로를 거울처럼 바라보게 된다.



 돌이켜보면 필자 또한 가후쿠처럼 깊은 슬픔과 내면에서 울려오는 진실한 목소리를 애써 회피하며 살아왔다. 떨쳐내지 못한 상처와 죄책감, 비겁함을 가슴에 안고 그것들을 똑바로 마주하기가 겁나 내 안의 솔직한 감정과 진심을 인정하기보다 부정하고 도망치고 억누르며 사는 것이 마음 편했다. 컴컴한 영화관에서 조차 편히 울지 못했고 혼자 있을 때도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 마냥 긴장하며 지내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왜…

 사랑하는 사람의 속마음은 늘 궁금해했으면서도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데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내 안의 깊숙한 곳에 숨겨진 진심보다는 사회 속에서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나의 지위, 외양, 체면 등이 늘 나의 주요 고찰 대상이었다.

 가후쿠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가후쿠는 아내를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현재의 평화와 행복이 깨질까 두려워 예상치 못했던 아내의 모습과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어 회피했다. 그러한 자신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아내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상처와 진심을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한 채 텅 빈 영혼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연출하는 작품 속의 배우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느낌을 따라 연기함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고 조화롭게 소통하고 있었지만 같은 언어를 쓰며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가후쿠와 오토는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


 미사키의 아픔이 서린 고향 홋카이도의 눈밭에서 묵은 감정과 상처들을 토해내는 가후쿠와 미사키를 보며 관객들도 나도 그들처럼 오랜 세월 쌓인 체증을 녹여 내린다.


 가후쿠가 연출하는 연극 『바냐 아저씨 』 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냐는 바냐에게 말한다.



바냐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도록 해요.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 세상에 가서 이야기해요.
우린 고통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 『바냐 아저씨 』  중, 안톤 체홉


 소냐는 상처받은 바냐를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삶은 상처받았고 괴로웠다고 담담히 읊조린다. 그 상처를 묻어두거나 피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일하며 살아가자고 말한다.

 나와 타인 사이에 놓인 심연은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타인이나 세상보다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영화는 말해준다. 마음을 다해 내 안의 심연, 그 안의 수많은 상처들의 크기와 깊이를 직시하고, 느껴지는 아픔만큼 소리도 지르고 울기도 하고, 치유해줄 적당한 약을 바르고 최선을 다해 정성껏 보살피라고 말이다. 깊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걸음 한걸음 묵묵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담담히 죽음을 맞이하자고 말한다.


 나와 타인(세상) 사이에는 나의 심연과 너의 심연이 차례로 놓여있다. 나의 심연에 대해 알고 난 후에야 너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순서를 지켜야만 나는 너를 향해 그리고 세상을 향해 가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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