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러브』 , 2011, 루카 구아다니노
본 리뷰는 영화 『 아이 엠 러브 』의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감상 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안토니오의 요리를 맛본 엠마는 무아지경에 빠진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그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춘다. 미각을 비롯한 잃어버렸던 오감을 다시 찾은 듯, 아니면 오르가슴을 느끼듯 그녀는 황홀경을 헤맨다.
고향 러시아를 떠나 이탈리아 재벌기업의 안주인이 되었지만 고급스러운 원피스, 긴 머리에 단정한 헤어밴드, 진주목걸이를 한 그녀의 모습은 어쩐지 자신이 아닌 타인의 뜻과 취향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처럼 보인다.
안토니오의 음식을 맛보고 그와 사랑에 빠진 후 그녀는 잃어버렸던 예전의 자유분방했던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찾아간다. 아들의 친구인 안토니오와의 첫 키스 후 소녀처럼 설레어 어쩔 줄 모르는 중년의 여인. 한 인간의 정체성은 나이 계급, 성별 그 어떤 것과도 상관없고 시간이 흐른다 해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여든이 넘으신 필자의 어머니는 여전히 천진난만하고 세상만사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가끔 소녀처럼 높고 발랄한 목소리를 내며 행동을 하시는 걸 보게 되면 남들 보기에 조금은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음악을 전공하신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예술과 문화를 보고 듣고 싶어 하고 20대처럼 전 세계를 누비며 여행을 하고 싶어 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했을 뿐 노인이 되었다한들 마음마저 늙을 리 없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보다 오히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서슴없이 표현하는 어머니를 보며 늘 타인을 의식하고 체면을 생각하는 나의 가식적인 면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우리가 꿈에 그리던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한들 엠마처럼 지금 누리고 있는 부와 명예, 지위를 모두 버리고 떠날 수 있을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부인 같았던 안나는 흐트러진 짧은 머리에 트레이닝 차림이지만 눈빛과 표정은 생기와 열정,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으로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엠마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 날 딸의 성정체성과 사랑을 향한 딸의 당당함을 바라보며 엠마는 삶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그렇게 엠마는 안토니오가 만든 음식으로 인해 생긴 그에 대한 알 수 없는 끌림을 간과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윤리적 비난이 쏟아질 일탈과 막장 불륜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용기와 해방에 대한 것이다. 안토니오가 쉬는 날이면 농작물을 가꾸기 위해 밀라노 외곽의 산레모로 간다는 것을 기억해두었다가 날짜를 맞춰 그곳으로 향한다. 첩보작전을 하듯 그와 우연히 마주치기 위해 미술서점에서 잠복(?)하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와 마주친다. 안토니오 또한 친구의 엄마인 엠마에게 한 치의 주저함 없이 직진한다. 이렇듯 영화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깨우치고 주저 없이 나아가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은 한 여인의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신은 초콜릿 박스에 있는 초콜릿 중 어떤 초콜릿부터 먹을 것인가.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룰 것인가.
인생은 내일보다 오늘이 중요하다. 행복을 찾아 모든 걸 버리고 용기 있게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해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엠마가 활짝 열어둔 문으로 따뜻한 햇살이 비춘다. 늘 굳게 닫혀있던 재벌가의 현관문을 거칠게 열어둔 채로 엠마는 훨훨 비상한다.
누구나 이런 해방을 꿈 꾸지만 우리는 늘 현실의 벽 앞에 주저앉고 만다. 어쩔 수 없이 밥벌이를 해야 하고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힘겨운 인생을 우리는 하루하루 이어가야 하지만 진정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보고 질문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가슴 속 엔진이 계속 돌아갈 수 있도록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여행을 하고 다양한 세상과 만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I am OOOO
우리도 엠마처럼 빈칸 채우기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