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꾸는 책 읽기』,, 정혜윤
요근래 '책 읽기', '글쓰기'가 새삼스러운 화두가 되어버렸다. 하도 여기저기서 외쳐대는 바람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독서는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찜찜함과 피로함으로 다가온다. 새해가 되면 야심차게 독서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늦은 밤 피곤함을 무릎 쓰고 책을 펼친다. 하지만 눈꺼풀은 내려오고 눈동자만 텍스트를 쫓아갈 뿐 내용은 도무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많은 이들의 삶을 바꾼 '책'이 현대인들에게 지루함, 찜찜함, 어려움 등의 부정적 이미지로 새겨지고 있다. 책에게 다가가기가 이렇게나 어렵고 지루한데 어떻게 하면 책을 잘 읽을 수 있을까? 책은 정말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수년전의 필자처럼 책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해 힘겨워하는 이들의 질문에 작가는 방대한 책들과 우리 이웃들의 목소리를 빌려 대답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어느 해고노동자는 작가에게 책 읽기 강의를 부탁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 우리는 해고당했지만 복직하고 싶죠. 일을 하고 싶죠. 꿈이에요. 그런데 꿈이 이뤄져서 복직된다고 해도 야, 이제 복직되었으니 다 되었다, 하고 살고 싶지가 않아요. 다시 월급을 받게 되었으니 만사해결이다 ,하고 그전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이번에 고통을 겪으면서 예전에 뭘 잘못했는지 알게 되었어요. '남의 일이잖아요.' 이 생각 말입니다. 이게 무서워요. 우리는 이제 남들이 우리 일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처지에 몰렸어요. 공장에 돌아간다해도 예전과 다른 인간이 되어서 돌아가고 싶어요. 다른 인간이 되어서 살아보고 싶어요. 나 먹고사는 것만 신경 쓰고 살면 안돼요. 우린 그렇게 살면 안돼요.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요.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책 좀 읽으면서 세상을 배우고 싶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책을 펼쳤던가. 나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고 남들에게 얄팍한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책을 들지는 않았던가. 나는 과연 이 해고노동자처럼 절실함과 진실함으로 책을 들었었던 적이 있었던가. 내가 아닌 타인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그들에게 도움이되고자 책을 읽었던 , 아니 삶을 살았던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벌건 낯빛을 한 채 책을 내려놓고 한동안 멍하개 허공을 바라보았다.
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깝게 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멈추면서 자꾸자꾸 덧붙이면서 우리의 최선의 생각을 하고 책을 읽는 최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것이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나 모두 당장 나와 아무 상관없는 것에 마음을 열어 보다가 자기를 만나는 경험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통성의 경험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달라 보여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굴욕이나 억압을 당할 때 자신 또한 같은 일을 당할 것을 알게 되기에 타인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책은 우리를 능력자로 만들어줍니다. 책은 모든 것을 새롭게 볼 능력을 줍니다. 자기 곁에 있는 세상 만물을 생생하게 받아들이게 해줍니다. 책은 내용은 진부할지라도 그것들을 새로운 디테일과 새로운 태도로 보여주니까요. 또, 자신이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 보는 경험(그것이 한 권의 책 읽기에 불과할지라도) 무능력한 사람에서 능력이 있는 사람쪽으로 우릴 옮겨 놓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고 분리된 것들을 연결시키고 이를 통해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된다면 우린 심지어 다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선 자신이 사는 세상과 이웃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지혜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으로 세상을 새롭게 볼 때만 인간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책은 죽지 않는 능력을 주진 못하지만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능력을 줍니다.
책은 해고노동자가 그토록 되고 싶어하는 좀 더 나은 인간, ‘세상을 새롭게 볼 줄 알고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자’ 로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이렇게 정혜윤 작가가 책으로 인한 인간의 재탄생을 이야기했다면 보르헤스는 인간으로 인한 책의 재탄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르헤스는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즉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무한하다고 했습니다. 책의 운명은 쓰인 시간, 혹은 작가가 출판한 연도, 독자가 책을 구입한 시기에 결판나지 않고, 어떤 사람이 책을 읽는 그 순간에 결정이 난다고 했습니다.
결국 책은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하고 사람은 책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 인류가 생존하는 한, 책의 운명과 사람의 운명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이어지며 서로에게 작용할 것이고 그 연결선에는 죽음은 없고 아름다운 탄생만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읽기만하면 저절로 삶이 바뀔까? 삶이 바뀌기 위해서 우리는 꼭 해야할 일이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어느 이동도서관 운전기사는 책을 빌리러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책을 읽다보니 어느 새 독서고수가 되었다. 어느 날 한번에 너무 많은 책을 빌려가는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책을 좀 천천히 읽으세요, 제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인간은 마음이 굳센 존재가 아니에요. 아는 대로 사는 것도, 배운 대로 사는 것도, 룸살롱에서 여자 만지지 않기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아마 더 어려울 겁니다. 몰라서 잘못을 저지르는 게 아니에요. 인간사 어렵다지만 제일 어려운 것은 배운대로 살기입니다. 알게 된 걸 지키며 사는 겁니다. 당신은 책을 읽고 무엇을 하십니까? 저는 책을 읽고 알게 된 대로 살고 싶습니다. 당신이 책을 읽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 주십시오. 그럼 다시 책을 권해 드리지요. 책을 다 읽고 다음번에 빌리러 올 때까지 잘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책을 읽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정혜윤 작가는 조르바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조르바가 자신이 먹은 걸로 무슨 일을 하는지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말하준다고 했듯, 이동도서관 운전기사는 사람이 책을 읽고 무엇을 하는지가 독서의 참된 효용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책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그로 인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깨달아야만 또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불안과 혼돈의 삶 속에서 지혜와 위로를 얻고자 독서를 하려고 하지만 정작 책을 읽게 되면 책의 겉면에 붙어 있는 내용과 지식을 머리에 넣는 일이나 독서량 등에만 집착한다. 책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되짚어 보는 사색과 깨달음의 시간을 쏙 빼놓은 채...
나 또한 수년동안 헛독서를 했다는 깨닫고 그 뼈져린 실수를 복기했다. 마음을 다 잡고 한 권의 책을 읽는 틈틈이, 그리고 다 읽고 나서 마음을 다잡고 사색의 시간을 갖기 시작하자 가슴과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떤 한 권의 책은 내 안에 아주 작은 불씨 하나를 놓아 주었다. 그 불씨가 조금씩 옆으로 옮겨 붙으며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활활 타오르게 해주었다. 책과 사색은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고 그때부터 삶은 거짓말처럼 확 달라졌다. 책의 내용만을 기억하기에도 급급했던 예전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삶이란 뭘까요? 아주 간단히 말하면, 내가 이 세상에서 겪는 일이겠죠. 그러니 세상을 잘 알수록 좋겠죠. 그러나 세상을 알고 싶다고 해도 혼자서는 제대로 탐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대화상대가 필요합니다. 책은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대화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책을 자꾸 일어나라고 합니다. 깨어나라고 합니다. 그만 자라고 합니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생각 못 한 게 있다고 알려 줍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아주 작다고 말합니다.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혹은 어째서 헤쳐 나가지 못하는지 보여 줍니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자꾸만 자꾸만 엉망이 되어버리고 잠들어버리는 우주와 인간을 책은 지치지도 않고 깨워주고 바로 잡아준다. 이만하면 책은 정말 삶을 바꿀 수 있을 뿐 아니라 우주의 질서도 바꿀 힘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