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진짜일까

『기사단장 죽이기』, 무라카미 하루키

by Minimum


어렸을 때부터 잠이 너무 많아서 부모님은 늘 나에게 잠자기 대회가 있으면 무조건 1등은 따놓은 당상이라 하셨다. 많이도 자고 깊게도 자고... 부끄러운 자랑거리다. 깊게 잘 자다 보니 꿈을 많이 꾸지도 않을뿐더러 나쁜 꿈도 좀처럼 잘 꾸지 않는다. 그런데 며칠 전 기이한 꿈을 꾸었다. 땅바닥에는 여기저기 뱀들이 우글거리고 생전 처음 보는 어딘가 많이 아프고 불편해 보이는 아기가 내 아이라 하는 황당무계한 설정과 전개... 꿈속의 슬픔과 놀람, 두려움이 너무도 생생해서 깨어난 후에도 하루 종일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기사단장 죽이기』, 이 책은 며칠 전 꾼 꿈처럼 기괴하면서도 신비롭다. 완독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동굴, 파도 파도 물이 샘솟지 않는 우물처럼 작품의 핵에 닿는 길이 무척이나 지난했다.

이 소설에는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초상화 화가인 주인공 ‘나’. ‘나’는 아내와 이혼 후 낡은 차를 몰고 여기저기를 방황한다. 그러던 중 친구의 아버지(유명한 일본화 화가)가 살고 있었던 산속의 집에 기거하게 되면서 그 집에 숨겨져 있던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하게 되고 주변의 이웃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림 속 이데아들을 현실에서 만나게 되고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넘나들며 거짓말 같은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는 아내 유즈와 이혼하였고 아내는 새로운 남자를 만났고 임신을 하였다. 이혼 후 여기저기를 떠돌던 주인공은 어느 날,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생생한 아내와의 잠자리를 경험하게 된다. ‘나’는 이혼한 아내 유즈와 새 남자가 당연히 결혼하여 함께 아이를 키울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새 남자와 헤어졌고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울 것이라는 소식을 친구를 통해 전해 듣게 된다. 산속의 집에서의 기묘한 경험을 통해 그는 어떤 믿음을 얻게 된다. 아내의 뱃속의 아이는 새 남자의 아이가 아닌,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그때의 생생한 잠자리로 인해 수태된 자신의 아이라고 그는 굳게 믿는다. (아내인 유즈 또한 출산예정일로 미루어 짐작해볼 수태 시기에는 그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아내 유즈 또한 그가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그렇게 그들은 재결합을 하고 사랑스러운 딸을 함께 키운다. 주인공은 말한다.


이 세계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지도 몰라.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믿을 수는 있어.


아내인 유즈는 주인공과 재결합에 동의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물론 내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은 나와 상관없는 데서 멋대로 결정되고 진행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싶어. 다시 말해 나는 언뜻 자유의지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정말로 중요한 일은 무엇 하나 직접 선택하지 못하는지도 몰라.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은 산속의 집 이웃이며 하얗고 멋진 저택에 살고 있는 꽃중년 멘시키. 그는 말끔한 용모와 상당한 재력, 품위와 교양을 두루 갖추고 있기에 어느 하나 모자랄 것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기와 달리 평생 옛사랑의 그림자를 등에 지고 살아가는 순애보다. 사랑했던 여인이 쓰던 모든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보물처럼 간직하며 살아간다. 또한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는 여자아이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보기 위해 그 아이가 사는 집이 잘 보이는 산속의 저택으로 이사 와서 살며 몰래 그 아이를 관찰하고 주변을 맴돈다. 그는 주인공 ‘나’와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진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인생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는 말이죠. 그 경계선은 꼭 쉬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멋대로 이동하는 국경선처럼요. 그 움직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 수 없어지니까요.


현실은 무엇이고 비현실은 무엇일까. 그 둘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다고 소설은 이야기한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말에 나는 왠지 많은 위안을 받았다. 살다 보면 이 상황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꿈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도 많고 너무도 기쁘고 행복해서 이 꿈이 깨지 않았으면 싶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인생을 살며 맞닥뜨리는 어떤 상황 또는 사실에 대해 누군가는 믿으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믿지 못하면서 살아간다. 주인공은 확고히 믿고 멘시키는 믿지 못한다. 주인공은 믿음에 따라 행동하고 멘시키는 믿음이 견고하지 않기에 믿음이 따라 행동하고 실천하지 못한다. 책에서는 믿음의 대상이 친자 여부로 그려지지만 그 대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진실인지 진실이 아닌지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라는 것이 무섭고 불편한 진실이다. 그 선택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릴지도 모를 테니까...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일단 믿고 난 뒤에는, 즉 어떤 믿음을 선택한 뒤에는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는 용기와 무모함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 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치에 맞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하루하루 목적도 생각도 없이 달려가다 보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곳에 닿아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어느 날 눈 떠 보니 낯선 무인도에 표류해있는 것 같은 황당한 기분.


‘내가 어쩌다 이 일을 하고 있지?’


‘내 옆에 왜 이 사람이 있는 거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현실이 이치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 우리는 지금 알 수가 없다. 시간만이 그 정답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정답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것이 ‘믿음’이라고 하루키는 이야기하는 듯하다.



삶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말고 내가 사랑하는 것, 내가 추구하는 것을 굳게 믿으라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것처럼 우리의 삶도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단언할 수 없다. 삶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다. 불확실하다는 것만이 변하지 않는 진실이기에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선택이고 믿음이고 용기를 내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주인공인 나는 (친자인지 아닐지 모르는) 잠든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기사단장은 정말로 있었어.
너는 그걸 믿는 게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