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으로 산다는 것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 박완서

by Minimum

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여행을 오게 되었을 때 만나게 되는 신기한 광경들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찜질방, PC방, 삼겹살, ,매운 음식, 산 낙지 등 다분히 한국적인 것들을 직접 경험하며 당황하고 놀라는 외국 관광객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꽤 높은 걸 보면 이방인의 눈을 통해 보는 우리의 모습과 그들의 반응이 꽤나 흥미로운 모양이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또 다른 신기한 광경 중 하나는 바로, 샤*, 루이*통 등의 명품가방을 들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진품이라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저렇게 비싼 가방을 들고 다니는 부자가 어떻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냐고 너무도 소탈하고 검소한 부자라며 혀를 내두른다. 독일의 경우, 같은 명품 브랜드 제품이라도 주변의 다른 나라보다 유독 판매 가격이 낮게 책정되어 있다. 그만큼 사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서양 사람들의 개인주의와 실용주의적 가치관에 기인한 현상일 것이다. 값 비싼 명품을 구매하고도 한 달을 생활하기에 전혀 지장이 없는 부자들이 아니고서는 명품에 대해 관심도 갈망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처럼 본인의 재정상태와 상관없이 누구나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 결제를 해가며 명품을 사서 소유하고 과시하고자 하는 트렌드를 그들은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그렇다면 과연 부유층, 중산층, 빈곤층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저명한 교육학자인 루비 페인의 『계층이동의 사다리』에는 흥미로운 계층의 불문율이 실려있다.


음식을 대할 때, 빈곤층은 '양'을 중산층은 '맛'을 부유층은 '모양새'를 중요시하고, 옷을 선택할 때에는 빈곤층은 '개성의 표현,' 중산층은 '품질과 디자인', 부유층은 '디자이너와 예술성'을 주로 보고 택하며, 시간에 있어서는 빈곤층은 '현재', 중산층은 '미래', 부유층은 '전통과 역사'를 중요시 한다. 요즈음 유행하는 금수저 흙수저론, 재미로 보는 수저 테스트 등과 일맥상통하는 흥미로운 자료다. 박완서 선생은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중 '보통으로 살자'에서 세 가지 계층을 이렇게 비유하셨다.

기계가 부드럽게 돌기 위해서는 알맞은 양의 기름을 쳐야 하는 것처럼 한 가정이 가족끼리의 친애감을 유지하면서, 제각기의 삶도 즐겁게 영위하기에 알맞은 만큼만 돈이 있는 집을 보통 사는 집으로 치면, 기름이 너무 없어 부속품끼리 쇳가루를 떨구며 마멸해 가는 상태는 가난이겠고, 기름이 너무 많아 기계를 조이고 있던 나사까지 몽땅 물러나 기계의 부분품들이 따로따로 기름 속을 제멋대로 유영하는 상태가 아마 부자이겠다.


기도를 할 때마다 화목하고 건강한 가정과 안락한 집과 꼭 필요한 만큼의 물질이 있음에 늘 감사드린다. 하지만 기도가 끝나고 몸을 돌려 영혼이 속세로 돌아오면 재력에 버거운 명품가방을 흘깃 대고 새로 나온 외제차에 눈길을 주고 부촌의 아파트 시세를 찾아보기도 하는 찌질한 보통 여자의 모습일 뿐이다. ‘보통’이란 소중한 단어를 나 같은 속물에게 함부로 붙이지 말라고 박완서 선생은 아래와 같이 꾸짖으신다.


보통으로 산다는 것을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시시하게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보통으로 살아본 사람이면 다 알 수 있는 게 이 보통으로 산다는 게 여간만 어려운 게 아니다, 어려워서 그런지 보통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주 부자나 아주 가난한 사람보다 수적으로 많아야 할 텐데 그렇지를 못하다.
또 외형적으로 보통으로 사는 것으로 보이되 의식은 부자 지향적인 수가 많다. 그래서 뱁새가 황새 좇는 식으로 끊임없이 부자의 상태를 흉내냄으로써 자기 생활을 파탄과 불안으로 몰고 간다. 속으론 혹시 가난해지면 어쩌나 불안한 채 겉으로 호기 있게 부자 흉내를 내면서 산다. 일종의 분열 상태다. 보통 살면서도 보통 사는 데 대한 긍지나 줏대가 없다. 이건 진정한 의미로 보통 사는 게 아니다. 정말로 떳떳하게 보통 사는 사람은 드물고, 따라서 보통 살기가 외롭다. 정말로 떳떳하게 보통 사는 사람이 많아야 의사소통이 잘 되는 건강한 사횔 텐데 말이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특별한 사람 아니면 대개 자기가 사는 위치에서 가까운 범위밖에 보지 못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범위 역시 그렇다. 그러니까 부자는 자기네 부자 사회와 보통 사는 사회까지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가난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극빈자 역시 자기네의 가난과 더불어 보통 사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재벌의 생활에 대해선 이질감 내지는 복수심밖에 동하는 게 없다.
결국 아래위를 함께 이해할 수 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가장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층이 바로 이 보통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보통으로 사는 것'은 우리들의 생각처럼 모양새 빠지는 삶이 아니다. 선생의 말씀처럼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 못해 고귀한 삶이다. 떳떳하게 보통의 삶에 대해 줏대와 긍지를 가진 사람이 진정 보통으로 사는 사람이다. 재산이 보통인 사람은 많지만 정신이 보통인 사람은 별로 없다. 정신이 보통이란 의미는 아래와 같다.


돈이 귀하다는 것도 알만큼 알지만 세상에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믿음과는 바꿀 수 없고, 돈을 자기를 위해서는 아낄 줄도, 남을 위해서는 쓸 줄도 알고, 자기 일, 자기 집안 일과는 직접적으로 관계는 없더라도 크게는 관계되는 사람들과 사람들과의 관계, 세상 돌아가는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의 그른 일, 꼬인 일, 돼먹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마음이 편할 수 없어, 그런 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가져야 하는 양식의 소유자도 바로 이 보통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인생을 살며 화려한 경력이나 업적을 남기는 데 있어서는 능력도 관심도 없지만 선생이 말씀하신 보통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람 귀한 줄 알고, 남을 위해 베풀고 헌신할 줄 알며, 세상과 사람사이에서 벌어지는 그른 일, 꼬인 일, 돼먹지 않은 일에 대해 고민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양식의 소유자


그런 영혼과 가슴을 가진 사람이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인데 그 뜻도 모른 채 모든 것이 딱 보통인 나의 삶은 제쳐두고 남의 삶을 흘깃거렸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갖고 있는 재물만 그저 보통의 양일뿐 진정 '보통으로 살기'란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다. 이기심, 허영심, 무관심이란 멍에를 다 벗어버리기에는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하지만 이 뼈저린 각성과 후회가 나에게 주어진 모든 조건과 환경을 사랑하고 감사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극빈자도 재벌도 아닌 그저 먹고는 살만한 보통인 나의 삶을 말이다.


그런 의미로도 보통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부자와 가난뱅이가 극소수여야겠고, 보통 사는 게 떳떳이 사는 거라는 줏대와 오기가 있어야겠는데 그렇지가 못하니 안타깝다.
요새처럼 보통 사는 걸 안 알아주고 보통 사는 게 외로운 시기도 없었던 것 같다. 붕 떠서라도 누구나 보통 이상으로 향상들을 해 간다. 그래서 보통 사는 지대는 적막한 무인 지경이 돼 가는 느낌이다.
오기로라도 끝내 보통으로 살면서 며느리도 사위도 보통으로 사는 집에서 맞아들이고 싶은데, 글쎄 그때까지 보통으로 사는 지대의 주민들이 얼마나 남아 있게 되려는지 두고 봐야 알겠다.


보통 사는 게 떳떳이 사는 거라는 줏대와 오기! 선생의 바람처럼 당당하게 보통으로 살아가는 보통지대의 주민들이 넘쳐날 그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