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by Minimum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아침마다 우리는 허리에 핸드폰을 차고 밥을 벌기 위해 거리로 나간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먹어야 할 밥, 우리는 그것을 벌기 위해 땀과 눈물을 삼키며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가고 있다. 매일 밥을 먹어야 하기에 매일 밥을 벌어야 할진대 그것을 버는 과정이 기쁨과 보람, 성취감을 안겨 준다면 좋으련만, 대개는 자신을 잃어버린 채 짓이겨진 상처를 어루만져가며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기에 밥벌이는... 지겹다. 밥벌이에 짓눌려 살아왔고 살고 있고 또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고통과 한을 김훈 선생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대신 울어주었다. 밥벌이엔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 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을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을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책이 절판되어버려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겨우 도서관에서 대출을 했다. 밥벌이에 닳고 닳아버려 영혼이 바닥난 절박한 이들의 손 때가 잔뜩 묻어 너덜너덜해진 이 책을 끌어안고 나 또한 울고 싶었다. 밥벌이를 잘 하고 있는 이도 밥벌이를 못하고 있는 이도 늘 머릿 속은 복잡하고 마음은 불안하며 몸은 피곤하고 미래는 암담하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봄에, 새잎 돋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늘 마음이 아팠다. 나무들은 이파리에 엽록소가 박혀 있어서 씨 뿌리지 않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햇빛과 물을 합쳐서 밥을 빚어낸다. 자신의 생명 속에서 스스로 밥을 빚어내는 나무는 얼마나 복 받은 존재인가. 사람들의 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굴러다닌다. 그래서 내 밥과 너의 밥이 뒤엉켜 있다. 핸드폰이 필요한 것이다. 엽록소가 없기 때문에 핸드폰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다들 핸드폰을 한 개씩 차고 거리로 나아간다.


엽록소를 가지지 못한 인간은 스스로 영양분을 생산하지 못하기에 밥을 벌기 위해 핸드폰을 차고 거리에 나간다. 만약 우리도 식물처럼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 수 있게 돼서 더 이상 밥을 먹을 필요가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우리 모두에게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살고 심지어 즐길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누군가 매달 준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갈까. 삶이 더 이상 고단하지 않을까? 편안하고 행복하기만 할까?

밥벌이는 고되고 지겹지만 이렇게 저렇게 머리 굴려가며 생각해보고 이 쪽 저 쪽으로 눈을 돌려가며 주위를 돌아보면 돈이 많건 적건 잘생겼건 아니건 지위가 높건 낮건 누구나의 삶이란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도 늘 고되고 지겹고 대책이 없기란 마찬가지다. 그것을 깨닫게 되면 새삼 마음이 편해진다. 더욱 다행인 것은 누군가는 반복되는 고된 일상 속에서 우연히 진정한 꿈을 찾는 행운을 만나기도 하고 삶의 희망을 보기도 한다. 이 세상에는 배가 든든해지고 시장기는 가셔야 느끼고 볼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에 우리는 먼저 하루하루 성실하게 밥을 벌고, 그러고 나서 가만히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일상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진 채 성실하게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만이 꿈을 꿀 자격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쓰고 가게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린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먹고살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대책 없는 밥벌이가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밥벌이에 매몰되지 말자고, 아무 도리가 없고 아무 대책이 없는 밥벌이지만 그 너머의 삶의 의미를 찾는 일, 그것을 늘 잊지 말자고 이 아름다운 문장들은 우리를 위로한다.

이전 10화일상의 힘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