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힘을 믿으며

『몰입의 즐거움』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by Minimum


혈기왕성하고 의욕 충만한 20~30대에는 누구나 한 번쯤 자기계발서를 성경처럼 읽고 받들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메모해가며 시키는 대로 계획하고 실천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와 희망이 샘솟는다. 이렇게 자기계발서는 어둠 속을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을 안내해줄 한 줄기 빛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면서 비슷비슷한 자기계발서들을 마치 행운의 부적처럼 여러 권 사서 쌓아두기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주인공이며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일은 바람직하기에 게으르거나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 청춘들에게 자기계발서가 큰 공헌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내용과 상업적 목적이 결합한 책들이 조회수를 늘려야만 하는 포털사이트의 기사처럼 자극적인 제목을 단 채 우후죽순으로 서점에 넘쳐나자 어느새 자기계발서는 본연의 순기능보다는 큰 피로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기계발서라기 보다는 주술서(?)에 가까운 『시크릿』 의 경우, 주술서 답게 사람들에게 마법의 주문이라도 걸었던 모양인지 사람들은 너도 나도 책을 사서 읽었고 맥락 없는 황당한 책의 내용 또한 그 당시에는 제법 그럴싸해 보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사기꾼의 말이나 보이스피싱에 왜 그렇게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는지 수긍이 갔다. 급기야 어떤 학자는 국가나 기업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범람하도록 조장하고 있다는 음모이론까지 펼친다.

필자의 경우 이제는 대형서점에 가도 자기계발서 구역은 패스해버리니 다른 분야의 책들을 더 볼 시간이 생겨 훨씬 편하고 여유롭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마음의 필터가 촘촘해지는 것이다. 정말로 내 삶에 있어서 필요하고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세월 따라 빡빡해진 필터를 통과시켜 걸러내는 재주가 늘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 은 자기계발서의 겉옷을 입은 학술서이자 철학서로 오랜 연구와 조사에 기반하여 기존의 자기계발서와는 확연히 다른 결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몰입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하는 일에 완전히 빨려 들어가서 그것을 즐기는 동안은 다른 걸 하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다. 그 순간이 너무 완벽하여 우리는 그것이 한없이 계속되기를 바라고 순간의 경험에 완전히 몰입한다.


몰입(Flow)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것은 운동선수가 말하는 '물아일체의 상태', 신비주의자가 말하는 '무아지경', 화가와 음악가가 말하는 '미적 황홀경'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일련의 명확한 목표가 앞에 있을 때 몰입할 가능성이 높다. 몰입 활동은 명확하고 모순되지 않은 목표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해 준다. 몰입은, 쉽지도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데 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람은 몰입을 낳기에 좋은 활동, 곧 정신노동이나 능동적 여가활동을 할 때 비로소 몰입을 경험한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십수 년 전, 나와는 상관없는 딴 세상의 이야기인 것만 같아서 좌절했던 기억이 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에 따르면 우리의 일상은 생산활동(학업, 직업 상의 일 등), 유지 활동(가사, 식사, 몸단장 등), 여가활동(취미, 교제, 휴식 등) 이렇게 세 가지 활동으로 이루어지는데, 나의 경우 삶의 어떤 부분에서도 몰입을 경험해보지 못했었고 재능이라고는 없으며 인생을 헛살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늘 성실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살아가야 하며 자신이 흠뻑 빠져서 즐길 수 있는, 즉 몰입을 느낄 수 있는 일을 늘려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불편하고 싫었다. 결국 그때의 나는 독서라는 것을 할 태도와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인간이었다. 사르트르가 말한 '고매성의 협약'에 따르면, 그 협약이란 상대방에게 최고의 신뢰를 보내고 최고의 기대를 하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작가는 독자에게 최고로 잘 읽을 것을 기대하고 독자는 작품 속에서 최고의 어떤 것을 찾아내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도 창조자인 작가만큼 최선을 다해서 책의 내용을 자기만의 것으로 창조하고 받아들여야 올바른 독서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과거의 나의 독서는 빵점이었다. 책에는 나와는 다른 이야기,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들뿐인데 책을 덮을 때 내 마음의 문도 닫아버리는 독서를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십수 년 뒤 다시 읽은 이 책은 내가 그동안 조금은 성장하였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삶의 구석구석에서 이미 살아 숨 쉬고 있던 몰입 경험을 치기 어리고 미숙하고 둔했던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것 또한 일깨워주었다.


현실 어디에 눈을 주더라도 우리의 육체적 정신 적 정서적 행위를 촉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대상은 얼마든지 널려있다. 지루하다는 넋두리는 절대로 먹혀들지 않는다. 관심을 다스릴 줄 안다는 것은 경험을 다스릴 줄 안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삶의 질로 직결된다. 즐거움을 주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실력이 쌓이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관계없다. 활동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결과는 대수롭지 않으며 나의 관심을 다스리는 데서 희열을 맛보면 그만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어릴 적 스케이트를 배울 때 천신만고 끝에 새로운 동작을 해냈을 때, 오랜 시간 동안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붙잡고 끙끙대다가 결국에는 풀어냈을 때, 밤새워 보고서를 완성했을 때, 열심히 준비한 수업이나 발표를 만족스럽게 해냈을 때, 딸아이와 함께 고난도의 레고 ‘공주의 성’ 조립을 완성했을 때, 어려워서 좀처럼 가닥이 잡히지 않는 책을 붙잡고 이해해보려고 씨름할 때, 써지지 않는 글을 붙잡고 쓰고 고치는 걸 반복하다 제법 마음에 드는 글을 한 편 썼을 때... 나는 분명 몰입을 경험했었다.



우리의 바람과 상관없이 삶은 우주에 흔적을 남긴다. 한 사람의 탄생은 사회라는 공간 속으로 물결을 일으킨다. 그 탄생은 부모, 짝, 친척, 친구에게 영향을 미친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세한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남들에게 적극적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우리가 속한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 자세는 바람직한 삶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우주의 미래가 내 한 손에 달려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접지 말되,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걸 비웃어라.” 이처럼 진지한 유희의 정신이 살아 있고 근심과 겸손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사람은 어딘가에 전념하면서도 무심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지혜를 익힌 사람은 이기지 않아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성패와는 무관하게 우주의 질서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시도 자체가 그에게는 보상으로 다가온다. 그런 사람만이 뻔히 질 줄 알면서도 신의를 위한 싸움에서 희열을 맛보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많은 작가들과 스승들은 모두 한 사람이 되어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이기지 못하고 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신의를 지키기 위한 과정이 중요하며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희열이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고... 우리는 결국 성공하지도 게임에서 승리하지도 못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하루하루, 일상의 힘을 믿으며 하루하루를 가장 나답게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우리 자신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기쁨과 충만함 가득한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를 논의하는 대목에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운명애는 살아갈 날에서도, 살아온 날에서도, 달라지지 않기를, 아니, 영원히 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자세다. 불가피한 것을 견디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사랑할 줄 아는 태도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 “나는 피치 못할 일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법을 자꾸자꾸 배우고 싶다. 그럼 나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불가피한 것을 견디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사랑할 줄 아는 태도, 피치 못할 일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평생 고통받을 것이다. 세상은 험하고, 해야만 하고 피할 수 없는 일들은 고통스럽거나 지루하고, 우리는 한 없이 나약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한 가지가 바로 일상 속의 성실함과 몰입 경험이라고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말한다.

’ 몰입’은 누군가에게는 삶에서 아직 체험한 적 없는 낯선 경험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수시로 경험하는 익숙한 경험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더 바랄 것 없는 충만한 삶이겠지만 전자의 경우라면 불평과 신세한탄은 접어두고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몰입’, 그 신비하고 황홀한 경험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말고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둔 채 지금보다 조금 더 부지런해지기


이 밝고 사랑스러운 태도 하나면 삶을 더욱 빛내줄 몰입이란 황홀한 경험을 즐길 준비는 이미 완료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