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너 남들 얼굴에 급 매기냐?
얼굴이 아니라 그 질 떨어지는 마인드를 수술하지 그랬냐?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이하 ‘강남미인’)의 남자주인공 경석은 외모컴플렉스로 인해 성형수술은 감행하여 예뻐진 여자주인공 미래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제 고작 스무 살 밖에 안된 미래에게 그동안 세상이 던져준 수많은 상처들과 예뻐지고 난 후에도 없어지지 않는 그녀의 열등감이 안쓰러워 향기로운 차 한잔을 앞에 두고그녀 옆에 가만히 앉아 손이라도 꼭 잡아주고만 싶었다. 경석도 그런 안타까움에 독설을 내뱉었겠지.
어느 날부터인가 나 또한 미래의 대학 친구들처럼 우리나라의 외모 특히 얼굴에 대한 미의 기준이 왜 하나의 틀로 판에 박혀버렸는지 궁금해졌다. 특히나 의느님의 손길을 거치는 경우 각자의 개성은 사라지고 서로 비슷비슷해 보여서 수많은 성형외과 광고의 after 모델들이 한 명의 동일인처럼 똑같아 보이는 것은 나의 둔한 안목 때문일까? 강남의 수많은 성형외과들은 그들 사이에 꼭 지키기로 약속한 공식이나 규칙 같은 것이라도 있는 것일까? 오랜만에 들른 강남의 한 백화점 안 수많은 미인, 미남들 한가운데에서 나는 마치 길을 잃은 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인형처럼 작은 얼굴과 날렵한 턱선, 올록볼록 볼륨감 있는 이마와 볼, 그 작은 얼굴에 다 들어갈 것 같지 않은 크고 또렷한 이목구비. 3D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들처럼 절대비율을 갖춘 미인, 미남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얼굴을 만날 때면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그 사람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사라진 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듯한 허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단 외모뿐만 아니라 직업, 지위, 집안, 주거지 등등 우리를 둘러싼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에 대해 남들과 비교하며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일정한 기준을 들이대며 그 기준에 닿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괴롭히며 불행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예컨대 엘리트 중산층이라 하면 사립초-특목고-SKY-대기업 취업 또는 전문직의 코스를 거쳐야 하고, 연봉은 얼마 이상, 주거지는 서울의 특정 5개 구의 30평대 이상 아파트... 암묵적으로 합의된 이런 기준들은 도대체 누가 다 만들어 놓은 것일까?
요즘 가장 핫한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뒤늦게 구매했다. 현직 판사로서는 쉽지 않았을 개인주의자 커밍아웃이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는지 궁금해서였다. 역시 독자는 나의 고통을 알아봐주고 간지러움을 긁어 주는 작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모두들 대놓고 개인주의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업무능력보다는 상사의 비위를 잘 헤어리는 센스가 더 중요하고, TPO에 따라 나를 포장해야 할 줄 알아야 하고, 포커페이스에 능해야 하며 특히 집단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아야 성공한다는 그 시류에서 모두 탈출하고 싶던 참에 고매하고 근엄하실 것만 같은 판사님께서 먼저 집단의 안위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자며 개인주의자 선언을 해주시니 속이 후련할 수밖에...
<강남미인>의 미래의 경우 외모에 대한 세상의 기준 때문에 고통받았다면 나의 경우 커리어(일)에 대한 세상의 기준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높은 연봉을 자랑하는 금융계 회사에 입사해서 10여 년을 멋진 커리어우먼인 양 까불어대던 내가 결국 육아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그 이름도 트렌디하고 낯선 경력단절 전업주부가 되었다. 오랜만의 대학 동창 모임에 기죽지 않으려고 겉치장에 잔뜩 힘을 주고 나가본들 껍데기에 힘준다고 풀 죽었던 알맹이가 다시 살아날까. 사회에서 한 자리씩 하며 잘 나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겉으로는 웃고 떠들고 있었지만 가슴속에는 늦가을 낙엽더미를 헤집어버릴 시리고 처량한 바람만이 불 뿐이었다. 친구들이 직장생활의 애환을 안주 삼아 고민을 나눌 때면 분명 나도 10여 년을 겪어서 모를 리 없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끼어들기가 머쓱했다.
열등감은 진정한 모자람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내다볼 줄 아는 안목이 부족한 사람에게 찾아든다. 드라마의 주인공 미래가 그랬고 과거의 내가 그랬다. 미래가 원했던 것이 인형같이 아름다운 외모였다면 내가 원했던 것은 어디 내놓아도 번듯한 사회적 성공이었으리라. 예를 들면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의 으리으리한 사옥의 고층에 위치한 멋진 나의 방에서 매일매일 남들에게 나의 지위를 확인 받을 수 있는 뿌듯함 같은 것. 하지만 미래는 예뻐지고도 행복해지지 않았고 나 또한 직장에서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했을 것임을 단언할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관계』 에서 인간에게 있어 일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세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고 말한다.
1. 내 안의 가장 진실하고 재능 있고 깊숙한 부분을 활용할 수 있는가
2.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가
3. 자신의 일이 주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매일매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가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회사를 다니고 그곳에서 성공하고 싶었던 과거의 나에게 위의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니 어느 질문 하나에도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직업도 신분도 애매모호하고 경제적 수입도 보장할 수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글 나부랭이를 쓰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세 가지 질문을 다시 던져보니 세 질문 모두에 대해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요즘은 10대인 고등학생들도 어린 나이에 자신의 꿈을 신통하게도 잘도 찾아내는데, (물론 대학입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너무 일찍 진로를 강요받는 면이 없지 않다) 어른아이인 나는 마흔이 다 되도록 나의 꿈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그 길은 꽃길이 아닌 열등감의 가시가 뿌려져 있는 조금은 아픈 길이었기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 어리석은 열등감과 이제는 이별을 할 수 있게 된 걸까.
문유석 판사가 바라는 세상은 아래와 같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들이 북적대는 술집 같은 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회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내 생각일 뿐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그저 저 별에서 저런 과정을 거쳐 자란 인간들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것을 서로 알게 될 뿐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차이에 대한 인식이 평화로운 공존과 타협의 시작일지 모른다. 저 초록색 외계인들이 내 맘에는 안 들더라도 어차피 잠시 머물며 즐겁게 보내야 할 이 술집에서 서로 오해하고 총질하면 내 손해니 잠시 참아 주기라고 하자는 합의가 있어야 술집이 돌아간다. '다름'은 물론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가능한 한 참아주는 것. 그것이 톨레랑스다. 차이에 대한 용인이다. 우리 평범함 인간들이 어찌 이웃을 '사랑'하기까지 하겠는가. 그저 큰 피해 없으면 참아주기라도 하자는 것이다. "제발 우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요. 어차피 한동안은 이 땅에 다 같이 발 붙이고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니 서로 노력을 해나가자고요." 평생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야 될 정도로 백인 경관들에게 구타를 당한 로드니 킹이 그로 인한 LA폭동 때 평화를 호소하며 했던 말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는 세상. 타인이 만들어 놓은 기준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 더 중요한 세상. 그런 세상은 모든 구성원들이 동참하지 않아도 우리의 눈앞에 실현 가능하다. 나의 생각이 바뀌면 내가 원하는 세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남들과 비교하며 남들이 세워놓은 기준 따위 쳐다도 안 볼란다. 이젠 남들의 돈, 명예, 지위, 외모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다. 남들의 시선, 남들의 기준, 열등감, 불안, 걱정들이 덕지덕지 엉겨 붙어 우리를 옥죄었던 포승줄을 풀어 버리는 그 순간, 그로 인해 나의 행복과 자유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 듯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 순간,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우리는 나지막이 되뇌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젠 더 이상 '남 부럽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