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나요?

『행복의 기원』 , 서은국

by Minimum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기며 늘 밝고 사교적인 성격의 소유자로서...'

매우 고리타분하고 식상하지만 자기소개서에서 빠지면 서운한 문구들이다. 필자 또한 타고난 외향성과 밝은 성격을 갖고 있다고 나름 자부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내가 정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길 정도로 외향적인 사람인가 대해 되돌아보게 해준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있던 어느 오후, 옆에 서있던 친구가 나에게 날카로운 한 마디를 던진다.

"야, 직원 눈 좀 보면서 주문해라. 내가 다 민망하네."

입으로는 분명 상냥한 존댓말을 쓰고 있었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직원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앵무새처럼 주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코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냉대한 것이 아닌 무의식에서 나온 버릇 같은 행동이었을 테지만 몰래 갑질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졌다. 가만히 돌아보니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기는 커녕 낯을 가리는 편에다가 어떤 특정한 사람과 유대를 하기까지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게되면 어느 정도의 시간과 거리를 두고 지켜보며 내 기준의 신뢰를 쌓기 전에는 말도 놓지 않고 쉽게 곁을 내어주지도 않는다. 이윽고 상대방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도장을 찍고 나면 그제서야 비로소 그들에게는 마냥 밝고 외향적인 내 모습을 드려내는 것이었다.

수많은 심리검사들이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 에니어그램의 검사 결과가 가장 흥미롭게 와 닿았다. ’타고난 낙관주의자이나 리더로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조력자이자 중재자이며 생각이 많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예술가’ 라나... 이런 뒤죽박죽 복잡한 성격이 어디 있나 의아하면서도 그것이 바로 진짜 나의 성격, 나의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누구든 완벽하게 외향적이고 완벽하게 내향적인 사람은 없다. 상충되는 여러 기질들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외향적이면서도 고독과 사색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내향적이지만 리더로서의 기질이 탁월하여 자기 분야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타고난 성격이 행복의 큰 변수가 된다고 말하는 놀라운 책이 있다.



온 세상은 '행복은 무엇인가'.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왜 우리는 행복해지려 하는가'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수많은 연구논문들과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책을 펼쳐 보지만 갈증과 허전함을 달래주기에는 역부족이다.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진화심리학 특히 ‘행복’에 대하여 활발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는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에 대해 시원하고 깔끔하게 설명한다.


인간은 행복하게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행복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행복을 느끼게끔 우리의 뇌가 진화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사람으로 인하여 행복을 느끼고 좌절을 느끼게끔 우리의 뇌는 설계되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밝은 성격을 가진 타고난 외향성을 지닌 사람이 행복할 확률이 높다.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가 문제이다.


결국 다윈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배틀’이 되어버린걸까. 진화심리학자인 저자는 철저하게 자신의 전공 학문에 근거하여 주장을 펼친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도움이 되는 쾌감을 계속 '자주' 얻기 위하여 끊임없이 행복을 느끼게끔 진화하였다고. 그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고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식욕, 성욕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행복의 이유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주변에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교류를 하며 살아가는가에 따라 사람마다 행복의 크기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교류하기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탁월하게 높다고 말한다.


왜 이토록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할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막대한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바로 생존, 세상에 포식자들이 있는 한, 모든 동물의 생존확률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높아진다.
물소들은 사자들이 우글거리는 아프리카 초원을 수십만 마리의 동료들과 함께 횡단한다. 서로 잡담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매가 혼자 있는 비둘기를 습격할 때 사냥 성공률은 80%이나 여러 다른 친구 비둘기들과 함께 있을 때 매의 사냥 성공률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또한, 동료의 존재는 식량 확보라는 생존과제 해결에도 필요한 자원이다. 진화의 여정에서 집단에서 소외된 동물은 '비상식량 장치'가 부족했고, 결국 이것은 죽음으로 연결된다. 짝짓기라는 궁극적인 생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타인이 필요하다. 현대 생활은 맹수나 배고픔의 위협으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롭지만, 여전히 짝짓기는 절대적인 생존과제로 남아 있다.

인간의 본성을 압축한다면 나는 " The Ultimate SOCIAL machine"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회성은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가장 독보적인 특성이다. 어느 저명한 뇌과학자 또한 인간의 뇌는 결국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 설계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읊 먹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서 교수는 위의 사진 한 장으로 인간의 행복에 대해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한국인의 일상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조사해보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먹는 것대화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과 같은 긍정적 정서들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위의 사진과 같은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 자주 반복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인간이 왜, 어디서 쾌감을 느끼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셰익스피어나 쇼팽도 쾌감을 주지만 가장 본질적인 쾌감은 먹을 때와 섹스할 때, 더 넓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는 것이다.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우리의 뇌에서 행복을 느끼게 해주므로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갓 구운 빵냄새가 주는 황홀함, 사람하는 사람과의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저녁식사,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해맑은 딸아이의 미소...요즘 핫한 키워드 '소확행'이 바로 행복의 진짜 모습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