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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um May 29. 2019

『파리의 딜릴리』 파리의 눈부신 그림자

 『파리의 딜릴리』 , 2018, 미셸 오슬로

 •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그곳은 햇빛 아래에서 더 빛나고 거기서 나오는 부조화가 더 아름답다


 여행은 고되고 두렵기도 하지만 떠나기 전엔 설렘 주고, 돌아오고 나면 아련함을 남긴다. 여행애호가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체력도 용기도 턱없이 부족하면서도 삶을 '여행' 아니면 '일상' 이렇게 두 가지로만 이분해버리고 싶을 만큼, 일상에 지칠 때마다 틈만 나면 여행을 꿈꾼다. 일상의 번민이 사라진 낯선 공간은 어느 누구의 가슴에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새긴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장엄함도 사랑하지만 도시의 구석구석을 누비기를 좋아하기에 예술과 낭만이 넘치는 파리라는 도시는 몇 번을 갔어도 또 가고 싶은 영원한 동경의 공간이다.



 영화 속 파리의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화면의 완성도와 생동감을 위해서 미셸 오슬로 감독은 파리의 낮과 밤, 사계절을 담기 위해 무려 4년 동안 직접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는 “위대한 장인이 평생을 바쳐 완성한 것을 넘어설 순 없었다.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도시 파리는 너무 훌륭해서 그래픽으로는 흉내도 못 내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수많은 사진으로 영화의 뼈대를 완성한 후 현대의 흔적을 완벽히 지우는 애니메이터들의 엄청난 노력를 더해 『파리의 딜릴리』의 환상적인 미장센을 완성했다.



 미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따라잡기 급급한 요즈음의 애니메이션 제작 트렌드 속에서 그는 꿋꿋하게 프랑스 애니메이션 방드 데시네 (Bande dessinee)가 아직 건재함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증명한다. 독특한 주제와 분위기, 미장센을 보기 좋게 버무려 놓았다.


꿈보다 더 환상적이고 예술보다 더 아름다운 가장 황홀한 보랏빛 모험이 시작된다!



 영화 포스터 속의 카피를 보며 왠지 '보랏빛'이란 단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파랑과 빨강을 섞으면 나오는 색 보라. 마냥 로맨틱하고 발랄하기만한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 구경쯤일 거라 생각했던 관객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만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말랑말랑한 낭만을 기대하고 자리에 앉았지만 '온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에듀메이션!' 이란 카피가 무색하게 영화의 기저에는 어둡고 무거운 그림자가 깔려 있다. 눈부신 햇살처럼 붉게 빛나는 파리의 겉모습 아래 깔려있는 어둡고 칙칙한 푸르스름한 그림자를 겹쳐 보여준다. 두 가지 색이 포개어지면서 신비하고 묘하면서도 아름답고 품위 있는 보랏빛 파리를 완성한다.

 

 오프닝 시퀀스는 다소 충격적인데, 카나키 원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비추던 카메라가 줌 아웃되면서 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공간이 파리의 한가운데임을 보여준다. 1900년대 실제로 프랑스와 벨기에 등 유럽 전역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릴 때면 인간동물원이라는 것을 운영했다.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그 시절, 식민지 원주민들은 백인들의 호기심 채워주고 제국주의를 부추길 전리품 같은 존재였고 자국의 대도시에 원시적인 그들의 생활 모습을 전시함으로써 인종 차별, 진화주의, 식민지주의를 부채질했다.



 우리의 주인공 딜릴리. 피부색에서 드러나듯 그녀는 남태평양에 위치한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의 카나키족과 프랑스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다. 뉴칼레도니아에서 파리로 향하는 배에 몰래 올라탄 그녀는 자비로운 백작부인의 도움으로 프랑스어는 물론 귀족으로서 갖추어야할 매너와 복장 등을 배우며 풍족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인간 동물원에서는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뿐이다. 고향에서는 남들보다 얼굴색이 하얗다고 놀림을 받았었지만 파리에 와서는 남들보다 얼굴색이 검다고 놀림을 당한다. 꼿꼿하게 서있는 딜릴리라는 이름의 철자의 모양 (Dilili) 처럼 그녀는 백인도 흑인도 아니고 프랑스인도 카나키인도 아닌 경계에 서있는 인물이다. 그녀가 배달부 청년 오렐과 함께 파리에서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여자어린이 유괴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벨 에포크 시대 수많은 예술가와 과학자 등 유명인사 들의 도움을 받으며 펼쳐지는 모험이 영화의 주된 서사이다.

 '좋은 시대'란 뜻의 '벨 에포크'는 약 80년 동안 혁명과 폭력, 정치적인 격동기를 치른 후에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던 1890~1914년에 이르는 문화융성기를 일컫는다. 그 시기의 파리에서는 세계 최초로 영화가 탄생하였고, 지하철과 가로등이 생겼으며 마르셀 푸르스트 등 저명한 소설가들과 피카소, 모네, 르느아르 등 화려한 색채를 쓰는 화가들이 넘쳐났다. 풍요와 평화를 만끽하며 예술과 문화를 번창시켰다. 1889년·1890년의 세계박람회, 지금의 관광명소인 에펠탑, 알렉상드르 3세의 다리, 그랑·프티 팔레 궁, 개선문, 로댕 박물관, 물랑루즈 등도 이 무렵에 태어났다.



 영화 속에는 피카소, 모네, 르누아르, 로댕, 까미유 끌로델 등 화가와 조각가를 비롯하여 에드워드 7세, 드뷔시, 프루스트, 퀴리 부인, 에펠, 뤼미에르 형제, 파스퇴르, 사라 베른하르트, 쇼콜라, 콜레트 등 예술과 과학 등 각 분야에서 명성을 떨친 1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딜릴리와 오렐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러 형태로 도움을 준다.



 이렇듯 벨 에포크 시대의 유명인들이 너무나 많다 보니 되도록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싶은 감독의 욕심이 과했던 탓인지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산만한 전개와 서사의 빈약성을 지적 받는다. 여자 어린이들을 유괴하는 '마스터맨' 조직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푸르스름한 그림자는 보기 불편할 정도로 짙어진다. 가족용 애니메이션이라기엔 다소 무거운 주제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딜릴리를 통해 제국주의(식민지주의)와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스터맨을 통해 존중받지 못하는 여성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와 보여주고 싶은 화면이 많다 보니 감독의 과욕이 느껴져 스토리가 산만해지고 여기저기 투척된 떡밥들이 널브러진 채 영화가 끝나는 듯한 아쉬움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프랑스식 이야기 전개방식과 화법, 아름다운 화면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무거운 이야기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예술의 향을 입혀 어린이든 어른이든 그 누구의 가슴에든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꼭 해보라며 가볍게 노크하는 방식이 독특하고 참신했다.



 감독은 이 영화는 '파리에 대한 나의 사랑의 고백'이라고 말했다. 그 달콤한 고백 안에 진중한 메시지까지 담으려니 아름다운 외양을 지닌 풍선 속에 무거운 물이 가득 차서 멋지게 날고 싶어도 날아오르지 못하는 듯하여 안타까움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으리라. 딜릴리는 파리에 살고 있는 이방인(현재의 이민자 또는 난민)이지만 사건의 해결을 위해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이 하고 있는 다양한 일에 대해 큰 호기심을 갖고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한다. 파리의 배달부인 오렐은 비록 노동자 계층이지만 노래와 춤에도 재능이 있는 등 교양과 예술감각이 충만할 뿐아니라 변호사가 되어 정의를 지키고 싶은 멋진 꿈이 있는 청년이다.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와 유럽의 화려함 뒤에 존재했던 제국주의, 백인우월주의, 남성우월주의, 빈부의 격차라는 그림자는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 드리워져 있기에 딜릴리의 진취적인 에너지와 포용력, 오렐의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와 예술의 힘이 필요하다고 영화는 말한다.



 유괴된 아이들을 구출하고 난 긴박한 상황에서도 열기구 위에서 백작부인 엠마 칼베가 속도 좋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생뚱 맞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무거운 메시지 때문에 좀처럼 높이 떠오르지 못했던 이 작품이 천상의 목소리와 환상적인 미장센의 구름을 타고 결국은 멋지게 떠올라 관객들의 마음에 살포시 안착한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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