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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um Jun 15. 2019

『갤버스턴』 아름답고 처절한 세상의 끝

갤버스턴, 2018, 멜라니 로랑

 •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갤버스턴'은 미국 텍사스주, 멕시코만 연안의 갤버스턴섬 북동쪽 끝에 있는 도시로 휴스턴에서 남동쪽으로 82㎞ 떨어져 있다. 휴스턴이 발전하면서 상대적으로 도시의 발전이 정체되어 지금은 텍사스주의 작은 소도시로 남아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항구도시이자 휴양지이다.

 미국 땅의 남부의 끝, 지상낙원과도 같은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휴양도시이지만 잊을만하면 어마어마한 허리케인이 강타하는 비극의 도시이기도 하다. 아름답고도 처절한 갤버스턴이라는 도시는 누군가의 인생과 닮아있는 것 같다.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아.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야.


 주인공 로이(벤 포스터)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아온 19살 록키(엘르 패닝)에게 무심한 듯 위로와 희망의 말을 건넨다. 자신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는 무뚝뚝하고 우직한 철벽 아저씨 로이에게 록키는 불행했던 이전의 삶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믿음과 따뜻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로이 또한 우연히 얽혀 그녀의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면서 연민과 애틋함을 느낀다.


누구에게나 벗어나고 싶은 지옥이 있다.


 사랑도 잃고 시한부 선고까지 받은 데다 보스와 조직으로부터 배신당한 로이. 계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후 집을 나왔지만 세상 물정을 몰라 매춘의 길에 들어서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며 살아가는 록키. 어느 날 로이는 보스의 명령을 받고 누군가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함정에 빠지고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벌벌 떨고 있던 록키를 만나 둘은 기약 없는 도피의 길을 함께 떠나게 된다. 철저히 파괴되고 상처 받은 두 사람은 묘하게 닮아 있다.



 처음에는 별 존재감도 특별함도 없던 한 사람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지켜보다 보니 어느 날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를 차지해버렸던 경험. 드라마나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지루한 입덕부정기를 거쳐 그 사람은 나도 모르게 내 마음 깊은 곳에 들어와 버린다. 그 감정은 단순한 관심이나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우정, 존경, 사랑 등으로 변모한다. 로이와 록키, 두 사람 사이에는 동정, 연민, 믿음, 사랑, 존중이 고루 섞여 흐른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고 삶의 희망을 잃었던 로이는 록키와 티파니를 만나게 되면서 누군가를 죽이는 대신 지켜주고 싶게 되고 다시 삶의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된다.



 세 사람의 도피의 끝, 지상낙원과도 같은 갤버스턴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로이와 록키 그리고 어린 티파니는 찬란한 햇빛 아래 여유롭고 행복한 한 때를 보낸다. 어둡고 비참하고 눅눅한 화면을 지나 보이는 갤버스턴의 아름다운 풍광과 행복하게 뛰노는 록키와 티파니의 모습은 이전의 어두운 화면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더욱 빛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늘 술에 절어 삶의 목적도 이유도 없이 죽어가던 로이는 눈부신 갤버스턴에서 아름다운 록키와 티파니를 보며 잃어버렸던 삶의 이유를 다시 찾는다.

 반짝이던 행복한 시간도 잠깐 그들이 꿈꾸던 밝은 미래는 예상대로 허무하게 날아가버리고 영화는 처절하고 어둡게 내달린다. 만신창이가 된 로이의 뒤를 관객들 또한 힘겹게 뒤쫓는다.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 로이는 끝까지 자신을 희생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는 갤버스턴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허리케인이 상륙하기 직전 무시무시한 바람에 흔들리는 주인공 로이(벤 포스터) 초라한 집을 보여준다. 어린 티파니를 지키기 위해 20년을 복역한 후 출소한 로이에게 허리케인이 몰아치던 바로 그날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한 티파니가 찾아온다.  언니와 로이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티파니에게 로이는 언니가, 아니 그녀의 엄마인 록키가 얼마나 딸을 사랑했는지 그리고 끝까지 딸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말해준다.



 세상의 밑바닥에서 쓰레기 같은 삶을 살던 로이를 향해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록키를 만나 사랑하고 변화한 그의 숭고한 희생은 티파니를 보호했고 한 인간을 바르게 성장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도시 갤버스턴은 허리케인이 강타할 때마다 무너지고 찢기어 폐허가 되어버리지만 인간은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하면 돼!’라고 말하며 다시 한번 툭툭 털고 일어나 복구를 시작한다. 그리고 예전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는다.

 아픔 없는 사람, 상처 없는 사람, 허물없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의 모진 바람에 쓰러지는 것도,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는 것도 우리의 삶 속 일상다반사다. 시궁창 같은 삶을 살다 간 로이와 록키의 삶은 그 모양만큼은 보잘것없고 흉측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꾸었던 꿈과 그들이 바랬던 세상은 그 누구의 삶보다 아름답고 숭고하다. 이 세상 어디에도 하찮은 삶, 의미 없는 삶은 없다. 잠시 허리케인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을 뿐 갤버스턴은 본래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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