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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um Jun 20. 2019

『칠드런 액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선택

『칠드런 액트』, 2018, 리차드 이어

 •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종교와도 같다


 자유로운 영혼과 괴짜 같은 성격 탓에 잊을만하면 사건와 송사에 휘말려 안타까움을 주는 한 배우는 자신의 아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자신과의 힘든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며 힘이 되어주는 아내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에게 있어 삶의 최우선의 지표이자 믿음의 대상은 종교도 도덕도 아닌 한 사람(사랑)일런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에서 어떠한 선택을 해야만 할 때 그 기준은 무엇일까? 도덕, 종교, 이성, 신념, 사랑? 만약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선택이라면 당신은 과연 어떤 기준을 갖고 선택을 할 것인가?

 신비롭고 깊은 눈동자를 가진 17세 소년 애덤(핀 화이트헤드)은 백혈병을 앓고 있다. 목숨이 위태로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그는 자신의 종교인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에 따라 백혈병 환자에게 필수적인 치료인 수혈을 거부한다. 그들에게 피는 신이 주신 선물이며 나의 피와 다른 사람의 피를 섞는 일은 신을 부정하는 일이며 육체와 영혼을 오염하는 일이다. 존경받는 런던 가정법원의 판사 피오나(엠마 톰슨)는 긴급을 요하는 이 사건을 맡게 된다.



하지만 가정보다는 일과 법에 치우쳐 살아온 그녀를 참다못한 남편 잭(스탠리 투치)은 "아무래도 나 바람피울 것 같아." 라며 폭탄선언을 한 상황. 늘 철저한 법리와 판례, 이성에 근거하여 판결을 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그녀가 흔들리는 가정과 애덤의 사건을 동시에 맞닿드리게 되면서 자신이 평생을 믿고 따라왔던 '이성'이라는 신념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칠드런 액트'란 1989년 영국에서 제정된 아동법으로 법정이 미성년자(아동)의 양육과 관련한 사건을 판결할 때 최우선적으로 ‘아동의 복지’를 고려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평상시의 피오나라면 이 법에 근거하여 어렵지 않게 판결을 내렸겠지만 가정과 신념이 흔들리고 있던 피오나는 이례적으로 당사자인 소년을 직접 만난 후 판결하기로 결정한다. 사회적 신망과 지위가 높은 판사를 자신의 병실에서 직접 만나게 된 애덤은 어린아이처럼 흥분한다. 하지만 종교에 대한 소신과 믿음을 굽히지 않은 채 자신의 결정을 존중해달라고 이야기한다. 병실에 있던 기타를 발견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소년의 아름다울 미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피오나는 꺼져가는 생명 속 빛나는 그의 순수한 영혼과 잠재성을 보게 된다. 칠드런 액트에 따라 그녀는 수혈 명령을 내리고 애덤은 건강을 회복한다. 수많은 사건 중에 하나로 끝날 듯한 이 사건과 두 사람의 만남은 두 사람의 삶에 큰 파장을 불러온다.


 오랜 시간 동안 옳다고 여기며 따랐던 견고한 믿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두렵고 외롭고 괴롭다. 거대한 미로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멍하니 넋을 놓고 서있게 된다. 특히 굳건했던 믿음을 버리고 용기 내어 새로운 믿음을 갖으려 했으나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는 찾아오는 절망감의 크기와 깊이는 어떠할까. 피오나에게 차갑게 외면당하고 돌아가는 애덤의 모습은 인생이란 여정에서 지표를 잃어버린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우리가 어떠한 믿음을 쫓아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한 선택은 과연 최선이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라고 영화는 버거운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든 도덕이든 종교든 신념이든...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이성에 따른 판단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감성에 따른 판단이 더 나은 결과를 낳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 선택이 좋다 vs 나쁘다, 옳다 vs 그르다 또한 어느 누가 함부로 판단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선택에 대한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 애덤의 선택을 예측했다면 피오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애덤은 자신의 종교를 버리고 ‘피오나’라는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된다. 그것은 존경, 호감, 사랑 그 어느 하나의 단어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믿음의 덩어리다. 하지만, 피오나는 차가운 이성으로 애덤을 거부한다. 새로운 믿음을 따르는 삶이 불가능해진 그는 또다시 자신만의 선택을 하게 된다. 세상에 더 좋은 선택 더 올바른 선택이란 것이 존재할까? 특별할 것 없는 엔딩 롱테이크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한참을 올라가도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는 이유는 받아든 뜨거운 화두로 인해 들끓는 머리가 도무지 가라앉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언 매큐언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작가이며 특히 우리의 인생 속  '가지 않은 길' 에 대한 관심이 많은 작가이다. 모든 인간이 아파하고 집착하는 이 주제에 대해 날카롭게 집중한다. 우리의 삶은 태초의 혼돈의 우주와도 같아서 피오나가 법정에서 추구했던 ‘최선의 올바른 선택’이란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난 어떻게든 결정해야 해


 삶이 흘러가려면 우리는 어쨌든 하나의 선택을 해야하고 삶은 방향을 틀어 흘러가지만 택하지 못한 다른 선택에 대한 미련과 회한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 또한 인간의 슬픈 운명이다. 방황하고 아파하는 애덤과 피오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작가와 감독이 할 수 있는 전부이며 나머지 사색은 우리 몫의 숙제다.

 인생의 최선의 선택이란 없다고 호언장담 했어도, 엠마 톰슨과 핀 화이트헤드의 유려한 연기로 던져주는 황홀한 숙제를 받아보는 것은, 후회 없을 굿 초이스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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