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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um Jul 22. 2019

『알랭 뒤카스』 '음식'이 아닌 '식사’에 대하여

『알랭 뒤카스 : 위대한 여정』, 2017, 쥘 드 메스트르

 갑작스러운 허기에 허겁지겁 컵라면 하나를 먹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집 식탁에서 하얀 벽을 바라보고 먹었느냐 아니면 스위스 알프스의 어느 정상에서 하얀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먹었느냐에 따라 그 맛과 향은 우리의 기억 속에 완벽히 다르게 남겨질 것이다.


모든 감각에 맛있는 기억을 남겨주고 싶어요


 이 영화는 최연소 미슐랭 3스타, 최초 트리플 미슐랭 3스타, 미슐랭 스타 21개 등등 화려한 수식어에 빛나는 세계적인 셰프 알랭 뒤카스가 베르사유 궁 안에 최초로 레스토랑을 열기까지 2년 간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그는 '파인 다이닝'이란 음식뿐만 아니라 지역의 특색, 공간, 식기, 주인의 미소까지 포함하는 경험이자 추억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먹는다는 일(경험)’ 즉 ‘식사(食事)’에 대한 이야기이다.



 2015년 프랑스 정부는 베르사유 궁전의 호텔과 외식사업을 담당할 업체를 공모한다. 20여 개의 업체가 참여한 공개입찰에서 알랭 뒤카스는 당당히 식당 운영권을 따낸다. 손님들에게 '왕의 식사'를 경험하게 해 줄 레스토랑 'Ore'를 오픈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그의 인생과 요리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모든 감각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요리의 맛과 모양뿐 아니라 공간의 장식과 분위기, 식기와 커틀러리, 종업원의 유니폼, 서비스의 속도와 동선 등 세심한 곳까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완벽을 추구한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 그를 이끈 것은 '호기심, 추진력, 진화, 완벽'이라고 이야기했다.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접붙여 프렌치 퀴진을 한 단계 진화시키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모험을 감행하고, 최고의 재료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또한,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요리학교를 운영하며 자신의 전문성과 경험을 나누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푸드 리사이클링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사회운동가로서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는 요리사라는 직업을 '자연과 시식가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안내자'라고 말한다. 프랑스 남부의 랑드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부모님의 농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이 선사하는 재료 본연의 맛을 경험하며 자란다. 그가 세계적인 요리사 조엘 로부숑의 뒤를 이어  미슐렝 3 스타 레스토랑을 이어받고 대중들에게 처음 내놓았던 요리는 화려함과 미식을 상징하는 프렌치 퀴진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농장 음식 ‘돼지고기와 감자’였다. 기존의 프렌치 퀴진의 주재료인 육류와 밀가루를 줄이고 최상의 품질의 채소와 해산물을 주재료로 사용하며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릴 수 있는 자연스러운 요리(Naturalness Cuisine)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화려하고 복잡한 조리법의 대명사인 프렌치 파인 다이닝 역사에서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그렇게 그는 건강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프렌치 누벨 퀴진의 리더로서 세계 요리의 트렌드를 바꾸어 나갔다.


 '명품가방 보다 여행'이라는 요즈음의 트렌드가 말해주듯 물건의 소유가 주는 일회성 만족감보다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직접 경험한 아름다운 기억이 주는 만족감은 두고두고 가슴에 새겨진다. 영화 속에서 그가 셰프로서 요리하는 모습은 단 한 번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영화는 그의 사생활은 철저히 봉인한 채  'Fine Dining' 이란 장르의 예술가이자 철학자이며 사업가로서의 그의 모습에 집중한다. 자신의 식당에 채소를 납품하는 농장을 구석구석 꼼꼼히 둘러보며 씻지도 않은 열매를 그대로 씹고 맛보는 그의 모습은 최적의 토양과 기후에서 정직하게 재배된 재료만을 고집하는 그의 완벽주의 철학을 보여준다. 시식가(고객)에게 알랭 뒤카스 표 파인 다이닝이란 예술의 절정을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 그는 그 어떤 장인보다도 자신의 작품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프렌치 파인 다이닝이란 영역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파리의 비스트로에서 가볍게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를 먹는 일 조차 우리에게는 너무도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일이니 말이다. 한식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다기보다는 자극적인 양념과 복잡한 조리방법을 갖고 있는데다가, 한상에 동시에 차려놓고 먹는 공간 전개식 식사 문화이기에 서양식 파인 다이닝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낯섦과 호불호의 온도 차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또 다른 어떤 이에게는 파인 다이닝이란 상류층의 전유물처럼 느껴질는지도 모른다. '가성비'란 단어가 핫한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살림살이가 팍팍한 탓도 있지만 우리의 오감을 만족시킬 좋은 제품(작품) 또한 많지 않다는 반증일런지도 모른다.

 베를린 필의 연주회나 브로드웨이 뮤지컬, 웰메이드 영화 등을 감상하고 난 뒤 그 비용이 아깝다고 느끼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80분 동안 알랭 뒤카스를 따라다니며 그의 장인정신을 들여다보고 나니 요리사의 영혼과 완벽함이 깃든 한 번의 '식사' 는 단순히 사치스러운 경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뛰어난 예술작품과 같은 감흥을 선사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갖게 된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어느 분야에서든 멈추지 않고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때 그것은 하나의 위대한 작품이 될 수도 있고, 그 발자취는 위대한 여정이 될 수도 있다.



•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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