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2018, 드레이크 도리머스
•영화 『조』 의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하여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 2.0은 당신의 완벽한 반려자가 될 것입니다.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반려로봇 ‘조 2.0’의 광고 문구다. Relationship Lab (이하 RL). 인간관계연구소? 이런 상호를 가진 업체가 있다면 사람들은 대개 심리상담소 또는 정신분석연구소 등이 아닐까 짐작하겠지만 이 회사는 ‘인생의 완벽한 반려자' 라는 모토 아래 A.I 로봇과 사랑을 샘솟게 하는 신약, 완벽한 파트너 매칭 서비스를 위한 프로그램 등을 연구 개발하고 판매하는 첨단과학기술연구소이다.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영원히 나를 사랑해줄 완벽한 인생의 반려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긴 할까? 그것은 RL이 추구하는 바와 같이 완벽한 기계나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별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젊은 청춘의 경우 이별이 두려워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자석처럼 사랑에 이끌려 앞뒤 재지 않고 열렬히 사랑을 하는 이들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연애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새드엔딩보다는 결혼이라는 제도적 해피엔딩을 기대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여러 가지 이유로 이별은 현실로 다가오고 사랑과 믿음이 클수록 상처 또한 크다. 나이가 들고 몇번의 이별을 겪고 나면 다가올 상처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사랑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 인간에게 상처 받기는 두렵지만 여전히 완벽한 관계를 꿈꾸며 위로 받길 원하는 현대인들은 RL의 제품들에 열광한다.
이 회사에서 파트너 매칭 테스트를 담당하는 직원인 조(레아 세이두 분)는 회사의 대표인 콜(이완 맥그리거 분)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고객들에게만 제공하는 테스트를 직접 받아본다. 하지만 콜과의 연애 성공률은 0%. 좌절한 조는 테스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콜에게 고백을 하지만 놀라운 대답을 듣게 된다.
조, 당신은 내가 만든 로봇이야
프로토타입이었던 로봇 조 1.0은 자신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모르도록 설정되어 있었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 성향과 과거의 기억까지 갖고 있는 인간에 최대한 가깝게 설계된 로봇이었다. 조는 콜에게 묻고 콜은 대답한다.
이 사랑도 설계된 것인가요?
당신이 이렇게까지 진화할 줄은 몰랐어
결혼에 실패하고 외롭게 살아가던 콜은 최대한 인간에 가까우면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하는 완벽한 반려자를 꿈꾸며 연구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고 그가 만들어낸 창조물은 놀랍게 진화하여 어느새 창조주인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경지까지 이른다. 외로웠던 콜은 자신을 사랑하는 조를 보며 당혹스러워하지만 감성, 자의식, 사랑마저 가능하게 된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점점 그녀에게 끌리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두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콜과 조는 사랑 앞에 망설이고 멈칫한다. 매칭 테스트의 결과는 사랑이 이루어질 확률이 0%라고 이야기해주며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말한다. 콜은 인간이고 조는 로봇이라서? 콜은 조를 사랑하면서도 그녀의 정체성, 영혼과 존재의 실존에 대한 불확신으로 인해 고민하며 괴로워한다. 이 사랑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자연스럽게 영화 『그녀』를 자연스럽게 오버랩시킬 것이다. 유달리 쓸쓸하고 짠하게 느껴지는 남자 주인공, 몽환의 매력을 지닌 여자 주인공과 그녀를 닮은 영상미, 애잔한 음악과 다루고 있는 소재까지 쌍둥이 영화처럼 느껴질 것이다. OS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테오도르가 갈수록 업그레이드되는 사만다의 성능으로 인해 자신 말고도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동시에 사랑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절망하고 괴로워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콜과 테오도르 모두 지나간 사랑에 대한 아픔이 컸던 만큼 진실하고 완벽한 사랑을 원했지만 실상 본인들은 실체가 없는 가상의 존재와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것은 인간에게 상처 받은 그들이 일부러 선택한 사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그들의 모습은 정말로 연애를 하는 사람들처럼 행복해 보인다.
사만다가 버전 업그레이드 문제로 갑자기 사라져 버렸을 때, 조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피가 아닌 실리콘 비슷한 액체를 뿜어낼 때, 요즘 말로 '현타'의 순간에 느껴지는 이 외로운 남자들의 절망의 나락은 끝도 없이 깊다. 우리는 하루하루 눈이 부시게 발전하고 변화하는 첨단기술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인간의 삶과 사랑은 발전하기는커녕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한다. 인간의 외로움과 불안함을 기술로 해결하고 채우려 한다.
사랑의 대상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랑마저 가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어디쯤 있을까
어느 날 운전을 하다가 잠시 멈추어 섰는데 라디오에서 김광석의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이란 노래의 첫 소절이 흘러나온다. 숨겨져 있던 오래된 가요의 노랫말을 그의 애절한 목소리로 듣고 있자니 문득 나도 궁금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들은 대체 세상 그 어디쯤 있을까?
누구에게나 헤어진 연인 (또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대상)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OS인 사만다나 로봇인 조 같은 실체가 없는 존재가 아닐까? 하지만 대상의 실체가 없어졌다고 해서 그들과의 사랑, 추억마저 가짜일까? 그 사랑과 아름다운 추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우주 그리고 우리의 가슴속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안착하지 못하고 둥둥 부유하고 있을지언정... 사랑의 대상은 이미 없어져버렸거나 가짜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했던 사랑만큼은 여전히 실재하고 진짜인 것이다.
콜의 진심어린 고백에 로봇인 조의 눈에 기적처럼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기적이란 쉽게 일어나지 않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현상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기적처럼 드물고 희귀해서 우리의 삶 속에서 쉽게 볼 수는 없지만, 조의 볼을 타고 흐르는 한 줄기 눈물은 ‘진정한 사랑은...우리 곁에 분명히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느다란 표식일런지도 모른다.
• 7월 11일 개봉 예정
• 시사회에 초대해주신 영화온라인마케팅사 포디엄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