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라는 오븐 속에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by Minimum

책을 읽고, 글을 쓰기까지 방황에 방황을 거듭해가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가장 큰 이유는 필자의 외향적이고 세속 지향적인 성향 탓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책으로 하는 공부보다는 사람으로 하는 공부에 매진했으며 사회에 나와서는 직장생활, 결혼생활, 출산과 육아 등 바쁜 일상을 핑계로 책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살았다. 필자가 책 읽기와 글쓰기,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서른이 훌쩍 넘어 경단녀 전업주부로 살아가면서부터였다. 내 삶의 중심이 나이고 늘 모든 일을 결정함에 있어 나 하나만 생각하면 되었던 20대의 삶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30대가 된 나의 인생 드라마에는 나라는 주인공은 없었고 아이, 남편, 시댁 식구들 등 새로운 등장인물들만 가득했다. 나는 그들에게 주조연을 내어준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단순 보조업무를 하는 일개 스태프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 일이란 것은 열심히 해도 티가 안 나고 그렇다고 안 하면 크게 티가 나는, 일의 보람이라고는 좀처럼 느끼기가 힘든,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의 엄마, 아내, 며느리... 느닷없이 닥친 새로운 인생 역할들도 버거운데 거기에 더해 용기와 결단으로 자신 있게 선택한 경단녀 전업주부의 삶은 행복과 보람도 선사했지만 동시에 공허함과 좌절감 또한 안겨주었다. 내 책상과 내 자리, 내 세계가 없는 일상에의 적응 과정은 녹록지 않았고 더디기만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고 나만의 시간이 생기자 요리도 배워보고 운동도 시작하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떨어보았지만 우울과 방황은 그림자처럼 여전히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렇게 무력감과 우울감을 떡하니 손에 받아 든 후에야 비로소 아픈 사람이 약을 찾듯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삶이 힘들고 우울해져서야 다시 행복해져 보겠다고 다분히 이기적인 의도로 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의도가 불순해서였을까. 책을 들고 열심히 읽는 척은 했지만 제대로 머리와 가슴에 녹여내어 내 것으로 만들리 만무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나처럼 게으른 데다 혼자만의 시간보다는 사람들과 떠들썩하게 어울려 지내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외향적이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는 글을 쓰기에는 맞지 않는다고 단정하며 살았다.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내적 고민보다는 회사에서 잘 나가기 위한 처세술은 뭘까, 다음에는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갈까, 내일은 옷을 어떻게 입을까 등 세속적인 고민들을 주로 하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글을 쓴다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늘 혼자이기를 싫어했고 외로움을 두려워했다. 밖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싫은 일이었으며 무얼 하든 누군가와 함께 해야만 마음 편안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글을 쓰기 위해 혼자 카페에 앉아 샌드위치와 커피를 우걱우걱 잘도 먹는다. 이제는 어떻게든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늘 노력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와 사색과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깊은 사색과 독서, 고독을 딴 세상 이야기라 치부하고 담을 쌓고 살던 내가 마흔이 되어서야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글까지 쓰고 있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살았던 어리석은 젊음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고독’과 '문장'이 이루어낸 기적이다. 계속해서 문장을 읽고 고독에 잠겨 생각을 하고 문장을 썼기에 일어난 인생의 기적이다.

요즈음 주위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안부 삼아 필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딸도 많이 컸겠다 요즘 낮에 뭐하며 지내? 심심하지 않아? 나는 요즘 너무 무료하고 우울하던데..."

아직은 이렇다 할 작품도 없고 경력도 짧은 어쭙잖은 초보 작가이다 보니 떳떳하게 주변 지인들에게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냥 하는 일 없이 바쁘네. 백수가 과로사한다잖아."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내 표정은 이미 포실포실한 행복에 젖어있다. 자아를 되찾고 싶어서 재취업, 자격증 공부, 봉사활동, 학부모 활동 등 여기저기 많이도 찔러보고 방황했다. 그 어떤 시도도 가져다주지 못한 행복을 글쓰기가 가져다주었다. 쓰면 쓸수록 더욱 힘들고 어려운 것이 글쓰기지만 거친 세상과 허영이 뚫어놓은 내 영혼의 구멍이 채워지는 충만함과 기쁨에 하루하루가 생기 가득 즐겁다. 이 행복은 '문장'을 읽고 썼기에 누릴 수 있는 일이었고 더 이상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즐기게 되자 찾아왔다.


당신의 생각이 주위로부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조용히 제 스스로 자라나도록 두십시오. 그와 같은 성장은, 모든 진보가 그렇듯이,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뻗쳐 나와야 하며, 그 무엇에 의해서도 강요되거나 재촉당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은 산産달이 되도록 가슴속에 잉태하였다가 분만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시간을 헤어리는 일이 통용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1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10년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릇 예술가라고 하는 존재는 세지도 헤아리지도 않아야 합니다. 예술가는 나무처럼 성장해가는 존재입니다. 수액樹液을 재촉하지도 않고 봄 폭풍의 한가운데에 의연하게 서서 혹시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일도 없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여름은 오니까요.


고독 예찬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문학 지망생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학창 시절부터 늘 가족들, 친구들에 둘러싸여 시끌벅적 재미를 추구하며 살아왔던 20대의 나에게는 '고독을 견뎌라'라는 그의 메시지는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조언이었다. 청춘에게 외로움이란 조바심과 두려움을 함께 불러오고 인내는 당장 뱉고 싶은 쓰디쓴 고삼차 한 모금처럼 거북한 법이다. 그렇게 릴케를 잊고 지내다가 30대가 되어 다시 읽게 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눈물이 날 정도로 날카롭게 가슴에 꽂혔다. 고독과 사색이란 세계를 모르는 채 내가 아닌 남들의 기준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밀려오는 후회와 두려움에 몸이 덜덜 떨려왔다.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고 고독이 만들어내는 고통을 당신의 아름답게 울리는 비탄으로 견디도록 하세요.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당신의 성장을 기뻐하십시오.

당신의 고독은 당신에게 아주 낯선 상황 속에서도 당신을 위한 의지처이자 고향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바로 고독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당신의 모든 길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책을 많이 그리고 깊이 읽으면 읽을수록 오만가지 생각과 고민으로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그렇게 고독을 마주 하자 내 마음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대로 따르게 되었다. 다른 쪽으로 가려고 해도 마음은 자꾸만 정해진 한쪽 방향으로만 향했다.


우리가 어려운 것을 향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어려운 것을 향합니다.
고독하다는 것은 훌륭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독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언가가 어렵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바쁜 시간을 쪼개고 돈까지 쓰지만 진짜 나를 만나는 일에는 그 어떤 시간도 노력도 할애하려 하지 않는다. 고독을 마주 해보고 급기야 친해지게 된다면 우리 삶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혼자만의 시간 갖기.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고 내 마음이 내는 목소리를 들어보는 시간. 그것은 처음에는 어렵고 낯설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시도해보지 않으면 원통할 만큼 황홀한 경험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야만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 산책도 좋고 독서도 좋고 공부도 좋고 명상도 좋고 운동도 좋다. 글쓰기라면 더더욱 좋다.

남편이나 아내가 바빠서, 아이들이 다 커서 외롭다고 징징대기에는 고독이 삶에 선사하는 달콤함이 너무도 크다. 고독이라는 오븐에 들어가 열기와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비로소 달콤한 크림브륄레는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