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뇌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 , 바바라 스트로치

by Minimum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몇 시간 전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던 TV 리모컨이 떡하니 냉장고에 들어앉아 있다.

이번에는 스마트폰을 잠금 해제한다. 무엇을 하려고 했지? 모바일뱅킹? 캘린더 스케줄 체크? SNS? 뭘 하려고 스마트폰을 집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카페에 앉아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의 이름 석자가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머리를 움켜 잡는다.

시트콤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아니라 마흔 언저리의 우리들의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다. 아... 내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겉모습뿐만 아니라 우리의 뇌 마저 이대로 하향곡선을 그리며 늙어 쇠하고 마는 것인가?

요 근래 육체적 정신적 노화를 실감하는 탓에 어깨가 축 쳐진 마흔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마흔'이라는 키워드를 품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문학작품과 에세이도 훌륭하지만 몸소 마흔 앓이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추상적인 위로 보다는 연구에 근거하여 팩트 체크를 거친 보다 확실한 위로를 전해줄 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뉴욕타임스 의학전문기자인 바바라 스트로치의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는 중년에 접어들어 몸소 노화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의학 및 심리학 연구결과와 그 자료에 근거한 확실한 희망을 선사한다.



바바라는 책에서 '시애틀 종단 연구 Seattle Longitudinal Study'라는 가장 장기적이고, 규모가 크며 가장 존중받는 수명 연구를 언급하고 있다. 펜실베니아주립대학교의 심리학자 셰리 윌리스와 남편 워너 샤이는 1956년부터 40년이 넘는 동안 20세와 90세 사이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남녀 반반으로 구성된 6,000명의 정신적 기량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연구팀은 7년마다 그들을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하였는데 그들이 측정했던 능력의 종류는 아래와 같다.


• 어휘 능력 -얼마나 많은 단어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의 동의어를 얼마나 많이 찾을 수 있는가

• 언어기억 - 얼마나 많은 단어를 기억할 수 있는가

• 계산능력 - 가감승제를 얼마나 빨리 할 수 있는가

• 공간 정향 - 어떤 사물이 180도 돌아갔을 때 어떻게 보일지 잘 식별할 수 있는가

• 지각 속도 - 녹색 화살표가 보일 때 얼마나 빨리 빨간 단추를 누를 수 있는가

• 귀납적 추리 - 위에 언급한 것과 유사한 논리 문제를 얼마나 잘 풀 수 있는가


연구 결과를 들여다보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데, 참가자들은 여러 인지 검사에서 다른 어떤 때보다도 중년에 평균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나이에 관해서 비정상적으로 정신분열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62세가 되면 교사나 의사나 변호사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늙은 나이가 되었으니 저리 비키라고 말하면서도, 아마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일 미국 대통령에 일흔두 살의 남자가 출마하도록 한 적이 있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50대 후반이면 수십 가지 면에서 전성기를 지났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예순여덟 살의 할머니에게 미국 하원의 운영을 맡긴 적이 있다. 대체 얼마나 늙은 것이 너무 늙은 것일까? 신체의 뇌세포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언제 정점을 지난 퇴물이 되는 것일까?


기존의 노화 프레임 안에 갇혀서 과소평가되었던 중년의 뇌는 생애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었다. 가장 중요하고 복잡한 인지 기술들을 측정하는 여러 검사에서 현대의 중년에 속하는 연령(40~60대) 일 때 받은 성적이 앞서 20대에 받은 성적에 비해 좋았던 것이다. 특히, 여섯 범주 가운데 어휘, 언어기억, 공간 정향, 귀납적 추리 등 4개 영역에서 최고의 수행력을 보인 사람들의 나이는 평균적으로 40~65세 사이였다. 윌리스는 그녀의 저서 『중간의 삶 Life in the Middle』 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남녀 모두 수행력이 절정에 도달하는 시기는... 중년이다."

"지능에 대한 상투적인 관점이나 교양 있는 보통 사람들이 견지하는 순진한 이론들과 달리, 많은 고차적인 인지 능력의 발달 면에서 청년기는 인지적 절정기가 아니다. 연구 대상이 된 여섯 가지 능력 가운데 네 가지 능력은 중년인 사람들이 본인의 25세 당시보다 더 수준 높게 발휘하였다."


인간은 중년기에 가장 똑똑하고 지혜롭다. 우리는 현재의 뇌를 젊은 시절의 뇌와 수시로 비교하며 현재의 결점만을 크게 본다. 감각의 민감성, 계산 및 정보처리의 속도는 다소 둔화될 수는 있으나 구술능력, 공간인식, 추리, 계획 세우기 등 고차원적 인지 사고능력에 있어 40세에 그 기능은 정점을 이루고 이것이 60세까지 유지가 된다. 즉, 인간의 연령대별 인지능력을 나타내는 그래프는 40대까지 꾸준한 상승을 이루고 그것이 60세까지 꾸준히 유지되고 80세가 되기 전까지는 눈에 띄게 저하되지 않는 낮고 둥근언덕 모양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중년 인간의 뇌는 언덕의 넓은 정상에서 느긋하게 햇빛을 즐기는 상태라는 것이다.



중년의 뇌가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부분은
판단력, 종합능력, 직관력, 통찰력, 어휘력이다.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수많은 우리 생애 최고의 뇌들은 혈기와 능력에 비해 너무도 이른 은퇴, 실직, 재취업 실패 등으로 인하여 그 잠재성을 무시당한 채 내버려져 있는 듯하다.

스탠퍼드대학교의 경제학자 존 쇼븐은 독특한 방법으로 새로운 생애주기를 제안한다. 그의 생애 곡선에 따르면 1년 안에 죽을 위험이 1% 미만인 사람이 젊은이이며, 그 확률이 4%가 될 때까지는 늙은이가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그에 따르면 중년기는 남성의 경우 58세경에, 여성의 경우 63세경에 시작된다고 한다.

단, 이 모든 긍정적 결과와 신호가 현실에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 번째는 운동, 바른 식습관, 혈압 및 질병관리를 통한 건강유지이고, 두 번째는 안정된 경제적 여건이며, 세 번째는 배움, 독서, 글쓰기 등 지적 활동을 통해 우리의 뇌가 꾸준히 적절한 지적 자극에 노출되어야 한다.


우리 생애를 통틀어 최고로 핫하고 섹시한 뇌를 소유하고 계신 여러분, 이쯤 되면 우리의 지적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을 품고, 남아 있는 나날 동안 아름다운 풍경으로 둘러싸인 언덕의 넓은 정상에서 햇빛을 즐기기 위해 살살 워밍업을 시작하는 게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