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라이프』, 2018, 폴 다노
1960년 미국 중북부의 몬태나, 한 골프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제리(제이크 질렌할)는 무릎을 꿇고 고객의 골프화에 묻은 흙을 구둣솔로 세심하게 털어주고 있다. 일을 다 마치고 일어선 그의 바지에는 무릎이 진흙에 닿아 생긴 큰 얼룩이 선명하다.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친절한 성격의 제리는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이제 막 이사 온 몬태나에서 정착하여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의욕이 넘친다.
하지만 과한 의욕 때문이었을까. 그는 고객들이 부담스러울 만큼 지나치게 친절하다는 황당한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한 없이 쓸쓸하게 보였던 바지의 얼룩처럼 그는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받은 채 새로운 일자리 구하기를 망설이며 회피한다. 당장 월세도 못 낼 형편이 되자 그의 아내 자넷(캐리 멀리건)은 답답한 마음에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적극적으로 구직을 하지 않는 제리와 다시 일을 시작한 자넷 사이에 조금씩 감정의 균열이 생기고 싸움이 빈번해지기 시작한다. 급기야 제리는 몇 달째 번지고 있는 산불진화작업을 하러 가겠다고 집을 떠나버리고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편으로 인해 자넷은 점점 변해간다. 감독은 한 가정 내에 번져가는 불안과 위기를 바라보는 아들 조(에드 옥슨볼드)의 표정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세심하게 클로즈업한다.
산불은 여름이 지나고 대기와 흙, 나무가 건조해지고 낙엽이 쌓이는 가을에 유독 기승을 부린다. 특히 큰 일교차로 인해 바람이 강해지고 숲의 면적이 광활할수록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번져버리기에 크나 큰 재난으로 이어진다. 남편 없이 외로움에 방황하며 팍팍한 삶을 이어가던 자넷은 어느 날 아들을 산불현장에 데려간다. 엄청난 굉음을 울리며 순식간에 나무와 숲을 집어삼키며 번져가는 산불을 떨리는 눈동자로 지켜보는 조.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한 가정이 산불이 번지 듯 순식간에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어리고 힘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무력감이 뒤섞여 조의 눈동자는 심하게 요동친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은 '조'였을 것이고 앞으로도 '조'로 살아갈 것이다. 그의 표정과 눈동자는 바로의 우리의 모습이다. 그것은 가정의 불화를 바라볼 때 일수도 있고 자신의 커리어에 닥친 엄청난 실패를 받아들여야 할 때 일수도 있으며 큰돈을 잃었거나 믿었던 사람으로 배신을 당했을 때 일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조는 사진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사진관 주인은 조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여기 오는 건 좋은 일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란다.
행복한 순간들을 영원히 보려고.
그걸 돕는 게 우리야
요즘처럼 SNS의 홍수 속에 우리는 딱히 관심도 없는 타인의 행복한 순간에 과다 노출되어 살아가기에 피로감이 몰려온다. 하지만 1960년대에 사람들이 사진관을 찾는다는 것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장 행복한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의미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너무도 거칠기에 행복한 순간은 너무도 짧다. 또한 어떤 사람이든 겉으로는 화려하고 행복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 삶의 이면에는 감추고 싶은 상처와 그늘, 남루함이 반드시 존재한다. 산불이 자연을 집어삼키는 것만이 와일드라이프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거친 삶이 와일드라이프, 그 자체인 것이다.
물질과 욕망에 휘둘리고 인내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어리석은 어른들을 바라보며 14살에 폭삭 성숙해져 버린 우리의 주인공 조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불안과 두려움과 분노에 떨면서도 우리의 삶을 하루하루 묵묵히 견뎌내는 일이라는 것...
산불이 첫눈으로 인해 진화되듯 자연이 일으킨 문제는 자연으로 인해 해결이 된다. 조는 거친 인생 속 불 같은 위기와 분노, 증오를 인내와 지혜로 견뎌낸다. 거센 산불도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고 죽을 만큼 괴로운 인생의 위기도 지나가기 마련이다. 서로에 대한 끝없는 미움과 원망만 가득했던 제리와 자넷, 두 사람이 세월이 흘러 사진관의 카메라를 앞에 두고 다시 평화롭게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처럼...
• 12월 25일 개봉 예정
• 시사회에 초대해주신 영화온라인마케팅사 포디엄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