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존그레이
2020년 3월, 바야흐로 코로나시대다. 쉽사리 끝이 보일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확진자수와 사망률이 낮아지고 안정되는 듯 하자 미국과 유럽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유가는 요동치고 전 세계 주식시장은 연일 폭락하고 있다. 외출 시 가방에 마스크와 손소독제, 항균 물티슈 등을 챙기는 일은 습관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코로나 관련 뉴스가 너무도 지겨워 이제는 그만 보고 싶지만 개미지옥처럼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자꾸만 더 스마트폰을 들게 된다.
카페에 가서 불편한 의자에 엉덩이를 좀 붙이고 있어야 그나마 없는 밑천이라도 끌어모아 글이 써지는 필자이지만 카페 죽순이를 포기한 지 오래다. 쓰고 싶은 소재들이 따로 있었지만 요즈음은 도대체 코로나 이외의 다른 주제에 집중이 되지를 않는다.
인간의 두려움은 무지에서 온다. 우리는 이 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치료제도 백신도 없다. 소리 소문 없이 엄청난 전파력을 발휘하는 이 희한한 질병에 온 세계인들이 벌벌 떨고 있다.
최근 코로나의 기세가 변곡점을 지나 안정세에 접어든 중국의 몇몇 지역 혼인 등기소에서는 늘어나는 이혼신청건수에 놀라고 있다고 한다.
위의 기사에 따르면, 산시성의 수도 시안의 베이린구 혼인등기소에서 일하는 왕모씨는 "많은 부부들이 한 달 이상 집에서 둘만 마주하고 지내다 보니 충동적으로 이혼율이 급증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아무리 평상시에 금슬 좋은 부부와 화목한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외부와 단절된 채 답답한 집안에서 가족끼리만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사소한 일에도 서로 부딪히는 일이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은, 지금 '잠시 멈춤', '사회적 거리두기'를 매우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라면 누구나 십분 공감할 것이다. 집에서 삼시 세 끼를 무엇을 해 먹을까, 오늘 하루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들과 무엇을 하며 어떻게 보낼까,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부부가 어떻게 하면 부딪히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하며 살고 있다.
가족들과 맛집에서 외식하는 즐거움, 연인과의 달콤한 영화관 데이트, 마음 맞는 친구들과의 즐거운 수다타임, 휴가를 위한 여행 계획 짜기, 헬스클럽에서 땀 흘리며 운동하기 등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이 너무나도 그립지만 이 모든 일들은 멈추어 버렸다. 소소한 일상이 그렇게나 큰 즐거운 일이었는지 이제야 깨달으며 코로나 블루(우울증)가 우리의 가슴속에 스멀스멀 태동하기 시작했다. 요즈음 아이 엄마들의 몇 안 되는 낙 중의 하나는 친구들과의 채팅이다. 각자의 근황과 코로나 관련 뉴스와 정보 등을 나누며 SNS로나마 이야기를 나누며 켜켜이 쌓인 수다의 욕망을 분출한다.
최근 한 친구가 SNS로 전한 이야기다. 교육특구에 살고 있는 친구는 명석한 초등학생 딸내미 교육에 올인하는 전업주부 알파맘이다. 아이의 빡빡한 스케줄에 맞추어 그녀의 일상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그녀의 남편은 대기업 건설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지방 현장 파견으로 인해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었다. 딸내미가 새 학기 영어학원 레벨테스트에서 최상위반 배정을 받은 기쁨과 자부심을 만끽하 겨를도 없이 코로나가 들이닥쳐 모녀 둘이서 집콕 생활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 집에 돌아온 남편이 회식을 하고 왔다는 말을 듣고 크게 싸웠다고 한다. 이런 시국에 어린 딸 생각도 않고 그렇게 마음 편하게 밀집된 공간에서 여러 사람과 회식을 했다는 게 너무나 이해가 안 가고 서운했다는 것이다. 좀처럼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겠다면 소신을 갖고 있던 그녀는 그날 딸아이 앞에서 크게 싸웠고 남편에게 "당신한테 오만정이 다 떨어졌어. 오늘은 당신이랑 같은 집에서 잘 수 없으니 어디든 나가서 자!"라고 했단다. 그렇게 친구의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차에서 새우잠을 잔 뒤 다시 현장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며칠 전 대치동의 두 자녀의 아버지인 한 남성이 구로콜센터와 같은 빌딩에 사무실이 있었던 관계로 코로나 확진이 되어 대치동 일대가 발칵 뒤집혔었다. 다행히 아내와 두 자녀는 음성 판정이 났지만 같은 날 저녁에 '당구장-주점-당구장-주점'을 다닌 아빠의 동선을 두고 사람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코로나시대에도 직장에 나가야 하고 사업을 해야 하는 아빠들은 요즈음 이렇게 고충을 토로한다고 한다.
코로나는 안 무서운데
내 동선 공개되는 게 더 무서워...
가장으로 아빠로 산다는 것, 그것은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한 가정의 리더로서 늘 강한 모습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고 하기 싫고 치사한 일들도 어찌 됐든 해내야 하는 무거운 어깨를 감당해내야 하는 일이다. 아내들 또한 그 부담과 고충을 잘 알고 있지만 남편 앞에선 웬일인지 말과 행동이 '아름답게' 나오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남편보다는 자녀의 교욱과 건강에 더 마음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남편에게 더 미안하고 짠하며 안쓰럽지만 왠지 지친 남편의 어깨와 마음을 어루만지고 사랑을 표현하는 일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남녀를 이해하기 위한 바이블인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보면 남자는 목표지향적이며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고 여자는 관계지향적이고 남자를 변화시키려는 속성이 있어서 갈등이 발생한다고 한다. 여성의 경우, 남성을 '자기화'하려고 하는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자신이 원하고 자신에게 맞는 남자로 바꾸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 남성의 경우, 목표지향적이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혼자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혼자 동굴로 들어간다. 여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보채고 남자를 동굴 밖으로 끄집어내려 하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다.
알파맘 친구는 남편도 자기처럼 아이 교육에 올인하고 전적으로 협조하는 알파대디이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속에 아빠들이 처해있는 현실은 아내들의 예상보다 복잡다단하고 고단한 것일 수도 있기에 아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남자는 아마도 좀처럼 찾기 힘들 것이다. 아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남편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엄마만큼 자녀에게 헌신하고 배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빠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다. 국민 모두 사회적 거리두기를 자율적으로 지켜야 하고 불필요한 사모임은 갖지 말아야 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을 피치 못할 사유 또한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의 삼시 세 끼를 챙기고 집안일을 하느라 지치고 힘든 엄마들만큼이나 코로나 시대에 아빠로 살아가는 일 또한 맥주 한잔의 작은 여유조차도 거센 비난의 화살을 감당해야만 하는 삭막하고 쓸쓸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내는 남편을 바꾸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일, 남편은 자신의 일을 대하는 것처럼 아내의 일상과 고충을 세심하게 경청하는 일.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너무도 힘든 이 일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부부들에게 늘 마치지 못한 찜찜한 숙제일런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