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시대, 그래도 희망에는 날개가 있어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김연수

by Minimum

딸아이가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던 요 근래 몇 달 동안, 남편이 출장을 가면 나와 딸은 둘이서 한 침대에서 자곤 했다. 코로나 덕분에(?) 평상시라면 바빠서 함께 할 시간이 없을 고등학생 딸과 두런두런 오붓한 수다타임을 갖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밤이 되면 바쁜 낮에는 나눌 수 없었던 진지한 이야기들이 꽃을 피운다. 사회이슈에 대한 생각도 나누고, 딸의 진로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고, 영화나 책, 요즘 잘 듣는 음악에 대한 감상도 나눈다. 그러다 보면 2시간이고 3시간이고 후딱 지나가 버린다.

어느 날 밤, 딸이 나보고 엄마의 장점들을 이야기해보란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그냥 자꾸 말해보라고 재촉한다. 마지못해 생각나는 몇 가지를 하나씩 말해보는데 자꾸자꾸 더더 말하라고 보챈다. 말하다 보니 생각보다 제법 말할 꺼리가 있음을 깨닫는다.

"음식을 제법 잘하는 편인데 특히 국이나 찌개를 맛있게 끓이고, 주위 사람들과 큰 마찰 없이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고, 독서와 글쓰기,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고, 미적 감각과 유머 감각이 없지는 않은 것 같고, 가끔은 아니 자주 주변 사람들한테 성격에 대해 칭찬도 듣는 것도 같고, 규칙적인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강관리를 잘하는 편이고..."

대단한 것들은 아니지만 사소한 것들이나마 하나씩 끄집어내어 말을 하다 보니 유치하고 단순하게도 조금씩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딸아이는 코로나 시대 최대의 피해자 중 한 명인 ‘저주받은 고3’이다. 딸의 입시에 대한 걱정, 최근 집콕 생활에서 오는 우울과 깊은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의 상태를 딸은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난 엄마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엄마 자신이 꼭 알았으면 좋겠어. You're amazing!!"

세상에... 어렸을 때부터 그래 왔지만 딸아이는 늘 내가 힘들어 넘어졌을 때면 손을 내밀어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어떨 땐 말없이 따뜻한 포옹과 토닥거림으로, 어떨 땐 법륜스님보다도 현명한 말과 글들로...

너무나도 글을 쓰고 싶었지만 몇 달 동안 깊은 슬럼프에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유약한 도자기 영혼은 포악한 현실 속에 조금씩 실금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2005년을 기점으로 너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졌지. 그럼에도 네가 영원히 내 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안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네가 나왔다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경험인지 네게 말하고 싶지만, 너를 바라볼 눈동자가 내게는 없네. 너를 안고 싶으나, 두 팔이 없네. 두 팔이 없으니 포옹도 없고, 입술이 없으니 키스도 없고, 눈동자가 없으니 빛도 없네. 포옹도, 키스도, 빛도 없으니, 슬퍼라. 여긴 사랑이 없는 곳이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유명한 이 문장으로 인해 누군가는 이 작품이 연인의 절절한 사랑이야기일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17살의 나이에 딸을 낳고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엄마 지은과 미국에 입양되어 27살이 되어 한국에 돌아와 엄마의 흔적을 찾는 딸 카밀라(희재)의 이야기이다. 친모의 사진 한 장을 묻어버리지 않고 그녀의 존재와 죽음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딸 카밀라는 끝까지 사력을 다한다. 친모 지은의 고향 진남의 깊은 바닷속에서 엄마와 딸은 기적처럼 다시 만나게 된다. 위의 글은 자신이 죽은 지 27년 뒤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진 딸을 만난 지은이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한 사랑하는 딸에게 전하는 말이다.



작가 김연수는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깊고 어둡고 서늘한 심연이다. 살아오면서 여러 번 그 심연 앞에서 주춤거렸다. 심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다."
(중략)
가끔. 설명하기 곤란하지만 나의 말들이 심연을 건너 당신에게 가닿는 경우가 있다. 소설가는 그런 식으로 신비를 체험한다.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을 때. 어둠 속에서 포옹할 때. 두 개의 빛이 만나 하나의 빛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듯이.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심연을 건너가는 것, 우리가 두 손을 맞잡거나 포옹하는 것. 혹은 당신이 내 소설을 읽는 것. 심연 속으로 떨어진 내 말들에 귀 기울이는 것.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


작가가 소설에 쓰지 않았으나 독자가 꼭 읽었으면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카밀라의 진짜 아빠가 누구일까? 지은을 자살할 수밖에 없게 만든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두 모녀의 이 세상에서 못다 한 절절한 사랑? 수능시험 주제 찾기 문제처럼 풀기가 쉽지 않다.

김연수 작가는 대학생 때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어느 집에 걸려있는 빨래를 보고 소설가가 될 결심을 했다고 한다.


'저 옷을 입었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저 옷을 입고 무슨 일을 했고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그런 호기심에서 시작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삶에 한 발짝 다가서는 일이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를 관찰하고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 사람의 진짜 모습, 진짜 성격, 진짜 마음을 알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돌아가는 세상을 통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늘 실패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의 삶을 읽고 쓰고 들여다보는 노력을 결코 게을리하면 안 된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여러 갈래로 흐르던 강들이 하나의 바다에 모이듯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진실에 닿을 수 있을 거라고... 나와 너 사이의 심연은 깊이를 알 수는 없을 만큼 깊지만 희망에는 날개가 있어서 언젠가 심연을 건너 진심이 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딸아이와 나의 사이가 아무리 가깝고 허물없는 사이라고 할지언정 서로의 진짜 알맹이가 무엇인지는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딸아이와 나의 차이점은 딸아이는 늘 나의 진심에 다가가려 노력했다는 것이고 껍데기만 어른인 나는 전혀 그런 노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아이가 명문대학을 갔으면 좋겠어.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입시에 차질이 생기면 어쩌지?' 내가 이따위 얄팍한 생각으로 딸과 내 자신을 괴롭힐 때 딸아이는 ‘엄마가 정말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더 엄마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어.'라고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도 남들의 시선과 허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딸아이는 희망의 날개를 단 천사처럼 깊은 심연을 건너 내 안의 깊은 영혼에 날아와 앉으려 날갯짓을 한다. 심연에 떨어져 없어져버리고 싶어질 만큼 부끄럽고 한편 뭉클하다. 기어이 딸아이는 몇 달을 손 놓고 있던 노트북에 이렇게 손을 올려놓게 만든다. 우리에게는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타인에게 가닿는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결코 멈추면 안 된다.

내일 아침이면 천치처럼 오늘의 깨달음은 다 잊어버린 채 어제와 변함없는 그저 그런 ‘속물’로 살아가겠지만 그 표정과 생각만큼은 조금은 덜 흉측해졌기를, 조금 더 온화해졌기를 바라본다. 묵묵히 타인과 세상을 향해 애정을 갖고 다가가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꿈꾸던 순간이 기적처럼 우리 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시공간을 초월해 깊은 바닷속에서 17살의 엄마 지은과 27살의 딸 카밀라가 만났던 것처럼, 딸아이의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이 깊은 심연에서 나를 건져 올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