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여행은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꼬였다. 내 캐리어가 아무리 기다려도 도착하지를 않았다. 일행들은 한쪽에 모여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체되면 다음 일정이 밀리거나 취소될 수도 있었으니, 그들의 다소 언짢은 표정도 이해할 법했다. 나는 수하물이 나오는 곳만 애타게 보고 있었다. 캐리어가 없다면 갈아입을 속옷 한 장 없이 10일간 유럽 방방곡곡을 돌아다녀야 할 판이었다. 파리, 로마, 피렌체, 베니스 등. 각국을 이동하는 동안 캐리어를 제때 받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누구에게 화를 낼 수가 있었을까. 말도 안 통하는 이국땅에서 낯선 이들에게 따지고 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가이드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다행히 여권과 지갑은 수중에 있었고 옷은 아버지에게 빌리면 어찌어찌 버틸 수 있을 듯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하기보다는 이 여행을 즐기는 게 더 중요했다. 나는 버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치는 풍경마저 아쉽게 느껴질 만큼 들떠있었다.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미(美)를 품고 있는 두오모성당과 형형색색의 건물 사이를 유영하는 곤돌라, 사진으로만 보던 에펠탑과 개선문까지. 직접 눈으로 보는 유럽의 풍경들은 가슴이 벅찰 정도로 아름다웠고,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가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살면서 처음 본 유럽의 풍경은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났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아버지였다. 그는 가이드보다도 앞장서서 걷다가 수많은 인파 속에서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자꾸만 곁눈질을 해야 했는데, 잠깐 눈을 떼기만 하면 아버지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러다가 아버지가 국제 미아가 되는 건 아닐까. 마치 다섯 살 된 아이를 둔 부모 심정이었다. 나는 여행 내내 일행들에게 "네 아버지 어디 있니"라는 질문을 들었다. 그게 정말 궁금한 사람은 나였다. 아버지가 어디로 사라지는지, 대체 왜 그러는지.
아버지의 기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천체 안의 천체(지구본 모양의 전시물)를 돌리다가 경비에게 주의를 받질 않나,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난데없이 달려 나가지를 않나. 박물관 안에서 갑자기 사라지질 않나. 그의 모든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자꾸만 다른 사람을 챙기려고 한다는 거였다. 그분은 나이가 지긋이 드신 어르신이었다. 평생을 교편을 잡고 살아오신 분이었고, 정년을 기념하여 자식들이 보내준 여행이었다. 언뜻 보면 해외여행을 보내줄 만큼 각별한 부자 사이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사진 한 장 찍을 줄도 모르셨고, 가이드를 쫓아가기에도 체력적으로 벅찼고,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도 못해서 자꾸만 겉돌기만 하셨다. 그 어르신은 로밍도 되어있지 않아서 전화를 걸 수 없었는데, 자꾸만 뒤처져서 몇 번이나 빠트리고 갈 뻔했다. 아버지는 본인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그 어르신을 여행 내내 모시고 다녔고, 심지어 어르신이 길을 잃자 낯선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결국 어르신을 찾아왔다. 일행들에게는 박수를 받았지만,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싫었다.
언제 또 유럽에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다시는 안 볼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냐. 본인도 그렇게 오고 싶었던 여행이면서, 왜 가이드가 할 일까지 맡아가면서 오지랖을 부리냐. 대체 왜 자꾸 단독행동을 하는 거며, 내 속을 뒤집어놓느냐. 그런 얘기로 자꾸만 다투었다. 어르신은 이런 내 마음도 눈치채지 못하고, 이른 새벽부터 방문을 두드리곤 했다. 일찍 잠이 깨서 적적하다는 이유였다. 이만 들어가시라는 눈치를 주는데도, 방 안에서 꿈쩍하지 않는 어르신을 보고 괜히 아버지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 점이 발단이 되어 여러 번 다투었다. 한 번은 젤라또 가게에서 자꾸만 잔돈을 바꿔오라는 아버지의 말에, 나도 말이 안 통하는데 왜 나한테 그러느냐고 화를 냈다. 이때는 이미 참을성이 바닥난 상태였다. 하지만 아버지도 상당히 집요한 편이라서 내게 짜증을 냈고, 나는 그동안 꾹꾹 참아왔던 설움이 복받쳐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돈을 거슬러 오라는 이유도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져야겠다는 거였다. 나는 트레비 분수 주변을 울먹거리며 돌면서, 다시는 아버지와 여행을 오나 봐라 하면서 이를 갈았다.
십 년이 지나고 돌이켜봐도 어이가 없다. 그때를 생각하면 온통 이해되지 않는 일들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서 기억에 남는 건 온통 아버지와 관련된 일화뿐이다. 아무리 대단한 건축물이나 예술품이어도 결국 시간이 지나니 잘 떠오르고, 그때의 고양감으로 더 이상 벅차오르지도 않는다. 다만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만은 작은 것 하나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마치 얼마 전까지 함께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이다. 어떤 기억은 잊히지 않을 것 같다가도 서서히 마모되지만, 어떤 기억은 잊고 살다가도 어느새 나를 한 때의 한 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아버지의 여행이 그랬다. 다소 말썽이 있긴 했지만, 그래서 더 잊을 수 없는 추억. 그때의 순간들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서, 살다가 지칠 때 한 번쯤 피식하고 웃게 해 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