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층은 여전했다. 그들은 어지간해선 변할 사람들이 아니었으므로. 나도 죄의식 같은 걸 느낄 필요가 없었다. 세상엔 똑같이 당해보기 전에는 잘못을 인지하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있다. 위층 것들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었다면 집에서 톱질 따위는 하지 않았겠지. 위층에서 처음 톱질 소리가 들렸을 땐 인테리어 공사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수개월째 인테리어를 한다는 것도, 밤늦게 공사를 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온갖 소리가 너무도 생생하게 들렸다. 날카로운 톱날에 목재가 갈리고, 잘려나간 목재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억센 나무 결에 톱날을 거칠게 밀어 넣는 소리. 나무를 들고 가다가 떨어트리는 소리. 그런 소음이 몇 시간씩 계속됐다. 집이 아니라 공방쯤으로 생각하는 걸까. 그 짓거리를 하면서도 아래층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저녁 내내 그 소리에 시달리다가 잠이 들면 불길한 꿈을 꾸곤 했다. 천장이 무너져서 날카로운 톱과 수십 개의 못이 쏟아져내리는 꿈. 어째선지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꿈속에서 얼굴 위로 쏟아지는 물건들을 응시한다. 물건들은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떨어지고, 떨어지는 물건들 사이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인다. 어두워서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어디선가 본 듯하다. 그 얼굴을 떠올리다가 잠에서 깬다.
전화벨이 울렸다. 한윤서. 그녀에게 온 전화였다. 방문 전에 확인차 연락드렸다며 오늘은 어땠는지 물었다. 나는 여전하다고 답했다. 당장이라도 도움받고 싶을 정도라고. 빨리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그 말에, 윤서는 스스로를 잘 보살피는 게 먼저라고 답했다. 당분간은 집에 있는 시간을 줄이고 밖에서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너무 화내지도, 너무 참지도 말라고. 지금부터는 마라톤 뛰듯이 긴 호흡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윤서는 꽤나 진지하게 당부를 늘어놓았다. 결국 호흡이 달리는 쪽이 먼저 쓰러진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하는 게 이 일이다. 고객님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끝까지 갈 수 있다. 마음이 약해져서 저희 탓을 하는 분들도 많다. 왜 아직도 해결되지 않느냐고, 정말 효과가 있는 거냐고, 더 심해지지 않았냐고 따지신다. "그렇게 쉽게 해결될 거면 저희에게 맡길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윤서는 이 일이 원래 이렇게 징글징글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주의를 줄 뿐이지만 상대는 선전포고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게 잘 이해되지 않겠지만, 상대방도 살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여긴다. '그쪽이 예민해서 그러는 건데 왜 저희한테 뭐라 하느냐. 이 정도도 이해 못 해주면서 어떻게 공동생활을 하느냐.' 그 사람들이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라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 가끔씩은 본인들이 원인 제공을 했으면서도, 보복 소음이 시끄럽다고 의뢰가 오는 경우도 있다.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은 이들의 인식 자체를 바꾸어놓는 거다. 그래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이 점을 고객님들이 이해해 주셔야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다. 나는 그 말이 '재촉하지 마라'로 들렸다.
잠깐의 침묵 끝에 윤서가 말을 이어나갔다. 내일 상황을 보고 최대한 도와드리겠다. 고객님이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심기가 거슬렸던 것도 금방 잊고 그 뻔한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어차피 이제는 윤서를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천장에 비친 그림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무래도 깊게 잠들기 어려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