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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철 Sep 13. 2020

검찰청에서 걸려온 전화

친구에게 전해들은 보이스피싱 피해


D는 채팅방에 한 기사를 공유했다. '보이스피싱에 시달리던 20대 취준생, 결국 목숨을 끊다' 작위적이지 않음에도 자극적인 헤드 카피에서 기자의 노련함이 엿보였다. 호기심을 끄는 동시에 20대 중후반의 취준생 혹은 사회초년생, 그들의 부모까지 정확 겨냥한 제목이었다. 보이스피싱의 주대상인 20대에게 전하는 경고의 메시지까지 담고 있으니 기사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제목을 보고 불쾌하고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을. 왜 그 제목이 가해 수법의 악랄함보다 피해자의 경솔함과 나약함을 겨냥하고 있다고 느꼈을까.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는 자신을 서울지방검찰청 소속의 김 검사라고 소개했다. 자칭 김 검사는 청년의 통장이 불법 거래에 이용되고 있다며 물꼬를 텄다. "당신의 통장에서 수백만 원 가량의 금액이 오간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 사건에 가담했는지 확인하겠다"는 말로 김 검사는 미끼를 던졌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거나 통화를 중단할 시 처벌될 거란 경고도 뒤따랐다. 2년 이하의 징역 및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과 지명수배령. 전화 한 번 끊는 것치곤 너무도 가혹한 처사이며 황당한 협박이었다.


김 검사는 재빠르고 치밀했으며, 끈질겼다. 그는 청년이 당황한 틈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녹취를 해야하니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동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계획이 실패할 만한 요소의 개입을 막는 동시에, 청년 스스로 막다른 곳에 몰렸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하려는 장치였다.

 

건 낚싯대가 아닌 그물의 방식이 아닌가. 확실히 김 검사의 수법은 유인보다는 몰이에 가까운 행태였다. 숙련된 몰이꾼은 순창에서 여의도까지 무려 11시간 동안 청년을 몰아붙였고, 이동하는 중에 배터리 잔량을 충전하도록 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정말이지 미끼는 없고 올가미만 서늘한 수법이었다.


청년은 왜 11시간이나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을까. 송장이나 출두 명령 없이 전화로만 이루어지는 수사나 돈을 인출하라는 지시는 어떻게 봐도 허무맹랑하지 않은가. 징역과 벌금이라는 협박에도 11시간은 그러한 허점들을 발견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청년이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그가 내건 미끼 탓이었다. 사실 미끼는 존재했다. 그건 사면이었다. 청년이 징역형을 면하는 방법은 그의 지시를 따르는 것뿐이니 의심스러움을 떠나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궁지에 몰린 사람만큼 구원이 필요한 사람은 없고, 구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믿음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


전화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끊어졌다. 범인 일당을 추적하기 위해서 단말기를 14분간 꺼둬야 한다는, 그의 지시에 따른 행동이었다. 그러나 청년이 다시 전원을 켰을 땐 부재중 전화 3통이 겨있었다.


다시 걸려온 전화는 너무도 충격스러웠다. 김 검사는 청년이 지시를 제대로 듣지 않고 단말기를 종료한 탓에 지금까지 쫓던 범인 일당을 놓쳤으며, 그 잘못으로 인해 청년 또한 곧 구속될 거란 얘기를 끝으로 통화를 종료한 것이다. 러나 애초부터 금융사기단은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였다.


그로부터 이틀 후 청년은 조만간 구속될 거란 심리적 압박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본인을 진정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였다. 청년이 남긴 것은 유서 한 통과 휴대폰에 남은 수신 기록뿐이었다. 그의 유서에는 김 검사의 지시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이유와 가족들에게 남기는 짤막한 인사, 그리고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당부의 말이 적혀있었다. 마지막으로 김 검사의 지시에 따라 마포의 한 주민센터 보관함에 넣어 둔 소지품에 대한 언급도 포함되었다. 확인 결과 피해 금액은 430만원으로 밝혀졌다.




7,830만원. D는 한층 진화된 수법에 당했다고 했다. 한층 진화된 수법 때문일까. 그만큼 피해액은 훨씬 컸다. 취업한 지 2년이 채 안 된 20대가 저축한 액수치고는 상당했다. 한 달에 얼마를 저축하면 벌 수 있는 금액일까. 나는 위로보다 계산이 빨랐다. 가 한 달에 저축할 수 있는 돈과 그 돈을 모으기 위해 걸릴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누가 비정하다고 하겠는가. 사회초년생에게, 그것도 최저시급 인생에게 8,000만원은 비정함마저도 정당화시키는 액수 아닌가.'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내게 8,000만원은 큰돈이었다.


D는 피해사실을 알리며 우리에게 보이스피싱을 경고했다. "너희도 조심하고 주위에 공유해줘." 큰돈을 잃은 것치곤 너무나 덤한 표현이었다. 적어도 한바탕 욕이라도 쏟아내야할 것 아닌가. 나는 어쩌면 좀 더 망가진 D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8,000만원을 한순간에 날린 인간의 얼굴은 적어도 내가 한번도 지은 적 없는 불행한 표정으로 일그러져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야 속이라도 편할 것 같았다. 정작 돈을 잃은 건 D인데 왜 내 속이 쓰린 걸까. 그 돈은 잃어본 적도, 가져본 적도 없는 돈 아닌가. 나는 친구의 불행까지도 질투할만큼, 돈앞에서 자격지심과 시기로 가득 찬 인간이었다.

 

나는 그런 심술을 부리면서도, D가 아무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D는 자세한 얘기를 피하는 듯했다. 이해할만 했다. 감정을 드러내고 억울함을 호소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는 데다가, '왜'라는 질문만 날아들 게 뻔했다. 그럴 일은 안 만드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왜 의심하지 못했지?', '왜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지?', '왜 그런 큰돈을 넘겨준 거지?'하는 식의 질문, 본인도 수없이 자책하며 되물었던 질문들 대해 해명하듯 대답해야 하니까. 그만큼 '왜'라는 질문은 잔인한 면이 있다. 그 말은 때때로 피해자를 추궁하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보이스피싱에 시달리던 20대 취준생, 결국 목숨을 끊다'라는 헤드카피에서 불쾌함을 느낀 이유는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굳이 '청년'이 아니라 '취준생'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사회경험 없는 20대의 어리숙함을 탓하려는  아니었을까. 어쩌면 청년의 죽음은 기삿거리로만 다뤄질 뿐이고 조회수만 뽑을 수 있다면 어떤 제목이든 상관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연 나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비정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들이, D와 대화를 마친 이후에도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진출처: https://pixabay.com/ko/users/free-photos-242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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