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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철 Jul 22. 2022

제게 저주를 걸어주세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쓰기에 대한 망상

달이 서슬 퍼렇게 빛나는 밤. 검은 천으로 몸을 덮은 노파가 내게 찾아왔다. 겉으로 보이는 건 백발에 큰 코, 주름이 깊은 얼굴뿐이다. 입술 사이로 보이는 검은 치아가 섬뜩하다.


"제게 저주를 걸어주세요."


내 말이 끝나자 노파의 몸을 감싼 천이 노파의 얼굴까지 뒤덮어버린다.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거칠게 요동치는 검은 천. 이내 잠잠해진 천의 틈새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래, 네 소원대로 되었다."




나는 가끔 쓰잘데기 없는 상상을 한다. N(mbti)의 숙명이랄까. 평생 글 쓰는 저주에 걸리면 어떨까 하는 망상이다. 하루 절반을 책상에 앉아 써야 하고, 일어서는 순간 거센 채찍이 날아온다. 펜을 놓으면 장미덩굴이 책상 밑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펜과 손가락을 하나로 묶어버린다. 눈꺼풀이 감길 것만 같으면 얼음물이 정수리로 쏟아진다. 그야말로 글 고문이다. 나는 그러한 고문을 10년째 버티고 나서야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다. 그때의 내 글은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아니면 게임에 '자동 사냥'이 있는 것처럼 인생에 '자동 글쓰기'가 있으면 어떨까. 저절로 글이 써지고 뇌는 무언가를 자꾸만 생각해내고.


'글 써야지' 생각만 하다가 끝내 못 쓰고 하루가 지나면 떠올리는 망상들이다. 나는 왜 매일 쓰는 사람이 못 될까. '찐 광기'라고도 불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루 루틴을 단 일주일만이라도 따라 하고 싶지만, 내 게으름은 그걸 용납을 못한다. 그러니 곧 깨져버릴 다짐을 수십, 수백 번 하는 수밖에... 나란 인간은 10번 계획해야 두세 번 할 사람이니, 적어도 100번은 계획해야겠다.


매일같이 쓰자. 내게 주어진 일이 오로지 이것밖에 남지 않은 사람처럼 매달리자. 아무도 오지 않는 등대에 갇혀 펜과 종이만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살자. 지독한 사랑에 곪아버린 사람처럼 집착하자. 말라버린 잉크 같은 뇌를 쪽 짜내서 글 한 자를 끄적이자.


... 저 말고도 이런 생각 하신 분 계신가요?ㅎㅎ


내일도 무조건 글 한편 쓰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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