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민철 Oct 04. 2022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면

수업을 마치고 막 자취방에 돌아왔을 때였다.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수업에 방해될까 봐 웬만한 일은 문자로 대신하던 어머니였기에, 전화를 받기 전부터 불안한 기운에 휩싸였다.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 이유도 말하지 않고 대뜸 집으로 내려올 수 있냐는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알겠다고 했다. 어떠한 암시도 없이 누군가의 죽음을 확신했다. 순간적으로 아버지와 누나를 떠올렸다. "할머니 돌아가셨어." 그 말에 안도했다. 안도라니. 할머니의 죽음에 그렇게 태연해서는 안 됐다.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잠깐 한숨을 돌리는 당신의 부고에 그렇게 냉정하게 굴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슬픔보다는 안도감과 죽음을 저울질하는 내 모습에 혐오감만 들뿐이었다.

버스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서 그날의 아침을 떠올렸다. 마침 어머니가 할머니를 뵈러 가시기로 한 날이었다. 생전 바라는 것 하나 없으시던 할머니가 웬일로 김치냉장고를 사달라고 하셔서, 배송받을 겸 가기로 하신 거였다. 나는 학교에 가려고 현관을 나서는 중이었고 어머니는 뉴스를 보고 계셨다. 뉴스는 잘 안 보시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그러셨다. 마침 故김영애 님의 사망이 방영되고 있었다. '엄마, 할머니한테 한번 연락해봐'라는 말이 맴돌다가, 어차피 이따 가실 거라는 생각에 그만두고 말았다. 그날 그 말을 했다면 살아계셨을까. 나는 자꾸만 손을 세게 쥐었다.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하고 영영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너무도 죄스러웠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손. 매일같이 리어카를 끌고 다녀서, 굳은살이 배고 거칠어진 할머니손을 기억한다. 폐지나 공병 따위를 팔아다가 겨우 번 돈을 내 주머니에 욱여넣던, 노인답지 않은 손아귀로 내 손을 밀어내던 억척스러움과 따스함으로.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그 눈물마저 거짓된 것처럼 느껴져서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고 어느새 거의 흐느끼고 있었다. 할머니의 죽음에 안도한 주제에 이렇게 울어도 되는 건가. 슬픔보다는 죄스러움이 컸다. 어느 정도 진정하고 나서야 상복으로 갈아입고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가장 걱정되었던 어머니는 애써 괜찮은 표정으로 음식을 나르고 계셨는데, 그러다가도 몇 번이고 소리 높여 우셨다. 무력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 생긴 슬픔을 다독여주기에는, 내가 너무 어리고 부족해서 그저 함께 슬퍼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날 어머니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마음으로 가르치셨다.



장례식을 마치고 꽤 시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수업시간에 에세이를 발표해야 했고, 나는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말하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죄스러움에 대해 끝까지 말해야 할 것만 기분이 들었고,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신자처럼 한 음절 음절 울먹이며 이어나갔다.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고행이었을 게 분명했다. 교수님은 발표를 다 듣고 난 뒤에, 슬퍼도 슬프다고 해서는 안 되는 거라는 평을 남기셨다. 슬프더라도 그걸 감출 수 있어야 글이 되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글은 알지도 못하고, 만약 그렇게 써야만 글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다면 평생 글을 쓰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나는 슬펐다기보다는, 그저 그 억척스러운 손이 그리울 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 행성 이탈자의 고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