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면

by 신민철

수업을 마치고 자취방에 막 들어왔을 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나는 전화를 받기 전부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아침에 본가에서 나왔는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연락을 주시다니. 애초에 이 시간에 연락을 하시는 분도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왜 전화했냐고 묻기 전부터 목 안쪽이 조여 오는 듯했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잠깐의 침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 직감적으로 예상했다.

"지금 뭐 하니?"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였다. 이유도 말하지 않고 대뜸 집으로 내려올 수 있냐는 말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이유를 묻지 못했다. 다만 머릿속에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뿐이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사람은 아버지와 누나였다. 심장은 빠르게 뛰고 손끝이 차가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대화가 잠시 끊겼다. 나는 한숨을 내쉬지 못하고 길게 들이마셨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진정되는 걸 느꼈다. 그제야 깨달았다. 슬픔보다 먼저 찾아온 건 안도(安堵)였다. 내게 조금 멀어진 죽음이라고 이렇게 냉정하게 굴다니. 죄스러웠지만, 그게 당신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 내게 혐오감을 느꼈다. 하지만 너무나 익숙하게 해야 할 일을 했다. 버스를 예매하고, 룸메이트에게 부고를 전하고, 교수에게 출석 처리와 관련해서 문자까지 남겼다. 그제야 잠시 숨을 돌리며,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나는 학교에 가려고 현관을 나서고 있었고 어머니는 뉴스를 보고 계셨다. 뉴스에서는 故김영애 님의 사망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에게 한 번 연락해 보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가 결국 말하지 않았다. 오늘은 어머니가 할머니댁에 가기로 한 날이었기에, 굳이 아침부터 연락드릴 이유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그때 그 말을 했다면 할머니가 살아계셨을까. 나는 자꾸만 손을 세게 쥐었다.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하고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죄스러웠다. 할머니의 손. 매일같이 리어카를 끌고 다녀서, 굳은살이 배고 거칠어진 할머니의 손을 기억한다. 폐지나 공병 따위를 팔아다가 번 돈을 내 주머니에 욱여넣던 손. 노인답지 않은 손아귀로 내 손을 밀어내던 억척스러움과 따스함을.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우는지도 알 수 없어서, 그 눈물마저 거짓처럼 느껴졌다. 멈추고 싶었다. 할머니의 죽음에 안도한 주제에 이렇게 울어도 되는 건가. 내가 역겨웠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마자 음식을 나르고 계신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는 조문객들을 맞이하다가도, 갑자기 오열하기를 반복했다. 무력감을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을 다독여주기에는, 내가 너무 어리고 약해서 함께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어머니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내게 마음으로 가르치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에세이로 써서 수업시간에 발표했다. 할머니의 죽음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 말했고, 말하면서도 눈물이 머무지 않았다. 창피했다. 하지만 끝까지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한 음절 한 음절 울먹이면서 발표를 이어나갔다. 말하는 사람만큼이나 듣는 사람도 힘들었을 게 분명했다. 교수님은 발표를 다 듣고 난 뒤에, 슬퍼도 슬퍼해서는 안 된다는 평을 남기셨다. 슬프더라도 그걸 감출 수 있어야 글이 되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글은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쓰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써야만 글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다면 평생 좋은 글은 쓰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고 이 글을 퇴고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다만 솔직했을 뿐이다. 고인의 죽음에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슬퍼했고, 고인을 잃은 슬픔보다 어머니의 슬픔이 더 와닿았고, 그러면서도 죄스러웠고 그리웠다. 어쩌면 이 글을 썼던 것도 애도의 한 방식이었는지 모르겠다. 이 글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끝까지 읽었던 날, 나는 고인에게 내 죄스러움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좋은 글'에 얼마나 가까워졌을지 잘 모르겠지만, 이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알게 모르게 할머니를 많이 그리워했다는 거, 그때는 사랑을 잘 몰랐을 뿐이라는 거.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사랑은 대상이 사라진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형태를 바꿔서 남게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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