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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철 Sep 02. 2022

어느 행성 이탈자의 고백

회사는 머나먼 행성 같았다. 삶의 궤도를 따라 묵묵히 공전하는 행성인들의 집합체. 중심 별의 인력만큼 강척력으로, 나는 그곳에서 쓸쓸히 떨어져 나왔다.


지구인들은 우주인만큼이나 신기다. 매일 아침잠에서 깨고, 앉을자리 없는 전철에 몸을 싣고, 직장상사의 히스테리를 감내하고, 비슷한 메뉴의 점심을 먹고, 술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어찌어찌 잘 버티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 나는 그들 틈에서 행성에서 행성으로 넘어갈 연료가 바닥나버렸다. 들으라고 내뱉는 선임의 한숨 소리나 "너희 똑바로 안 해?"를 버텨내기에는, 내 안의 소모가 너무나 컸으니까. 결국 두 번째 불시착한 행성에서도 3개월 만에 낙오해버렸다. 나는 직장생활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어딜 가도 적응하기 어려울 거라고. 떨어져 나오는 와중에도 그러한 자괴감을, 싸구려 기념품처럼 한 보따리 챙겨 들고 나왔다. 몇 개월간 재취업할 용기도, 다시금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낼 마음도, 잘 살아낼 수 있을 거란 희망도 모조리 꺾여있었다. 산소통 하나 매달고 광활한 우주에 내쳐진 기분이었다. 아주 많이 과장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어쨌든 비(非)행성인으로 살아가는 데도 돈이 드니까. 다시 구직사이트를 뒤적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이 서른에 벌어놓은 게 너무나 없었고, 그마저도 주식에 대부분 묶여버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미국의 금리 인상과 코인 시장의 폭락. 대외적인 문제가 개인의 삶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걸, 무분별한 투자 탓에 깨달았다. 따끔할 정도를 넘어서 쓰리게. 당장 생활비 걱정할 수준은 아니지만, 벌어놓은 돈을 지키려면 벌어야 했다. 

며칠 내내 구직사이트를 정처 없이 떠돌곤 했다. 목적도 없고 의지도 없이. 어떤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도 없는 상태였다.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가 수없이 많은 데도, 지원자격이 되는 일은 생각보다 적었고 하고 싶은 일을 찾기란 더욱 어려울 따름이었다. 왜 행성은 이렇게도 많은데 내가 구할 수 있는 입주권은 단 한 장도 남아있지 않을까.

퇴사한 지 세 달이 넘어가자 슬슬 위기감이 느껴졌다. 첫 직장을 그만둔 뒤에도 한 차례 공백기를 겪었던 탓이다. 퇴사 초기에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제는 무슨 일이든 상관없겠다는 심정이었다. 어느새 회사에 다시 다녀도 괜찮다는, 전 직장 대표들의 말에 흔들릴 정도로 비굴해져 있었다. 신세 지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내가 지인에게 일자리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할 만큼.

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내게 잔고는 얼마 안 남은 산소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숨이라도 쉴 수 있을 때 어디라도 발을 들이밀어야 하는데, 다시 또 튕겨져 나올까 봐 두려워서 내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돈을 벌 순 없을까. 이러한 고민을 갖고 있던 차에 우연히 프리랜서로 일할 기회가 생겼다. 안정적인 일은 아니었지만, 숨 돌릴 정도는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수없이 많은 걱정을 날마다 했다. 어디든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아서 결국 도망쳐 나온 내가, 행성 이탈자로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불안정한 벌이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표류에 가까운 이 여정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을 글로써 담고 싶었다. 얼마나 대책없이 살았고, 얼마나 불안한 시간을 보냈고, 얼마나 잘 살고 싶었는지. 나와 같은 행성이탈자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공감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내려갔다. 이들에게 이 글이 산소 한 줌이라도 되는 값어치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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