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민철 Nov 23. 2022

합정에서 망원, 홍대까지

sbi (서울북인스티튜트)



J님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합정이었다. 2개월간 독서모임을 함께 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 약간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혹시라도 늦을까 봐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정해진 시간보다 40분 정도 일찍 도착했는데, 마땅히 할 일도 없어서 오랜만에 sbi(서울북인스튜트)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곳은 내겐 나름의 의미가 있는 곳인데, 왜냐면 5년 전에 낙방의 쓴맛을 두 번이나 맛보았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출판편집자 모집 과정에 두 번 지원해서, 필기와 면접을 두 번씩 보러 왔으니 총 4번 다녀온 셈이다. 두 번째로 떨어진 직후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 어떻게 보면 내 삶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sbi로 걸어가는 길에 '만약 내가 편집자로 되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걷다 보니 그때 느꼈던 감정이 새삼 떠오르기도 했다. 은근한 기대감과 함께 불안감을 가지고 걸었던 길, 면접을 망친 뒤에 좌절감만 가득 안고 다시 역으로 향하던 길. 그 길을 다시 걸어오면서, 나는 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 가기로 했던 곳은 웨이팅이 너무 길어서, J님이 아는 우동 맛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색해질 것 같아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J님이 책과 작가님들에 대해 워낙 잘 알고 계신 덕분에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나는 올해 읽은 가장 좋았던 책으로 정여울 작가님의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를 뽑았고, J님은 김금희 작가님의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고르셨다. 이 책 덕분에 올해 너무나 많은 위로를 받았고 다른 책들까지 많이 읽을 수 있었다고 하셨는데, 나는 이 말을 듣고 책이 우리 삶에 갖는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J님께서 식사를 마치고 독립서점에 들르지 않겠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오랜만에 합정에 나온 김에 좋은 구경이 될 것 같아 선뜻 그러자고 대답했다. 마침 이 날 이슬아 작가님이 '책방 무사'의 일일점원으로 계신다고 하여 사인을 받으러 갈 계획까지 세웠다. 사실 이슬아 작가님의 글을 읽어보지 못해서 무작정 사인만 받으러 가는 게 맞나 싶었지만, J님께서 그래도 상관없다고 말해주신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후북스(좌)와 gaga77page(우)


그렇게 우리는 합정에서 망원의 독립서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책은 거의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하는 탓에 서점 갈 일이 별로 없던 지라, 오랜만의 책 구경이 꽤 반가웠다. 게다가 독립서점은 각각의 장소마다 저마다의 감성이 있어서, 그 분위기를 즐기는 재미도 있었다. 어떠한 책을 어떠한 위치에 진열해두었는지, 어떠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는지, 이 서점만의 특징은 무엇이 있는지, 책방 주인 또는 점원께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책 구경을 하면서 서점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곤 한다.


처음 방문한 곳은 이후북스였다. 책들이 잘 정돈되어있고 따스한 느낌을 받았다. 커튼 뒤편에서는 북토크도 진행한다고 하는데, 이곳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곳에서 이병률 시인의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와 최지혜 작가님의 <백수도 성공은 하고 싶지>라는 책을 샀다. 이병률 시인은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문장이 주는 울림이 좋아서 책 한 권쯤은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첫 번째 목차부터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책의 표지에서 느껴지는 까끌까끌한 질감이 마음에 들어서 바로 옆구리에 한 권을 끼고 서점을 돌았다. 최지혜 작가님의 책은 J님이 추천을 해주셨다. 글을 참 재밌게 쓰신다고 하셔서 그 자리에서 몇 문장을 읽어 내려갔는데, 마치 내 얘기 같은 문장들이 너무나 와닿아서 이 책도 구매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gaga77page다. J님이 가가북스라고 하셔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찾아보니까 풀네임이 따로 있었다. 내부도 넓고 앉아서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시간 보내기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쉽게도 이곳에서는 따로 책을 사진 않았다. 이미 책을 두 권 산 데다가, 이슬아 작가님의 책도 한 권 사야 했기 때문에 하는 수없이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이연 작가님의 <매일을 헤엄치는 법>과 강이슬 작가님의 책은 다음을 기약하며 구매 리스트에 올려두었다.


독립서점이 좋은 점은 내가 평소에 읽지 않을 법한 책들을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대형 서점에서도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판매와 구매'에 치중된 곳이라는 느낌이 세다. 책이 있는 공간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잘 안 들기 때문에, 서점에 들르기 전에 구매하고자 했던 책만 사거나 베스트셀러에 있는 책만 집곤 한다. 진열 방식 때문인지,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개인적인 느낌이 그렇다. 그런데 독립서점에서는 이상하게도 평소에 집어 들지 않던 책을 손에 들고 페이지를 넘기곤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책들이 내겐 그랬다.




독립서점 두 군데를 들른 후에 J님과 나는 버스를 타고 홍대에 있는 책방 무사로 향했다. 이곳은 요조님이 운영하시는 곳인데, 오래전에 즐겨 듣던 아티스트가 책방 서점으로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신기한 기분이었다. 나는 이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해서 들어서기부터 떨리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낯선 만남과 새로운 장소와 뜻밖의 경험이 이 장소에 있었다. 작가님의 글을 읽어봤든 안 읽어봤든, 이 순간만큼은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J님의 말이 맞았다.


이슬아작가님의 사인은 집에 와서야 처음 확인했다. '다가올 동료 민철님께 사랑과 용기를 담아, 슬아 드림.' 아마 같은 내용의 사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다가올 동료라는 말이 내게는 너무나 뜻깊게 읽혔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에 벌써 10권이나 되는 책을 출간한 작가, 내가 걷고 싶은 길을 저 앞에서 묵묵히 걸어 나가는 사람. 그 사람에게 듣는 '다가올 동료'라는 말이 이렇게 크게 와닿는 건, 아마 말의 의미보다는 이슬아 작가라는 이름이 가진 힘일 거라고 생각했다. 멋있는 사람, 대단한 사람, 결국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갈 사람. 그런 사람에게 뜻깊은 응원을 받고 온 기분이라 너무나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



p.s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신 J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몸을 가르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