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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철 Mar 26. 2023

맥O날드와 어머니

지겹도록 일정하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와 씨름하는 삶이었다. 그녀는 동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에 다녀야 했다. 고등 교육도 받지 못한 그녀가 공장 외에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퇴직을 해도 공장에서 공장으로 옮겨 다닐 뿐이었다. 화장품을 포장하고, 휴대폰 부품을 조립하고, 불량을 잡아내는 일. 업무 강도는 조금씩 달라져도 같은 동작을 수천번, 수만 번 반복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좁고 어두운 공장에서 꿈도 사랑도 모른 채로 일만 했다. 꿈이니 사랑이니 그녀에겐 사치스러운 것들이었다. 그저 동생들이 하루빨리 자라서 더 이상 돈을 벌지 않아도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도 한 가지 열망이 있었다. 배우고 싶다는 것. 어떻게 보면 학업 자체가 그녀의 꿈이 아니었을까.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배워서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고 그저 배우고 싶었다.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싶었고, 배우기만 하면 지긋지긋한 공장을 때려치워도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네 명의 동생들은 아주 천천히 자랐고, 해가 지날 때마다 돈이 더 많이 필요했다. 갉아먹히는 인생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어머니의 중매로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신랑감으로 받아들였다. 연애 한번 못 해보고 자라 서였을까. 결혼만 하면 대학까지 보내주겠다는 조건이 합리적으로 느껴져서였을까. 드디어 공장 일을 벗어날 수 있을 거란 희망 때문이었을까. 책임만 지고 살았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책임지겠다는 남자가 나타나서였을까. 모든 이유를 다 떠나서, 그녀의 학비를 책임지겠다는 남자의 말이 그녀의 어머니에게 아주 솔깃한 제안이었던 건 확실했다.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희생했던 맏딸에게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방법이었고, 그녀 대신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 결정에는 사내의 체격이 다부진 데다가, 어려서부터 정비업을 성실하게 해 왔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결혼하고 나서 그녀가 알게 된 건, 사내가 너무나 무심하다는 거다.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주말에는 종일 등산에만 목메는 사람이었다. 말라야 등반을 목전에 두고 병든 노모를 돌보느라 꿈을 포기했던 사내는 전히  집념을 놓지 못했다. 신혼임에도 산에서 텐트를 치고 잠까지 자고 오는 일이 부지기수였으며, 평일에도 운동을 하느라 늦게 귀가하는 일이 태반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내가 가정에는 성실하지 못한 남자라는 걸 알지 못했다. (본인도 그러한 남자와 평생을 살았기에...)


다만, 사내는 자신이 했던 약속만큼은 성실히 이행했다. 그녀가 검정고시를 볼 수 있도록 지원했고, 그녀의 동생들이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학비를 보탰다. 덕분에 그녀는 고등교육을 마치고 대학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두 문제 차이로 시험에 떨어지고 만다.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사내는 아쉬움에 눈물 흘리는 그녀에게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권했다. 어린 자식들을 두고 대학을 다닌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사내는 물론이고 그녀도 이미 알고 있어서였다. 그녀는 자식들의 아침을 차리고 등교를 도운 후에 공인중개사 학원을 다녔는데,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어느새 해가 지곤 했다. 자식들은 학교가 끝나면 학원까지 다녀와야 했으니 저녁을 차리기에는 얼추 맞는 시간대였다. 녀는 밀린 집안일을 모두 마치고 자식들과 남편을 챙긴 다음에, 학원에서 배운 것들을 복습할 정도로 배움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식을 살뜰히 챙겼는데, 주말이면 아토피가 심한 아들을 위해 피부과를 동행하곤 했다. 학원을 다녀와서 집안일까지 마쳐야 했던 그녀에게는 빠듯한 일정일 수밖에 없어서, 버스를 내려 피부과로 가는 길에 그녀의 발걸음은 자꾸만 빨라졌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아들은 두세 걸음을 걸어야 했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거의 넘어질 것처럼 미끄러져 내려가곤 했다.


피부과 진료를 마치고 나서는 O날드에서 꼭 어린이거세트를 사줘야 했다. 피부가 짓무르서도 햄버거를 안 사주면 병원에 안 가겠다고 고집부리는 아들 때문이었다. 녀는 항상 어린이세트 1인분만을 주문했고, 햄버거를 별로 안 좋아한다면서 아들에게 자꾸 한 입만 달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왜 따로 안 시키고 한 입만 달라고 하는지 몹시 불만인 표정이었다. 자신과 자식들의 학원등록비에, 밥값, 교통비, 생활비, 노모의 용돈까지. 거기에 방금 쓰고 나온 진료비와 약값을 계산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에는 아들이 너무 어렸다. 아들은 맥O날드의 어린이버거세트를 먹으면 주는 장난감에만 온 신경이 꽂혀있었다.


결국 그녀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그 후로는 공부를 더 이어가지 않았다. 지쳐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좀 더 커버린 아들은 어머니가 공부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 아버지가 주식으로 큰돈을 날렸고, 그 때문에 어머니가 다시 공장에 다니게 되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공장 일을 그만두게 된 건 그녀의 어머니가 죽고 나서였다. 평생을 일만 하고, 나이 들어서는 빈병과 폐지를 줍다가, 환경미화원까지 하면서 몸을 망쳐가던 그녀의 어머니. 말려도 그만 둘 줄을 모르고, 일하고 돈을 모으는 것만이 자식에 대한 사랑인 줄 알았던 그녀의 어머니는 지폐 몇 장을 쥔 채로 쓰러져 죽었다. 사인은 심장질환이었다. 갑자기 숨이 막히자 택시를 잡아타려고 눈에 보이는 지폐 몇 장을 집어든 것으로 추정됐다.


그녀는 어머니처럼 살게 될까 봐 두려웠다. 악착같이 살다 죽는 두려움이 일을 멈추게 했다. 자식들도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할 나이가 되었으니 무리할 이유도 없었다.


다시 무언가를 배우기로 한 건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부터였다. 내일배움카드로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게 요리였다. 한식, 일식, 중식. 이제는 복어 자격증까지. 그녀는 아침에 가방을 챙겨 학원을 나가고, 집에 와서는 복어 대신 단무지를 썬다. 아니면 요리 책을 읽거나 유튜브에서 강의를 보거나.


아들은 그 모습에서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던 어머니 떠올리곤 한다. 학업에 대한 열망과 생활고로 인해 힘들어하셨을 어머니를, 앞으로는 힘들어하지 않고 즐겁게 배우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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