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O날드와 어머니

by 신민철

어머니는 동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공장에 다녀야 했다. 고등 교육도 받지 못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퇴직을 해도 공장에서 공장으로 옮겨 다닐 뿐이었다. 화장품을 포장하고, 휴대폰 부품을 조립하고, 불량을 잡아내는 일. 업무 강도는 조금씩 달라져도 같은 동작을 수천번, 수만 번 반복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그녀는 꿈도 사랑도 모른 채로 일만 했다. 꿈이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은 사치일 뿐이고, 스스로 번 돈을 쓸 수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행복이었다. 그녀는 그저 동생들이 하루빨리 자라길 바랐다.

그런 그녀에게도 한 가지 열망은 있었다. 배우고 싶다는 것. 뭘 배우고 싶은지,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또래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싶었고, 지긋지긋한 공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어머니의 중매로 처음 본 남자와 결혼을 약속했다. 결혼 후 대학을 보내준다는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학비를 내주겠다는 제안은 그녀에게 너무나 솔깃한 프러포즈였고, 그녀의 부모로서는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그녀가 안 건, 그가 너무나 무심 사내라는 거였다.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일하는 시간 외에는 온통 산에만 빠져있는 사람. 사내는 히말라야 등반을 목전에 두고 병든 노모의 간병을 위해 꿈을 포기했지만, 여전히 '산'이라는 지독한 굴레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새벽 일찍 직에서 나서서 해가 질 즈음까지 산행을 한다거나, 날이 밝을 때까지 야영을 했다. 집보다 산이 편하고, 산에 가야 숨이 쉬어진다고 말하는 게 내 아버지다.

그는 가정에는 무심했지만, 자신이 했던 약속만큼은 성실히 이행했다. 그녀가 검정고시를 볼 수 있도록 지원했고, 그녀의 동생들이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학비를 보탰다. 덕분에 그녀는 고등교육을 마치고 대학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두 문제 차이로 시험에 떨어지고 만다. 시험을 앞두고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사내는 아쉬움에 눈물 흘리는 그녀에게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권했다. 어린 자식들을 두고 대학을 다니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사내는 물론이고 그녀도 잘 알고 있어서였다. 그녀는 자식들의 아침을 차리고 등교를 도운 후에 공인중개사 학원을 다녔는데,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어느새 해가 지곤 했다. 녀는 학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자녀들의 저녁을 챙기고 밀린 집안일을 했다. 그러고 나서야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게 무척 고단해 보였지만, 배우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어린 자식들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학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주말이면 아토피가 심한 아들과 피부과를 동행하곤 했다. 학원을 다녀와서 집안일까지 마쳐야 했던 그녀에게는 빠듯한 일정일 수밖에 없어서, 그녀의 발걸음은 자꾸만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아들은 두세 걸음을 걸어야 했고, 지하상가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거의 넘어질 것처럼 미끄러져 내려가곤 했다.

피부과 진료를 마치고는 O날드에서 어린이거세트를 먹곤 했다. 피부가 짓무르면서도 햄버거를 안 사주면 병원에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서였다. 그녀는 어린이세트 1인분만을 주문했고, 햄버거를 별로 안 좋아한다면서 아들에게 자꾸 한 입만 달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왜 따로 안 시키고 한 입만 달라고 하는지 몹시 불만이었다. 학원등록비에, 밥값, 교통비, 생활비, 노모의 용돈까지. 거기에 방금 쓰고 나온 진료비와 약값을 계산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에는 아들이 너무 어렸다. 아들은 어린이버거세트에 들어있는 장난감에 온 신경이 꽂혀있었다.


부단히 노력한 끝에, 그녀는 결국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만 공부를 더 이어가진 않았다. 지쳐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좀 더 커버린 아들은 어머니가 공부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게 되었다는 걸 안다. 아버지가 주식으로 큰돈을 날렸고, 그 탓에 어머니가 다시 공장에 다니게 되어서였다. 그즈음 수차례 부부싸움을 했고, 밤늦게 어머니가 집 밖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을 때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에 기다리곤 했다.

어머니가 공장 일을 그만두게 된 건 할머니가 죽고 나서였다. 평생을 일만 하고, 나이 들어서는 빈병과 폐지를 줍다가, 환경미화원까지 하면서 몸을 망쳐가던 할머니. 말려도 그만 둘 줄을 모르고, 일하고 돈을 모으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던 할머니는 지폐 몇 장을 쥔 채로 쓰러져서 돌아가셨다.

그녀는 어머니처럼 살게 될까 봐 두려웠다. 악착같이 살다 죽는 두려움이 일을 멈추게 했다. 자식들도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할 나이가 되었으니 무리할 이유도 없었다.

다시 무언가를 배우기로 한 건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부터였다. 내일배움카드로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게 요리였다. 한식, 일식, 중식. 이제는 복어 자격증까지. 그녀는 아침에 가방을 챙겨 학원을 나가고, 집에 와서는 복어 대신 단무지를 썬다. 아니면 요리 책을 읽거나 유튜브에서 강의를 본다. 아들은 그 모습에서 지난 시절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계단을 거의 뛰듯이 내려갔던 기억, 밤늦게 잠에서 깼을 때 아직 주무시지 않고 책을 들여다보시던 기억. 그때를 떠올리다 보면 간절히 바라는 게 있다. 이제는 즐겁게 배우시기를. 삶에 치여서 더 힘들어하시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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