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은 자주 해오던 고민이었다.
사실 나에게 삶에선 어떤 성공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고 나 나름대로 성공이란 사람마다 다른 것이며, 사람마다 각자의 목적이 있고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 성공이지 않을 까라고 생각했다. 즉 삶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러나 영화 '소울'을 보고 나니 이 성공에 대한 정의와 삶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소울은 재즈를 사랑하는 조와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영혼 넘버 22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다루는 영화였는데, 이 영화 속에서 불타오름(스파크)에 대한 내용이 너무 인상 깊었다.
스파크는 목적이 아니다. 세상을 살아갈 마음의 준비다.
-<소울>
어쩌면 나는 삶이란 어떤 목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단정 지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성공적이어야 하고, 삶은 목적을 가져야 비로소 그 의미를 가진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다.
사실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 사실이 나를 얽매여 왔다. 많은 이들이 누구나 하나쯤은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왜 나는 좋아하는 것이 없을까.
누구는 커피를 좋아하고, 누구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누구는 옷 입는 것을 좋아하는데, 나는 그런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브런치를 활동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생각했던 것은 그들이 글쓰기를 좋아하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던 모습들을 보며 닮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여기에서 내 목적을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내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까? 이런 고민들과 함께 브런치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삶의 목적을 찾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삶의 목적(꿈)을 소개할 땐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대답하긴 한다. 그런데 나의 행동들을 보면 삶의 목적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 마음 한 구석엔 이런 목소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는 운이 좋아, 좋은 환경 속에서 태어났는데, 그것을 너만을 위해 쓰는 것은 옳지 않아. 너는 받은 만큼 사회에, 세상에 기여해야 해. 비록 그 길이 험난할지라도 네가 받은 게 있으니 그것을 돌려줘야 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두 가치관을 충돌을 경험할 수밖에 없고, 매우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세상에 흥미를 잃기 시작한다. 관심을 잃기 시작한다. 사실 영혼 22와 같이 나는 무서웠던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현실의 나의 모습이 이질적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삶의 목적을 찾고 있으면서도 삶의 목적을 외면하는 역설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목적 없는 삶을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나에게 목적이란 것은 꼭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런 역설적인 상황은 나를 괴롭혔고, 목적을 찾는 과정 속에서 나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소울이 이야기하는 스파크에 대한 이야기는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
어스 패스를 위한 마지막 한 조각, 스파크는 삶의 목적이 아니다.
영화 속 조는 재즈는 자신의 삶의 목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조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넘버 22의 스파크를 찾을 때 삶의 목적을 찾으려고 한다. 이런 가치관으로 인해 넘버 22의 어스 패스가 완성됐을 때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넘버 22가 자신의 몸에 있을 때, 자신의 음악에 대한 스파크가 그것을 채웠다고, 넘버 22가 목적을 찾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에 대한 열정이 스파크를 일으켰다고. 그것을 들은 넘버 22는 자신은 목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좌절하여 어스 패스를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조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넘버 22의 스파크는 재즈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해, 나는 사탕 먹는 게 좋아, 나는 피자가 맛있어."-넘버 22
"그것은 평범한 노후생활일 뿐이야"-조 가드너
-<소울>
세상을 살아가기 싫어하는 넘버 22를 마음을 흔들리게 했던 것은 삶의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길 가다 먹었던 피자의 맛이 그 어떤 위인도 설득시키지 못한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고, 길을 걷는 것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지하철 환풍구 바람 속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며, 베이글을 먹으며 지하철역에서 노래하는 사람의 노랫소리에 감동을 받을 줄 알았다. 그녀는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푸르다는 사실에, 단풍이 떨어지는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삶의 목적인 재즈를 추구하느라 조는 그녀가 느꼈던 것을 느끼지 못하고 그것을 평범한 노후생활이라고 치부했다.
그 누구보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비관적이던 넘버 22가 삶에 감동하는 모습과 비록 삶이 멋지지 않더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조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영화 소울은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조처럼 비록 삶이 남들이 보기에 초라해 보이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명확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도 멋있어. 그러나 삶이란 그게 전부는 아니야. 삶의 매력은 꼭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야. 그저 하늘이 푸르다는 것, 지나치다가 바라본 꽃이 아름답다는 것, 걷는다는 것. 그런 것들 속에서도 삶의 매력은 충분히 찾을 수 있어. 혹시 조처럼 너무 목적에 목 매이다가 저런 것들을 놓친 것은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것, 삶의 목적을 찾는데 너무 열중하다가 진짜 중요한 삶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닐까? 삶은 역설적이어도 좋고, 나처럼 무채색이어도 좋아. 꼭 누구 봐도 멋진 삶이 아니어도 좋고,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삶이라도 좋아. 그저 조의 마지막 한마디처럼 진실하게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너무 고민하지 말고 너무 아파하지 말자. 그저 있는 그대로,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가자. 목적 있는 삶도 멋지지만 목적이 없는 삶도 충분히 아름다워."
"삶은, 스파크는 목적이 아니야."
이런 말들은 나에게 너무 큰 위로가 되었다. 과연 내가 바뀔 수 있을 까는 모르겠지만, 너무 목적에 집착하지 말고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것. 그것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영화 <소울>, 한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였지만 책보다도 더 큰 울림을 주는 그런 작품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