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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소 Nov 01. 2017

국경을 넘어 처음 만나는 사람

나를 지켜주는 아저씨  


캘리포니아에서 티후아나로 넘어갈 땐 두 개의 출입국 사무소를 이용할 수 있다.

San Ysidro 보더와 Otay 보더가 있는데, 

나는 비교적 도보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San Ysidro를 추천한다.

그리고 San Ysidro에도 신관과 구관으로 된 출입국 사무소가 있는데,

나는 구관을 주로 애용한다. 

(물론 구관이 들어갈 때도, 나갈 때도 조금 더 걸어야 하는 거리이긴 하지만)


멕시코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다.

하루에서 일주일까지는 무료이고, 그 이상 혹은 비행기로 멕시코 국내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6개월짜리 비자를 유료로 받아야 한다. 비용은 500페소로 시세에 따라 약 25불에서 30불 사이다.


나는 내려갈 때마다 일일 비자를 받는다.

길게 줄을 설 때도 있고, 1분도 안 걸려 통과하는 날들도 있지만,

이 순간도 내가 좋아하는 멕시코 여행길 중 하나이기 때문에,

굳이 6개월짜리 멕시코 비자를 따로 얻진 않는다.


(6개월 동안 유효한 멕시코 비자를 받으면, 그 기간 동안은 미국과 멕시코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항상 여권과 지참해야 하며 출입국사무소에서 "6개월짜리 비자를 받고 싶다"라고 말한 뒤 현금으로 지불하면 된다. 

멕시코 내에서 비행기로 여행할 때도 약간 딴지를 걸 핑곗거리로 매번 체크하고 (특히나 한국사람들이 비자를 안 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여) 있으니 호구가 되지 않도록 하자. 

대신 미국에서 차로 멕시코를 드나들 땐 따로 비자를 검사하지 않으니 (일주일 이내라면) 받지 않아도 된다)


"오늘도 발레를 배우러 가?"


얼굴을 익힌 직원이 인사를 하면, 나는 바짝 올려 묶은 머리를 보여주며 "Si! (Yes)"이라고 대답한다.

홀가분한 걸음으로 검색대를 통과하면 바로 멕시코다.


이상한 게,  작은 건물 하나만 통과했을 뿐인데

내리쬐는 태양부터 공기까지 다른 기운이다.

멕시코니까, 이제 조금은 긴장하기도 해야 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랄까?


여기서부터 난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 모드로 어깨를 펴고

긴장한 마음을 숨긴 채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한다.

저쪽에 잡상인들이 보이고, 짐을 들어주겠다는 아저씨들도 보이지만 늘 그렇듯

"저는 멕시코가 처음이 아니에요"라는 얼굴로 인사만 한 뒤 빠르게 지나친다. 

가끔 멈출 때도 있다. 

처음 보는 음식을 파는 매대가 보이거나, 어린아이가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오늘은 달달한 고르디따스의 냄새가 나를 유혹했다. 다행히 사진만 찍은 뒤 걸음을 옮겼다.

(고르디따스, 따말레스 등은 나중에 멕시코 음식 편에서 소개할 예정)


밀가루와 설탕을 넣어 구운 Gorditas , 한봉지에 20페소 (1200원~1500원 사이)



Tamal 과 코코아에 찹쌀을 넣어 끓인 Champurrado  음료


그렇게 10분간 걷다 보면 멕시코의 첫 횡단보도 앞에 다다르게 된다. 올해 초 까지만 해도 노점상들이 한가득 있었지만, 최근엔 시에서 단속을 해 항상 경찰이 상주해 있고 허가를 받은 업체의 택시들이 손님을 맞는다. 친절한 택시 요금표도 물론. (하지만 난 택시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횡단보도를 건넌 뒤 나무 그늘 아래 자리한 매점과 타코 트럭, 약국, 주차장, 그리고 또 다른 타코 집과 주차장들을 지나면 복잡한 4차선 대로가 나온다.

이 대로는 미국으로 가는 진입로, 미국으로 더 빠르게 가는 (사전 유료 허가증이 있는) 진입로,

멕시코의 바다와 관광지로 향하는 Via Internacional 고속도로이자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길이기도 해서 24시간 내내 차들로 붐빈다.

따로 신호등도, 교통정리를 해주는 경찰도 없기 때문에 눈치껏 길을 건너야 한다. 

이때쯤이면 슬슬 다리에 힘이 빠진다. 

멕시코의 쨍한 햇빛에 숨겨뒀던 긴장감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난 얼른 고개를 들어 익숙한 풍경을 찾는다.

저 멀리, 

길 건너에서 사부작사부작 물건을 팔고 있는 마리오 아저씨가 있을 것이다.

얼른 아저씨에게 가고 싶어 까치발을 들어본다.


:)


역시, 아저씨가 그곳에 있다.

그 존재는 잔잔한 바람을 되어 내가 숨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리오 아저씨 


작은 이동식 아이스박스에 콜라와 아이스크림, 땅콩과 과자 같은 주전부리를 파는 마리오 아저씨.

언제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했는지, 

몇 시에 집에서 나와 어디 어디를 돌고 이 시간엔 여기에 와 있는지 

아저씨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지만 

이 곳에서 아저씨는 내 보호자이자 친구다.


이가 하나도 없고 파란 눈인 듯 한 눈동자는 자세히 보면 백내장이 시작될 것 같은 눈에,

매일 담배를 피우고 물 대신 콜라를 마셔서 내가 잔소리를 할 때도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나에게 있어 가장 믿음이 가는 존재.

 질서 없는 차들을 뚫고 네 번의 차길을 건넌 뒤 아저씨의 근처에 다 달을 때면,

나는 1루에 도착한 야구선수와 같은 마음이 든다. 

반가운 마음을 담아 손을 흔들면 아저씨도 나에게 구수한 웃음을 짓는다.


"Buenas tardes!" (Good afternoon!)


안부를 묻고, 물을 하나 사마신 뒤 우버가 올 때까지 조용히 그의 곁에 서 있는다.

이때 마시는 물이 참 꿀맛이다.

가끔은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 날은 아저씨가 내가 다음 차를 탈 때까지 바라봐준다.

 

어떤 날은 담배를 태우는 아저씨에게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아저씨에게 티후아나의 황금기 시절을 듣기도 한다.


"예전에 티후아나에 얼마나 많은 여행객들이 왔었냐면....."


나는 아저씨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좋아 마냥 듣다가

우버가 도착하면 '다음에 또 얘기해주세요!'라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그래, 목요일에 봐. 여기에 있을게"


목요일에 또 봐요 화요일에 또 봐요

그 날에도 아이스박스에 시원한 물을 담아서 와주세요
그 자리에 있어주세요


여름과 가을, 겨울에도.. 아저씨는 그곳에 있었다.

내가 일찍 도착한 날은 아저씨를 기다리고,

내가 조금 늦는 날엔 아저씨가,

'코레아나 아가씨가 오늘은 안 오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기다렸다고 했다.


어쩌면 마리오 아저씨는 나에게 

멕시코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잘 모르기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자꾸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대상.

거기에 있어주어 고마운 존재.


콜라가 아니라 물을 사 마시고 싶다는 나의 부탁에

내가 가는 날만 물을 담아오는 아저씨는, 

어떤 날엔 물을 깜빡 해 내가 사 차선 도로를 건너기 전부터 

나에게 미안하고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인사를 한다.

내가 우버에 올라타도,

떠날 때 꼭 한번 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주는 아저씨

나중에 이곳을 떠나더라도 

아저씨가 파는 시원한 물은 자꾸만 생각날 것 같다.


건강하세요. 우리 내일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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