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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소 Jun 21. 2018

어른의 연애

여전히 이별 중

“보고 싶어”

버튼 몇 개 누르면 전할 수 있는 마음인데도 

그 방법이 너무 간단해 되려 속으로 삭히는 게 익숙해졌다.     


그 네 글자 뒤엔

상대방의 감정을 책임져야 하는 무게

어느 날 그가 덥석 내 손을 잡는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말아야 할 초연함이 요구되는 말      

밤늦게,

술에 취해,

무서운 꿈을 꾼 다음 날 아침,

전화로, 문자 메시지로 전하던 투정

또는 습관과도 같았던 말


“보고 싶어”     

이제는 그 간지러움을 참아야 하는 나이,

그 말의 무게를 책임질 수 있다 하더라도

한번 더 생각하고 꺼내야 하는 나이가 됐다.     


정말 못 참을 것 같을 땐

이불을 덮고 엉엉엉 울며

혼자 말하게 되는 현실은 어쩌면

어른이 되었기 때문.            

               

그런데 우리가 꼭 책임질 말만 하는 건 아닌데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아끼게 됐는지 모르겠다.


"보고 싶어"

보내 놓고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아무 답이 없더라도 울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그렇다면 덤덤히 꺼내볼 수 있는 말,

어른의 연애

어른의 보고 싶다는 말은 그런 조건을 달고 있다.




*이 글은 <어른의 연애>에 수록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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