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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Aug 02. 2024

평창올림픽에 발령난 사무관들은 꿀을 빨았는가?

파리 올림픽을 보며 떠올린 것들


파리 올림픽 소식이 연일 화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개회식을 봤고, 우리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매일 보고 있다. 대규모 행사이니만큼 실수가 잦아서 아쉬운 부분들이 제법 많다. 대규모 행사라면 더 철저하게 해야 하는 게 아니냐? 싶지만. 실수는 일어난다. 올림픽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위해 모인 일꾼들은 모든 방면에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수를 최소화해야 하지만 결국에는 실수들을 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양이 나온다.


어떻게 아냐고? 왜냐면 평창 올림픽과 패럴림픽에서 개같이 굴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평창 올림픽이 망할 것만 같았다. 나만해도 다양한 실수들을 했고 그다지 프로페셔널하지 않았다. 아마도 경기 운영에 있어서 우리의 올림픽에도 다양한 실수들이 있었을 것이다. 불거져 나온 것이 없어서 그렇지. 비록 평창에서는 일하느라고 경기는 거의 보지 못했지만, 파리 올림픽은 멀리서나마 응원하리!



나는 공무원 시험을 보고 인재개발원에서 몇 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예산, 법, 행정.. 등등 이것저것 배운다. 교육이 끝나면 다음 수순은 지자체나 소속기관들로 배치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시보 기간 일부를 거기서 보내게 된다. 하지만 나의 공직생활의 시작은 2017년이었고, 무려 국제적인 축제인 평창 올림픽을 앞두었기 때문에 신임 사무관들 300여 명이 그곳으로 대량 발령을 받았다. 과거에도 이런 큰 행사 있을 때 신임 사무관들이 발령 나는 일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교육생들이 모여있는 곳에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인사 담당하시는 분이 설명을 오셨던 게 기억난다. 제법 구체적으로 어느 팀에 몇 명이 배치를 받는지, 일하는 동안의 혜택은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분은 혜택으로 평창 올림픽 유니폼을 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진짜 가는 거야?, ' '우리 어디 사는 거야?'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나는 지자체로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연수원 생활을 좀 더 이어나가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보낸다는데 내가 선택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발령이 나고 과천 기숙사에 있던 짐을 싸서 양양으로 넘어갔다. 양양 낙산사 근처에 숙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백여명의 동기들의 그 숙소에서 살았다. 내가 지낸 방에는 과천의 칠공주라 불리던 기술직 여성동지들 중 네 사람이 같이 살았다. (당시 기술직 여자가 7명뿐이었다. 전혀 깡패짓을 하지 않았다.) 가위바위보를 했나 뽑기를 했나. 7명의 친우들은 3명, 4명으로 나누어져 방을 잡았다. 지금은 행정직과 기술직이 진천에서 같이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 때는 연수원이 진천으로 옮겨가는 과도기라 그런지 기술직만 과천에 있었던 덕에 끼리끼리 굉장히 친해졌다. 또, 이미 과천에서 같이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 나는 새로운 룸메들에 제법 만족했다. 복작복작 사는 건 제법 재미있었다. 두 명은 거실에 자고 두 명은 방에서 자는데 아무도 방을 독점하지 않았다. 그냥 일찍 들어오면 침대에 누워서 자는 것으로. 


일출이 멋진 낙산사 근처답게 아침의 해는 제법 일찍 떴다. 거기 살 때는 그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지만.. 아무튼 자고 일어나면 아침 일곱 시 즈음인가 일터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양양에 있는 숙소에서 조직위가 있던 평창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겨울로 갈수록 해는 늦게 떴다.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일곱 대인가 여덟 대인가 늘어서 있는 관광버스를 보며 맞는 아침은 아주 생경했다. 잠도 덜 깨 가지고. 매일 나는 부랴부랴 버스에 올랐다. 몇 달 정도 이렇게 다녔다. 같이 버스 타고 가서 어디 내려주면 각자 발령받은 부서로 뿔뿔이 흩어졌다. 



어떻게 직원들을 배분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나는 수의사라 그런가 메디컬 팀에 배치받았다. (음?) 옆에 앉은 동기는 자기 컴퓨터가 안된다고 기술직이 컴퓨터를 잘 알지 않겠냐고 계속 물어봤다. 아무도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는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가고 있는 걸 몰랐다. 누가 급하게 일하라는 게 없으니까 진짜 일이 없는 건가 싶어서 의아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부족해서 한꺼번에 많이 달라고 조직이니만큼, 그간의 부족했던 일들은 구석구석 켜켜이 쌓여있었다. 


올림픽을 개최하면 운영을 위한 인력, 시설, 물자, 교통, 숙박 등등..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아주 많다. 각 분야별로 담당하는 팀들이 있었다. 평창의 경우에는 동계 올림픽 시설을 새로 짓기도 했고. 올림픽이 열리는 시기에 강릉역까지 KTX도 개통되었. 왠지 심시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선수들이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서 내려서 평창까지 들어오는 도로는 어떤 도로이고, 그 길이 문제가 생겨서 막히면 어떤 우회도로로 와야 하는지도 정한다. 선수들은 장비와 멀어지면 불안해하니 장비와 멀어지지 않기 위한 방도도 필요하단다. 와중에 평창 조직위나 스키점프, 슬라이딩 센터 쪽은 계속 공사 중이었다. 도대체 언제 다 되나 싶었는데, 필요할 때까지 기가 막히게 공사가 끝났다. 선수촌으로 사용되는 아파트도 지어졌고, 선수단과 코치진 가족들, 관광객들이 모이기 때문에 올림픽 특수를 노리고 새로 지어지거나 리모델링하는 모텔이나 펜션도 제법 있었다. 선수촌 아파트는 나중에 집주인이 들어와 살 때 하자가 생기면 안 되니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집에 손상이 생기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누구의 책임인가를 나누는 것이 중요했다고 한다. 어떤 가구를 쓰고 어떤 수건을 쓰고 이불은 뭐고 자판기도 들어가고. 숙박 쪽 일들도 신기했다. 선수촌에는 선수들 들어가고, 운영인력은 여기저기에 뿌려놓고.. (나는 양양에 좀 살다가 올림픽 기간에는 고성에 뿌려졌다.)  


일을 할 인력 또한 엄청나게 필요하다. 당장 예를 들자면 내가 일했던 의료지원팀에는 나와 같이 행정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고, 각각의 베뉴로 가면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의료통역이 필요했다. 거기에 소방청에서도 지원을 많이 했기 때문에 소방대원들도 제법 있었다. 올림픽을 기준으로 내가 속한 슬라이딩 베뉴에만 의료 팀의 단체 카톡방에는 약 8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상주 의사 네 명과 간호사 한 명 응급구조사 여섯 명이 경기와 연습 때마다 자리를 지켜야 했다. 관중 의무실도 운영했으니 거기도 의사 한 명, 간호사 두 명이 있었다. 하지만 의료진들 중에 올림픽 기간 전체를 통으로 현업을 제쳐두고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휴가 며칠 내서 오시거나 다니는 병원에서 올림픽을 지원해서 소속 의료진이 돌아가면서 나오거나 하는 식이었다. 내가 해야 하는 건 이 사람들이 경기장에 하루 오더라도 자기 몫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일도 포함이었다. 




의무부에는 의료지원팀과 도핑팀이 있었고 열몇 명의 사무관이 있었다. 의료지원팀의 사무관들은 Medical Operating Manager라는 별칭을 얻어서 하나의 베뉴씩을 맡았다. 줄여서 MOM이라는데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아서 나는 그냥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면 되냐고 물으면 매니저라고 부르라고 했다. 아니면 사무관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나는 여러 베뉴 중 슬라이딩 센터를 맡았다. 피겨나 하키 하는 빙상 경기장도 좋아 보였는데 아쉽게 됐다. 하지만 경기장에 가보니 스케일도 크고 밖을 많이 돌아다니는 일도 재미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팀장님은 나에게 테스트 이벤트를 준비하자고 했다. 그건 올림픽 전에 경기장 세팅이 잘 되어있는지 운영은 잘하고 있는지 체크하는 일정이란다. 실제 경기처럼 모드 그때는 선수들 중 일부는 미리 경기장에서 연습을 하는 모양이었다. 다른 운영들도 실제와 같이 해야 했다. 실제와 같았던 테스트 이벤트는 어땠을까? 아주 트라우마틱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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