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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Aug 06. 2024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SF 단편소설 거울상

연구실에 난 창문으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소녀의 얼굴이 비친다. 센터장인 빅토리아다. '후.' 세라는 화를 가라앉히려는 듯 몇 번 숨을 크게 쉬고는 빅토리아를 향해 걸어간다. 수재는 그 모습을 보고 킥킥거리며 세라의 뒤를 따른다. 빅토리아의 주위에는 경호원들이 몇 있었다. 아이의 날카로운 눈과 강한 턱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도드라졌다. 세라는 빅토리아에게서 뚜렷하게 이전의 센터장을 보았다. 빅토리아의 검은 머리칼 사이로 희끗한 머리카락의 뭉치가 보였다. 마치 검은색 바탕에 흰 줄무늬가 있는 얼룩말의 털 같았다. 매끄러운 머리카락은 소녀가 움직일 때마다 찰랑인다. 소녀가 자라는 몇 년간 그 머리카락은 어깨에 닿은 적이 없다. 늘 적절한 시기에 머리카락을 자르는 건지,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 건지는 모를 일이다.


  "수재, 들어가 봐. 넌 나올 필요 없어." 빅토리아가 표정 없는 얼굴로 수재에게 말했다. 


  "아니. 빅토리ㅡ" 수재가 중얼댔다. 수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빅토리아가 인상을 팍 쓰며 손을 엑스자로 내저었다. 이전 센터장이 하던 행동이다. "들어가라고 했잖아. 할 말 없다고." 빅토리아의 손짓에 수재가 주춤 고개를 뒤로 빼더니 눈을 몇 번 끔뻑이고는 연구실로 들어갔다. 그가 연구실로 들어서자 빅토리아가 경호원 중 하나에게 눈짓했다. 경호원은 바로 연구실 문을 닫아버렸다. 


  "너. 내 방으로 가지." 빅토리아가 세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십 대로 보이는 소녀가 머리가 희끗한 아주머니에게 손가락질을 했지만 아무도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빅토리아는 세라의 어리둥절한 표정에도 개의치 않고 복도를 걸어갔다. 세라도 한참을 그 무리에 섞여 빅토리아의 사무실로 향했다. 빅토리아의 사무실로 가려면 복도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사무실로 가는 길의 중간중간에는 카드키로 출입을 통제했다. 세라는 빅토리아의 사무실로 갈 수 없는 등급이었다. 


  경호원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경호원이라 일이 어색했다. 그리고 카드키를 꺼내 인식패드에 가져다 댔다. '띠링' 카드키를 대자 문이 열렸고 그는 카드를 앞뒤로 한 번 뒤집어서 보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왜? 카드키를 쓰는 게 너무 후진적인가?" 빅토리아가 경호원에게 말했다.


  "어떻게 가지고 다니면 좀 더 효율적 일지 생각해 봤습니다. 홍채인식이나 얼굴인식으로 교체하면 어떨까도.." 경호원이 빅토리아에게 답했다.


  "그것도 좋지. 근데 때론 아날로그가 좋더라고. 지문이나 홍채나 얼굴은 다 도용가능하더라고. 누가 훔쳐가도 훔쳐갔는지 알 수가 없어. 카드키는 누가 훔쳐가면 바로 티가 나니까. 그래서 바꾼 거야. 옛날에." 소녀가 말했다. 세라도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연구시설에 침입한 무장괴한들이 연구원들을 납치한 적이 있었다. 빅토리아는 태어난 지 채 20년이 되지않았는데 과거의 일들을 직접 겪은 것 처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점은 오히려 빅토리아의 센터장 지위를 공고히해주었다. 사람들은 빅토리아를 무서워했지만 그녀의 결단에 따라 움직였다.


  빅토리아가 말했다. "무힙은 어때. 네 가족."


  "잘 있습니다." 세라가 말했다. 그리고는 "빅토리아, 무힙을 다음 수정호에 태우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빅토리아가 말했다. "걔는 네 친아들도 아닌데 거두어키우는 이유가 뭐야? 난 도무지 이해가 안 가."


  세라가 대답했다. "어쩌다 보니.. 시간이 가니 아이는 저절로 큰 것 같아요."


  "그래. 부모가 없어도 아이는 자라지. 지금 그런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단해." 빅토리아가 말했다.


  "빅토리아, 그래서 말인데 저는 무힙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았으면 해요." 세라가 빅토리아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빅토리아가 세라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수정호 말이지? 자리가 있으려나..." 빅토리아가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뭐든 할게요." 세라가 말했다.


  "뭐든?" 빅토리아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이내 빅토리아는 "세라가 내게 줄 수 있는 건 딱히 없어. 네 자식이라면 모를까."라고 말했다. 경쾌한 목소리였다.


  "무힙이 줄 수 있는 게 뭐죠?" 세라가 말했다.


  "내가 쓰고 싶어." 빅토리아가 말했다.


  "무슨 말이죠?" 세라가 물었다.


  빅토리아가 한숨을 내쉬며 잠시 멈춰 섰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말을 이어갔다. "알다시피 연구소에서 오래 일해온 사람들 수명이 많이 줄었어. 유전자 복제 과정에서 기능이 많이 떨어진 거지. 자기도 노화가 너무 빠른 거 스스로도 느끼지?" 빅토리아가 말했다. 그리고는 "무힙은 몇 안 되는 자연 유전자를 가졌어. 그리고 네가 키운 덕에 반항아로 자라지도 않았지. 네가 연구 내용을 그 애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어." 빅토리아가 말했다. 연구 내용들을 외부인에게 발설하는 건 중죄였다. 빅토리아가 그걸 알고 있다고 말하자 세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세라, 기밀을 유출한 죄는 묻지 않을게. 대신 무힙은 메타 정식버전의 첫 번째 실험체로 실릴 거야. 이번 메타는 발사체와 지구의 서버가 연결될 거야. 이전에 출발했던 우주선들의 위성이 가는 길에 잔뜩 깔려있잖아. 연결할 수 있어. 첫 번째 메타의 주인공이 되는 거야." 빅토리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빅토리아. 이전 우주선에 실린 생존자들도 메타의 주민으로 안정적으로 이식되었다고 들었는데요. 무힙이 첫 번째라는 게 무슨 말이죠?" 세라가 의문스럽다는 듯 빅토리아에게 말했다. 


  "아. 넌 모르는구나?" 빅토리아가 말했다.


  "뇌신경과 메타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에러가 제법 생겼어. 튀는 값들도 생기고. 하지만 괜찮아. 반수면상태에 있는 몸들은 도착하면 깨어날 수 있으니까." 빅토리아가 말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놓은 공간들이 너무 아깝잖아. 아무도 사용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새로 들어오는 생명체를 아직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알프레도의 의견이야. 그리고 좀 더 유전적으로 강한 개체를 사용해 보고 서서히 사람에게 시스템을 적응시켜 나가자는 게 걔 의견이고." 빅토리아가 말을 이어나가다 세라를 쳐다보았다. "걔가 추천했어. 니 아들을." 빅토리아가 떠드는 동안 그녀의 사무실에 거의 도착했고, 열린 문으로 빅토리아가 세라를 잡아끌었다. 빅토리아는 경호원들은 밖에 있으라는 듯 손짓했다. 빅토리아의 사무실은 휑했다. 생활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공간에 빅토리아와 세라만이 남았다. 창밖으로 모래 폭풍이 멀리 지나가는 게 보였다.


  빅토리아가 세라에게 다가섰다. "왜? 알프레도랑 무힙이 못할 것 같아? 자신 없어?" 빅토리아가 세라의 표정을 살폈다. "알프레도는 네 기밀유출에 대해서 알아?" 그녀가 말했다. 세라는 좀 멍해졌다. "일단 앉아." 빅토리아가 탁자 앞의 의자를 꺼내주며 말했다. 


  "아.." 세라가 조금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물었다. "무힙은 안정적으로 이식될 수 있을까요?"  


  "어 자신 있어. 신체 보존에 관해서는 네가 전문가잖아. 얼리는 거야 잘 얼려서 데리고 가는 거고 정신이 문제인데 메타 시스템 이미 아주 훌륭하게 만들어져 있어. 그걸 버틸 인간이 무힙이야. 예전에 다른 발사체에 태울 때 다양한 검사들을 했던데. 무힙의 정신력 수준은 보통 사람을 뛰어넘어." 빅토리아가 말했다.


  빅토리아가 말하는 동안 모래 폭풍에 떠밀려온 무언가가 창문에 맞았고 떨어졌다. 빅토리아는 "아유." 하며 놀란 소리를 내고는 "물론 여기 환경이 이렇게까지 나빠지도록 내버려 둔 건 잘못이지만. 우리는 분명히 정복자로 태어났어. 우주의 어떤 곳에도 우리만큼 진보한 생명체 그룹은 없어. 가장 외롭지만 모든 걸 갖는 거야. 무힙은 우리 세계를 조금 더 넓혀 줄 인간이야. 그리고 그렇게 가진 것들을 뺏기지 않게 노력해야 하는 종이 우리라고. 몇 백 년간의 비행을 하고 나서 다른 행성에 도착하면 어떨까?"라며 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생각해 본 적 있어? 우리가 새로 도착하는 행성에서 떠오를 태양이라던가 날씨, 그런 것들." 빅토리아가 광기에 차서 말했다.





  "꼭 무힙이어야 하나요?" 세라가 말했다. 


  "왜? 이번에는 다른 사람으로 실험하고 나중에 좀 더 안정적일 때 태워 보내려고?" 빅토리아가 뿌루퉁하게 말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닌 것 알잖아요." 세라가 반박했다.


  "아니긴 뭐가 야냐." 빅토리아가 말했다. 그리고는 "다음 기회는 없어. 이번에 나도 갈거거든. 너도 이번에 가던가."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고민하는 듯한 표정의 세라를 보자 빅토리아가 덧붙였다. "아. 내가 별소릴 다하네 나도 나이 들었나 봐" 빅토리아가 웃으며 세라에게 말했다. "무힙을 포함해서 지금 선발대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새로운 행성에 도달했을 때, 홀로그램에서 나와서 나를 보좌할 거야. 그 잠들어있는 긴 세월 동안 그는 그 시스템을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우고 새로운 행성에 정착하는 방법들을 배워나갈 거라고. 나와 같은 배를 타고 가는 자들 이잖아. 만약에 다른 행성에 도착했는데 그곳에 지내고 있는 다른 생명체들이 우리 것을 다 빼앗아가면 어떻게 해? 대비해야지. 나는 모든 방면으로 우리 비행이 완벽하길 바라. 그 완벽한 퍼즐에 무힙도 한 조각이지." 빅토리아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우선 저는 가능하면 여기에 남고싶어요." 세라가 말했다. 


  "그래. 남은 사람들이 해줄 일이 많지. 넌 남고. 무힙은." 빅토리아가 세라를 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결정해서 알려주면 되나요?" 세라가 말했다.


  "지금 결정해. 보내거나 여기서 평생을 살게 하거나. 그리고 너는 여기서 죽거나 살아서 다음을 기약해." 빅토리아가 말했다.


  "보낼게요. 대신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제가 알프레도의 일을 도울 수 있었으면 해요." 세라가 말했다.


  "네 분야도 아니라서 별 도움이 안 될 텐데?" 빅토리아가 말했다. 그리고는 이내 "그래. 좋아. 그렇게 해. 나가봐."라며 웃었다.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세라는 멀리 지나가는 알프레도와 동료들의 무리를 보았다. 알프레도는 세라를 보며 어색하게 인사하고는 사라졌다. 무힙을 태운 수정호가 떠날 날이 일 년 앞으로 다가왔다. 사실 빅토리아와의 협상은 나쁘지 않았다.


  "무힙을 살릴 거야." 세라가 양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중얼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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