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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Aug 27. 2024

홀로그램 속 유토피아에 접속하는 방법

sf 소설 거울상

무힙이 차가운 문을 두드리자 금속을 치는 '탕, 탕.' 소리가 났다. 하얀 문의 눈높이에는 투명하고 작은 창문이 빼꼼히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창문은 옆으로 열고 닫을 수 있어서 누군가 밖에서 실험실을 지켜볼 수 있는 구조였다. 무힙은 창문으로 실험실 내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구불구불한 짧은 머리의 알프레도가 뿌루퉁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기계들을 쳐다보고 있다. 무힙에게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세라의 사진첩에는 알프레도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많았다. 그의 머리카락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누런 갈색이었다. 무힙이 몇 번 더 문을 두드리자 알프레도가 흠칫 놀란 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는 무힙을 보자 한 손을 인사하듯 올리고는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무힙은 저녁마다 세라를 데리러 오면서 알프레도를 실제로도 몇 번 만났었다. 사진 속 그는 늘 약간 어색해 보이지만 환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본 그는 좀 달랐다. 그는 늘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사람들이 인사를 해도 본체만체하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언젠가 세라의 인사를 무시하고 지나가는 알프레도를 보며 세라는 "원래 혼자서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일도 잘하고.. 나쁜 사람은 아냐."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수정호를 타고 떠날 때 저 친구가 도와줄 거야."라고 덧붙였다.


"들어와요." 문 앞에 선 무힙이 들어오지 않자 알프레도가 입을 열었다. 무힙이 손에 힘을 주자 문은 금속재질이라 무거워 보이던 문은 가볍게 열렸다. 이곳에 오고 싶지 않다고 세라에게 몇 번이고 대들었지만 결국에는 이곳에 서있는 무힙처럼.


"누워요." 알프레도가 실험실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의자는 간이침대로 보일 정도로 기울어져있었다. 그는 무힙을 거의 쳐다보지 않았고 분주하게 무엇인가를 만져댔다. 그의 눈도 무척 바빠 보였다. "아." 알프레도가 의자에 있는 버튼을 여러 개 조작했다. 그러자 의자의 등받이가 경사지게 올라갔다. 비로소 의자가 의자처럼 보였다. "앉아요." 알프레도는 의자를 톡톡 두드리고는 서랍을 열어 파일 하나를 꺼냈다.


"오늘은 그냥 간단한 검사." 알프레도가  의자에 앉은 무힙을 보며 말했다. 그가 의자의 버튼을 다시 누르자 등받이가 뒤로 기울어졌다. 무힙은 하얀 천창을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알프레도가 무힙의 발목에 조그만 걸 붙이자 무힙이 깜짝 놀랐다. "앗." 알프레도는 "센서 몇 개 더 붙일 거예요. 아프지 않아요. 그냥 검사."라며 무힙의 얼굴 위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네." 무힙이 대답했다. 이후로도 알프레도는 무힙의 몸 여기저기에 무엇인가를 붙였다.


똑똑똑.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무힙이 슬쩍 고개를 들어 창문을 보자 창문 틈으로 세라의 눈이 보였다. 알프레도는 부지런히 센서를 붙이고 있었다. 무힙이 움찔거리자 알프레도는 "흠. 최면이나 명상한다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어주면 빨리 끝날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곤 "여러 정보를 얻으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거든."이라며 무힙에게 설명했다.


드르륵 세라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왜 왔어?" 알프레도가 세라를 보며 말했다. 무힙은 누운 채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세라가 무힙을 보며 말했다. "참관?"


"왜?" 알프레도가 말했다.


"무힙이니까? 너한테 잘 봐달라고 부탁도 할 겸..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울게." 세라가 말했다.


"괜찮아. 네 실험구역도 아닌데. 다른 구역 헤집고 다니는 거 규정위반이야." 알프레도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는 무힙에게 달아놓은 센서에 또 무엇인가를 연결하고 있었다.


"빅토리아가 허락했어." 세라가 말했다.


".." 알프레도는 별 말없이 일에만 집중했다.


"오늘은 정보수집만 하니까 크게 도울 건 없겠다." 세라가 말했다.


"응. 그러니까 나가있어. 집중하고 싶어." 알프레도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그는 세라를 등진 채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러다가 그는 아차 한 듯한 표정으로 세라를 향해 돌아섰다.


"아, 세라. 나가라는 게 내가 화났다거나 네가 싫다는 건 아냐. 알지?" 알프레도가 세라에게 말했다.


"알아. 원래 그러잖아. 난 그냥 무힙도 걱정되고 너 눈 퀭한 거 보니 잠도 많이 못 잔 거 같아서 돕고 싶어서 그런 거야. “ 세라가 왠지 꼬질꼬질해 보이는 그를 보며 말했다. 무힙이 누운 채 피식 웃었다. 사실 무힙도 알프레도의 얼굴을 보며, ’분명 이 사람 퇴근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오케이. 그럼 나가있어." 알프레도가 세라에게 말했다. 그리고 무힙을 향해 돌아서며 "나가라고 하는 이유 중 하나 더. 얘의 생체 신호가 조금이라도 요동치면, 세라가 이 선들 다 끊어버릴까 봐 그래. 너무 감정적이야."라고 중얼댔다.


세라가 그를 향해서 "지켜보는 건 상관없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알프레도는 “네가 지켜보는 게 얘도 더 편안하겠지."라고 말했다. 세라가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한참 뒤 알프레도가 허리를 한 번 쭉 폈다. 벽에 주르륵 깔린 화면들을 알프레도가 몇 번 조작하자 화면에 다양한 신호들이 나타났다. 무힙의 몸에서 나오는 생체 신호였다. 알프레도는 한참 동안 심각하게 그것들을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알프레도는 부모로부터 천재성을 물려받았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를 자르고 붙여서 조합한 배아들 중 하나가 잘 자라서 알프레도가 되었다. 그때 만들어진 다른 배아들은 여전히 동결된 채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다. 알프레도의 성공적인 출생과 탁월한 지능은 생명공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알프레도의 형제를 탄생시키고나 하는 프로젝트는 모두 실패했다. 여러 번 텀을 두고 실험을 했지만 모두. 어느 날 빅토리아가 알프레도에게 물었었다. "알프레도, 나는 네 형제들이 좀 보고 싶어. 왜 계속 실패하지? 이번 실험도 실패야. 이 보고서 좀 봐." 그러자 알프레도는 굳이 보고서를 보고 싶지 않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쌍둥이가 태어나고 말고는 제 문제가 아니네요. 소관 하는 자들이 할 일이지. 저는 이만 일하러 가봐도 될까요?"

  

"너 인간성을 어디다 갖다 바친 대가로 똑똑한 거 아냐?" 빅토리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댔다. "아. 하나 더. 그 실험체들 최대한 많이 메타 공간 이용하게 해 봐." 빅토리아가 지시하자 알프레도는 "그러면 개별 실험체의 생활 수준이 떨어져요."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좀 떨어지면 어때 많이 수용하면 좋지." 빅토리아가 말했다. 알프레도는 "홀로그램 속 인권 대해서 너무 공감능력이 떨어지시는 것 아닌가요?"라며 답했다. "뭔 소리야.. 그래. 그럼 하던 대로 해." 빅토리아가 갸우뚱하며 대답하자 알프레도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 빅토리아의 사무실에서 나갔다.


 



알프레도가 무힙의 머리에 얇은 실을 심고 있다. 조용한 방에는 달각거리는 소리만 가끔 들렸다. 손에 든 기계가 그리 크지 않아서 그는 아주 가볍게 기계를 조작했다. "이번에 새로 개량한 침은 통증 전혀 없어요. 아프지도 않죠?" 알프레도가 무힙에게 물었다.


무힙이 누운 채 말했다. "그냥 만지는 느낌만 나요."


"통증 조절하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모발이식 하는 거라 생각해. 근데 머리숱이 많아서 나는 좀 힘들다." 알프레도가 말했다.

"뇌가 좀 따가운 느낌인데요." 무힙이 장난스레 말했다.

"흠. 뇌에는 통점이 없는데 아마 따가운 건 머리 피부나  근육일 거예요." 알프레도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그마저도 너무 미세한 상처라 상처가 나는 동시에 아물어버려. 눈 감고 명상해요. 명상이 정신력 향상에 좋아. “라며 말했다.


"근데, 너무 남 일 얘기하듯 말씀하시는 거 아닌가요?" 무힙이 말했다.


"아. 그런가? 근데 나도 내 머리에도 심어보고 싶어. 근데 영 각도가 안 나와서 말이지. 고민 중이야 어떻게 할지. 저기 거울 있죠. 어떻게 각도 잘 맞춰서 조절하면 뒤통수를 보면서 심어볼 수 있겠더라고. 그래서 하나 만들었어 최근에." 알프레도가 주절주절 말했다. 그리곤 "나 지금 반말했나?"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왠지 흐뭇한 표정이었다.


무힙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움직이지 마요!" 알프레도가 말했다.


"넵." 무힙이 깜짝 놀라 짧게 답했다.


"얼마 전에 이식한 친구가 있어. 가을이라고. 나 계속 반말하네 이제 당신이 좀 편한가 봐. 몇 번 봤다고." 알프레도가 말했다. 그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가을이라고 요 침으로 처음 시술하고 지금은 트레이닝하고 있는데,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그 친구는 이거 심을 때 자다가 갑자기 움직여가지고 헝클어져서 그거 고치느라 한참 애먹었네."


"네.." 무힙이 대답하고는 "트레이닝은 뭐예요?"라고 물었다.


"아. 프로그래밍해 둔 세계가 있어. 거기에 적응하는 훈련이지." 알프레도가 말했다.


"맞아요. 아저씨 프로그래머라고 들었어요. 근데 지금은 약간 의사 같기도 하네요. 기술자 같기도 하고" 무힙이 말했다.


"이 수술복 때문인가? 나는 그냥 이게 편해서 입어요. 그리고 저는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어요. 행운이지." 알프레도가 중얼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마지막 링크를 연결하며 말했다. "이제 이식 끝났다."  


무힙은 가만히 누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식이 끝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세라의 말에 무힙은 오늘 실험실에 오는 길에 조금은 마음이 부풀었는데, 끝났다는 알프레도의 말에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자 왠지 풍선에 바람 빠지는 기분이었다.


"눈 떠요." 알프레도가 말했다. 알프레도는 라텍스 장갑을 낀 양손에 핀셋을 들고 있었다. 그는 기대에 찬 얼굴로 누워있는 무힙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지쳐 보였다.


"세라는요?" 무힙이 물었다.


"내 방에 있어. 옆 방이야. 부를까?" 알프레도가 물었다.


무힙이 시계를 봤다. 늦은 시간이었다. 알프레도가 지칠만했다. "아뇨. 굳이."


밖에서 똑똑똑 소리가 들리고 바로 문이 열렸다. 세라가 들어오며 말했다. "끝났지? 무힙, 기분은 어때?"


"아무렇지도 않아." 무힙이 말했다.


"잘된 거지?" 세라가 알프레도를 보며 물었다.


"응." 알프레도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모든 연결이 완벽해. 지금까지는. 이제 집에 가고 내일부터 너 출근할 때 얘 데려와. 적응훈련 해야지"


무힙은 왠지 머리가 어색한 기분이었다. 원래 머리가 여기 달려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자 무힙이 픽하고 웃었다. 그런 무힙을 알프레도가 보더니 우주복 같은 모자를 내밀었다.


"따가울 수도 있어. 밖에 나가면 감염도 걱정이고. 소독 따로 할 필요 없는데 세라가 봐서 해주던가." 알프레도가 말했다.


"알았어." 세라가 말했다.


알프레도가 무힙의 머리를 다시 찬찬히 살폈다.


"진짜 잘됐단 말이야. 저 귀여운 머리통에 보이지 않는 신경망이 잔뜩 붙어있단 말이지." 알프레도가 말했다.    


"잠깐만 이리 와봐요." 알프레도가 무힙을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있어요." 알프레도가 컴퓨터 화면과 무힙의 머리를 번갈아봤다. 


"뭐 해?" 세라가 물었다. 


"이 연결되는 속도 좀 봐. 얘 머리에 지금 거의 보이지도 않는 가닥들이 잔뜩 붙어있다고. 이것들이 저기! 컴퓨터에 연결된 실들하고 하나하나 다 짝이 맞는 단말이야. 자동으로 자기들이 띄는 전극에 따라 연결이 되는 거야. 아름답다 정말. 너의 신경이 얼마나 활발해서 더 빠른 거야." 알프레도가 말했다.


"네.." 무힙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컴퓨터가 부웅 켜지자 알프레도는 박수를 한번 치더니 종료 버튼을 눌러 컴퓨터를 껐다. "오늘은 여기까지." 알프레도가 말했다. 무힙은 왠지 머리가 다시 조금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세라는 왠지 울컥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고 무힙은 머리의 낯선 느낌에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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